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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an de TJ May 19. 2024

미소 속에 숨겨진 잔인함, 극한의 어둠에서 빛나다

지옥의 서커스 공연 제2막 ‘10년 만의 부활’  

“Hey~, Bro~~~ Moloch(몰렉)! Take Care.ᐟ”

희동은 제라드와 공항 라운지에서 서로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희동의 목에 걸린 블랙 다이아 펜던트가 햇살에 비춰

제라드의 눈에 반사되자 제라드는 잠시 눈을 깜빡였다.


그런 모습이 희동에겐 작별의 아쉬움으로 느껴졌는지

제라드를 향해 두 팔을 벌려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녀석.. 훗… 잘 지내라고.. 또 보자.ᐟ“


그렇게 희동은 군복무를 위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걸음을 재촉하는 공항 라운지의 스피커 소리가 귀찮은 듯

목을 까딱거렸다.


“뚜두둑…” 목을 이리저리 돌리자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희동은 관절사이에서 두둑 거리는 소리가 좋았다.

베티의 목이 부러지던 그날 밤,

희동이 느낀 희열을 잠시라도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희동에게 군복무는 사실 축복이었다.


베티를 살해했을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 속에

학교를 다니는 내내, 경찰이 밝혀내지 못한 살인범으로

소문은 무성했지만 증거가 없었기에 어찌할 도리는 없었지만,

희동은 이따금 동급생들에게 기행적인 행동과 말로

내가 살인을 했어.ᐟ 근데 어쩌질 못하네? 하며,

수사기관을 비롯한 사람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천연덕스럽게 다니던 학교를 마치고,

대학도 나오게 되었다.


군복무 지연을 위해 대학원 진학을 할까 고민도 했지만,

원체 체질에 맞지 않는 건 못하는 성격이라

어쩔 수 없이 한국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차 정치인이 될 아버지의 커리어에

군입대 문제를 일으킬 순 없었다.


이미 형은 아버지의 친구가 병원장으로 있는 관계를 이용해

군입대를 피했는데 자신까지 같은 수법으로 했다간

물의를 일으킬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새벽 2시 30분, 영하 27도, 강풍주의보”

이미 온도계는 극한의 추위로 터져버린 지 오래다.


불어오는 찬 바람에 가로등을 잠시 스치는

하얀 김이 두 사람의 입에서 내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전투화의 뒷굽을 차던 희동은

저 너머 이곳과는 전혀 다른 나라를

초점 없이 바라보던 송일병에게 말을 건넸다.


“송일병 님! 혹시 힘드십니까?.”

“아.. 아니…”

“오늘 저녁에도 송일병 님 김병장님께 혼나셨지 말입니다. “

” 그.. 그랬지… 아…“ 단전에서 끌어 오르는 분노가

깊은 탄식으로 바뀌던 찰나였다.


“제가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던 시절,

일병 님하고 비슷한 경우가 있었지 말입니다. “

“그… 그래? 어땠는데?”

“그게 말입니다…. 아.. 아닙니다.” 며 말을 얼버무리던 희동에게

송일병은 다독이듯 말했다.

“괜찮아.. 나한테는 편하게 해도 돼.. 알..잖..아.. 나 고문관인 거…”

한참을 뜸을 들이다 희동은 특유의 오른쪽 입술을 위로 씰룩거리더니 입을 뗐다.


“아.. 그게.. 제가 미군부대에서 사고 치고 2주간 영창에 있을 때 말입니다.”

“어.. 어..”

궁금한 눈초리로 송일병이 희동의 말에 추임새를 넣었다.

“오랜만에 한국 들어와서 적응하기 힘든데  그 위에 선임이란 새끼가 엄청 괴롭히더란 말이죠.”

“이게 사실 싸움은 선빵, 기세거든요.”

“원래  나를 좀 만만하게 본다. 아님 좀 괴롭힐 것 같다 싶으면 쫌 세게 나가야 안 건듭니다. “


“그… 그거야 알지… 나도…” 버벅거리는 말투로 송일병이 안다는 듯 대꾸했다.

희동은 전출오기 전 부대에서 자신이 문젯거리를 만들었던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답답했는지 송일병에게 쏘아붙이듯 말했다.


“근데 우리 동갑이니까 잠시 말 놓을게 “라며 일방적으로 말했다.

송일병은 내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저돌적으로 들어오는 희동의 말에

뭐라 반박할 새도 없어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ㅆㅂ 너는 왜 그래? ㅈㄴ 답답하게..

그렇게 고문관같이 구니까 ㅆㅂ ㅈㄴ 괴롭히고 싶잖아.. 나~~ 도!!”

희동의 갑작스러운 욕설과 비아냥에 송일병은 기분이 매우 언짢은지

미간에 인상이 써졌다.


기어가는 목소리로 송일병은 희동에게

“지.. 지금 … 뭐라 했냐?”라며 따졌지만,

화를 내는 것도 아닌 그저 본인의 넋두리 같은 말에

이미 어색한 화를 내고 말았음을 알아차렸다.


희동은 “귓구녕도 막혔어? 어?”

“ㅆㅂ ㅈㄴ 답답하다고… 이 병신아~~”

“내가 오늘 너 때문에 솔까 아까 김병장한테 처맞은 건 아냐?”라며

되레 따지고 들었다.


“그리고 너 수양록에 김병장한테

맞은 거도 다 쓰고,

김병장 죽이고 너도 죽고 싶다고

쓴 거 봤다..

너… 진짜 병신이지?

그거 ㅆㅂ 네 유언장이야..”


송일병은 뭐라 반박할 뭔가를 찾고 있었지만,

그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이미 너무 많은 대원들에게 자신이 짐이 되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송일병은 조용히 말했다.

“나.. 나도 사실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다고..”

‘내일도 또 줘 터질 텐데.. 너무 무섭고.. “

“이런 내가 답답해서 미치겠~~ 고~.!!”라며 울부짖는 탓에

세찬 바람소리에 파묻혀 조용하던 초소가 분주해졌다.


“하.. ㅆㅂ…” 한숨을 내쉬던 희동은

한숨을 내쉬다가 도저히 안 되겠던지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경계근무지에서 담배라니…

도대체 어떻게 담배를 들고 왔는지

궁금할 정도로 의아한 지 송일병은

눈을 끔뻑이며 희동을 노려보았다.


안절부절못하는 송일병을 곁에 두고,

희동은 오른쪽 어깨에 있던 소총으로 송일병을 밀치며

전투화로 송일병의 복부를 가격했다.


송일병은 이미 기세에 눌렸고,

하이바 옆으로 들어오는 희동의 주먹에

속수무책 당하고 있었다.


야심한 새벽, 아무도 없는 철책선에서

짐승 같은 놈을 제지하기엔 너무 늦어버린 후였다.



 

상처가 난 얼굴을 감싸 쥐던 송일병이

아픈 부위를 주무르며 아무 말도 못 하며

희동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희동은 끌어 오르는 가래를 뱉으며,

담배꽁초에 불이 절반쯤 탔을 즈음,

전투화로 담배를 비벼 끄고서는


뭔가 결단을 내린 듯

송일병에게 나지막하게 말을 건넸다.


“야.ᐟ 어차피 이대로 살아서 뭐 하냐? “

“그냥 여기서 죽어라.ᐟ”

그 순간 희동은 누군가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지옥의 재판관이 된 마냥 떠들어댔다.


“너 같은 새끼는 내가 많이 봤는데… 답이 없어..”

“그러니까 그냥 이런 데서 사라지는 게 좋아..”


“뭐? 무슨 그런 말을 하냐?”며

따지고 묻는 송일병에게 희동은

다시금 송일병의 얼굴에 주먹을 퍼부었다.


“내가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으니

내 얼굴에 난 상처는 내가 다른 데서

다쳤다고 할게… 제발.. 그런 무서운 말 하지 마…“라며

애원을 했다.


하지만 무서운 악의 재판관으로 빙의한 희동은

이미 결심을 굳혔다.


“야.ᐟ 내가 좀 덜 미안해지게 너도 나 좀 때려라.ᐟ 응?”

“쌍방과실로 하자.ᐟ 어?”


“아.. 아니야… 희동아.. 내가 어떻게 널… 안 돼..

난 못해.ᐟ”


“그러니까 네가 병신인 거야…”

“너는 니 무덤 직접 판 거고..”라며 희동은 미소를 띠었다.


희동은 자신의 소총에 탄창을 끼우고, 장전한 뒤

송일병에게 다가갔고, 그 스스로 그의 총으로 방아쇠를 당길 것을 주문했다.


희동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는 걸 본 송일병은

이도 저도 할 수 없음을 직감하고

눈물범벅이 된 채 울음을 삼키고 눈을 질끈 감은채

스스로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 말았다.


그날 밤, 희동의 서커스 2막은

안타까운 희생자를 10년 만에 부활시켰다.


희동은 그렇게 10년 만에 유희를 즐겼다.


“그래.. 이거야..  짜릿하다니까.ᐟ”라 외치며,

갑자기 초소 주위를 뜀뛰기를 하더니

숨을 헐떡이며 다급한 목소리로 상황실로 무전을 전했다.


“사고발생.ᐟ 사고발생! 총상환자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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