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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an de TJ May 06. 2024

비밀요원 ‘J’의 첫사랑

신이여, 제발 그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ᐟ

“동문아.ᐟ 동문아..

어~~! 제 발… 한 번만.. 한 번만

나 좀 살려줘… 어? 야~~~.ᐟ.ᐟ.ᐟ.ᐟ“


“내가 갚는다잖아.ᐟ 좀 도와주면 안 돼?

해줄 수 있잖아. 그 돈.ᐟ“


쩌렁쩌렁한 연희의 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철렁 내려앉게 만들고 귀를 긁어대는 소음이

탁 트인 도로를 점령했다.


노란 점멸등만 끔뻑일 뿐 연희의 고함소리에

동문은 그 자리에 서서 얼어붙은 듯 꼼짝하지 못했다.

빛에 놀란 고라니 마냥 동문은 눈에 초점을 잃었다.


연희는 그런 존재였다.

연희가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주눅 들게 할 수 있었고,

논리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연희의 생각이 중요할 뿐.

연희라는 세상에서 우주의 중심은 오직 연희였다.


그래. 태양 같은 존재.

연희는 모든 행성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게 만드는 태양이었다.




동문은 서아를 보면 늘 마음이 아팠다.

그 어린것은 어미에게 보채지도..

그렇다고 아비를 찾지도 않았다.


동문이 어린 시절 부모님을 잃고,

할머니 품에서 늘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짓던 어린 모습과는 크게 대비되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서아는 어리지만 똑똑했고, 상황판단력이 좋았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 자신을 사랑해 줄 이는

자기 자신 말고는 없다는 것을 깨달은 어른처럼 굴었다.


그래서 처음 동문은 연희가 자신의 아이가 있다고 말한 그날,

본능적으로 측은지심을 가졌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같은 곳에서 알바를 하며 연희를 만난 동문은

연희의 웃음이 기분좋았다.


닳고 닳은 연희는 열심히 살아가는 동문이 대견해 보이기도

어리숙한 모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솔직한 모습에 반했다.


그래서 연희는 알바를 마치고 동문과 술 한잔 하자며,

동문에게 눈웃음을 보냈고, 동문은 어느 정도 친해진 뒤인터라

적극적인 연희가 싫지 않았다.


연희는 눈웃음이 매력적이었다.




어두컴컴한 조명이 테이블을 비추고,

소주병은 7병이 나뒹굴었다.


이미 3시간 전에 시킨 어묵탕이 쫄아들어

냄비의 무와 어묵꼬치는 틱틱 소리를 내며 타고 있었다.


술이 술을 먹는 내 것이 내 것이 아닌 시간..

연희는 동문에게 운을 뗐다.


‘동문아 나.. 진짜 인생이 X 같다.‘

‘나도 꿈이 있었고, 나도 학교 다니고 싶었어.’

‘근데 세상은 나 같은 거에겐 그런 기회를 안주더라고..‘


연희는 혀가 꼬부라지면서도

동문을 쳐다보는 눈빛은 분명했다.  


‘그리고 진짜 다 나쁜 놈들.. 다… 나쁜 놈의 새끼들…’

‘그런 놈들만 자꾸 꼬여~, 재수 없게.. 그런 놈들만..’

‘나도 좀 착하고 멋진 남자 좀 만나고 싶어. 동문아’

‘너 그런 애 좀 시켜주라.. 누나 외롭다..’


시덥지 않은 연희의 술주정 속에서도

애교를 잊지 않는 모습에 동문은 입을 다문채

연희의 말만 잠자코 듣고 있었다.


동문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풍파가 거친 삶을 살아온 연희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리를 함께 했다.


술집을 나서자 비가 후드득 내렸다.

우산을 썼지만, 빗줄기를 겨우 피할 정도.

동문과 연희는 서로의 몸을 밀착시키며,

깊은 어둠을 뚫고 묵묵히 함께 걸었다.


우산을 받친 동문의 팔에 연희가 몸을 기울이며

동문에게 몸을 기대었고, 갑자기 들어온 연희의 온기가

술냄새와 향수냄새가 섞여 동문을 어지럽혔다.


연희는 잠시 숨을 몰아쉬더니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동문을 한번 쓰윽 아래에서 위로 쳐다보며,

동문에게 말했다.


‘멋있어. 짜식.. 누나도 지켜줄 줄 알고..’


연희는 자신의 초라한 인생이…

이 거지 같은 인생이 아니라

남들처럼 평범한 집안에서 자라

제대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더라면,


동문처럼 바로 너처럼

건실한 청년을 만나

재밌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고 했다.


연희는 자신의 처지가 갑작스레 북받쳤는지

그렁그렁 거리며 울먹거렸다.


동문은 그렇게 가로수 등불 밑에서

흐느끼는 연희를 안으며

‘괜찮다며.. 이제 다 괜찮다며…’ 위로했다.


동문 자신도 모르게 나온 행동이었고,

연희에 대한 인간적인 사랑이었다.


부드러운 연희의 입술이 동문의 입술에 닿는 순간

동문은 그 입맞춤만으로도 자신이 연희의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동문은 처음으로 이성에 눈을 뜨게 되었다.


나이 차이가 있었지만, 동문에겐 숫자에 불과했다.


연희에게 다른 남자에게서 낳은 딸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부모 없이 세상에 홀로 남은 외로운 동문에게는

연희와 그녀의 딸 서아는

자신에게 찾아온 선물 같은 존재였다.






경만은 비밀요원으로 과거로 이동한다는 것이

마냥 설레는 여행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과거를 들춰내

그 과거의 행적을 살핀다는 것은

참으로 죄책감이 드는 일이었다.


비밀요원이 되면, 과거로 돌아가

동문이 당했던 사고를 돌이키거나

잘못된  일들을 바로 잡아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었다.


경만은 과연 자신이 미라클의 미션을

잘 수행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섰고,

사실 그 보다는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고 감내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하지만, 그럴 힘도 그럴 마음도 없었다.

털썩 주저앉은 경만은 오래도록 생각에 잠겼다.


노란 점멸등이 벤치에 앉은 경만을 오래도록 다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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