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는 것 자체로 삶의 의미가 생긴다.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다. 큰일이다.
시꺼먼 기름 위에서 둥둥 뜬 기분.
난생처음 느껴보는 기분이다.
생각하자. 그리고 무슨 상황인지 알아내야 한다.
갑갑하다. 목에는 이미 흘린 땀으로 끈적하고 어서 씻고 싶은 마음뿐이다.
생각하자. 이 상황을 설명해 줄 이는?
그래.
‘미라클’ ‘미라클’ ‘미라클~~~’
보이지도 않는 깜깜한 우주 속에서
홀로 목이 터져라 불렀던 그 이름.
‘K.ᐟ 나예요. 말해요.’
오.ᐟ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이여… 감사합니다.
‘진짜 미라클이에요?’
‘그래요.’
‘지금.. 지금 이 상황이 뭔지 모르겠어요.
너무 모든 것이 낯설어서…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진짜 너무 당황스럽네요. 저… 지금 죽은 건가요?‘
‘그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와 비슷한 거죠.’
‘K가 원하는 모든 질문에 답해줄 순 없으니
J를 만나게 해 줄게요.‘
‘대신.ᐟ J의 시간을 너무 뺏진 마세요.’
‘J… 동문을 다시 만난다고?’
미라클의 말이 끝나고
얼마 간의 정적이 흘렀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머릿속이 복잡하다.
과거로 이동해서 동문을 만난다고?
경만은 두 눈을 끔뻑거리며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칠흑 같은 암흑사이로 아주 희미하게 형형색색 빛나는 것들이 있었다.
그중에 하나의 빛이 경만을 향해 쏜살같이 다가오더니
초록의 빛이 경만의 주위를 감싸며 빙빙 돌다가 경만의 눈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나직이 들리는 소리에
경만은 눈이 번쩍 뜨였다.
‘형! 진짜 형이네…’
경만을 부르는 익숙한 그 목소리..
분명 동문의 목소리였다.
‘동문아~~~ 네가 어떻게…’
흥분한 경만의 입에 침이 흐르며 흐느꼈다.
‘그래 형.. 나야 동문이’
동문이 모습을 서서히 보이며, 경만의 눈을 마주했다.
‘많이 놀랐지?’
경만이 와락 껴앉는 통에 동문이 휘청거렸다.
‘형.ᐟ 답답해..’ 살며시 미소가 띠어진 동문의 말 뒤에
경만은 잠시 흐느끼던 자신을 다독였다.
‘그.. 그래.. 내가 너무 반가워서..’
‘그래 맞아. 신기할 거야 그리고 믿기지 않을 거야.
이 상황이. 그런데 말이야. 이건 형에게 온 선물 같은 시간이야. 알지?‘
‘그럼.. 내가 인마… 진짜 … ’ 경만은 다시금 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동문은 경만이 그러거나 말거나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형. 이제 이틀 동안은 나랑 계속 함께 다닐 거야.
형과 나는 비밀요원의 몸 안에서 둘이 함께 있을 거고,
궁금한 게 있으면 뭐든 물어보면 돼!’
‘대신에 과거의 나와는 대화할 수 없으니 잘 알아둬.’
‘그.. 그래.. 뭔 말인지 모르겠다만 암튼 난 너랑 있으니 좋다야..’
‘그래 나도 그래 형.’
따스한 햇살에 비밀요원은
검은색 정장 상의를 잠시 들썩였다.
살짝 부는 찬 바람에 더위가 씻겨진 듯
비밀요원은 유행이 한물 지나간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동문아.’
‘응’
‘근데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어 희망애육원에 가는 길이야.’
‘거기에 누가 있길래?’
‘가보면 알아.’ 짧게 답하는 동문에게
다시 동문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경만은 그저 이 상황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양손 가득 과자가 잔뜩 든 비닐봉지를 든 채
한 남자가 희망애육원 앞에 섰다.
잠시 옷매무새를 정돈하고서는
얼굴에 미소를 지어 보이며 연습을 한 후
큰 숨을 내뱉은 후에야 초인종을 눌렀다.
‘띵똥~.’ 초인종이 울리며 안에서 인기척이 났다.
희망애육원의 오랜 버팀목, 이숙영 과장이 빼꼼히 문을 열며 마중을 나왔다.
‘어머.. 지난번에 오신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또 오셨네요.’
‘서아 불러드릴게요. 우리 서아 좋~아 하겠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네~ 그럼요.‘
애육원을 지긋이 쳐다보던 사이 먼발치에서 뛰어오는 여자아이가 보인다.
저 아이가 서아라는 아이인가…
경만은 언뜻 이해되지 않는 이 상황에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아저씨~.ᐟ’ 하며 밝게 웃는 여자아이가 익숙한 듯 품에 안겼다.
분명 그 아이의 눈에는 초록빛의 아우라가 가득했다.
오른쪽 눈에는 100,831이란 숫자가 보였고,
왼쪽 눈에는 숫자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놀아준 뒤에야 경만은 동문에게 말을 걸었다.
‘동문아. 근데 이 아이는 누구길래 아는 거야?
‘응. 얘는 …‘
잠시 뜸 들이며 동문은 말했다.
‘이 아이는 이제 여섯 살이야. 이름은 김서아‘
’ 연희 누나가 여기 희망애육원에 버린 딸!‘
순간 경만은 두 눈의 초점이 풀렸다.
그저 동문이 하는 말을 들을 뿐이었다.
사람은 총 4번의 생을 살아간다.
마치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말이다.
씨를 뿌리는 생,
뿌린 씨에 물을 주는 생
물을 준 씨를 수확하는 생
수확한 것들을 쓰는 생
그리고 한 번의 생에는 선물처럼
태어나면서부터 10만이란 복이 주어진다.
자기가 먹고 살만큼의 복을 갖고 태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복은 그 생에서 다 쓰지 못하면,
사랑하는 이에게 줄 수도 있다.
만약 쓰지 않는다 해도 괜찮다.
전생에 쌓은 복은 그대로 다음 생에
쓸 수 있는 마일리지로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