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한 가지 소원을 생각하라
‘당신이 바라는 그 기적.. 이제 이루어 보세요.‘
‘정말요?’
경만이 미라클의 눈을 바라보자마자
맥없이 자리에서 쓰러졌다.
눈앞에 섬광이 보이자마자
어지럽게 세상이 뱅글뱅글 돈다.
‘나… 괜찮은 거지?’
자리에 계속 앉아 있음에도 어지러움이 일며 토악질이 난다.
‘윽… 흐업….퇫…..’
숨을 헐떡이며 방금 뱉은 침이 타일바닥 위에 스멀스멀 흘러내린다.
눈앞에 보이는 모습은 마치 비전프로로
세상을 보는 것 마냥 어지럽다.
‘게임 세상 같은 건가? 모르겠다.
도대체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거지…‘
익숙한 소리에 귀가 움직인다.
나지막한 목소리가 고요하던 공간에 메아리처럼 퍼진다.
‘경만 씨.! 경만 씨..! 정신 차려봐요..ᐟ‘
고개를 든 경만은 초점을 잃은 채 소리가 나는 곳을 응시했다.
‘으… 어지러워요…’
‘그래요. 처음엔 다들 그래요.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눈을 찔끔 감은 채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분명 미라클은 팔짱을 낀 채 얼굴을 찬찬히 쳐다본다.
‘물… 물을 한 잔 주세요.’
말없이 일어선 채 또각또각 메트로놈이 울리듯 발소리가 들렸다.
이마에 땀방울이 흐르는데 닦을 기운이 없어 눈썹에 맺힌 땀방울은
마치 개미 한 마리가 지나가는 듯 간지럽다.
목이 왜 이렇게 갑갑하지? 누가 목을 조르는 듯 답답함도 답답함이지만,
목에 누군가 칼을 겨눈 듯 따가운 느낌에 손으로 목에 닿는 셔츠깃을 잡아당겼다.
눈을 치켜뜬 왼쪽 공간에 키높이만 한 거울에 모습이 보인다.
‘이 사람.. 누구지?…. 설마 나인 건가?’
말끔한 검은색 양복을 입은 남자가 보인다.
분명 어디선가 본모습인데..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건 틀림없는 나다.
하지만 난 분명히 청바지에 흰색 티셔츠를 입었었는데..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숨이 턱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숨을 참고 물을 들이부은 다음에야 컵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미라클.ᐟ 설명을 좀 해줘요. 지금 이 상황이 도대체 뭔지.ᐟ ’
‘경만 씨, 아니.. 이제 비밀요원이니까 K(케이)라고 부를게요!’
고개를 갸우뚱하는 경만의 모습에 잠시 미라클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내려갔다.
‘케이? 이런 게 기적인가?’ 의자에 앉은 채 머리를 감싸 안고 고개를 저었다.
‘케이.ᐟ 이제 당신에겐 특별한 능력들이 생겼어요.’
‘원래 당신의 모습이 아니라 조금 당황스럽겠지만 곧 적응이 될 겁니다.’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소리와 냉장고의 팬이 돌아가는 소리만이 들렸다.
‘어떻게 된 거죠? 도대체 나한테 무슨 일을 한 겁니까?’
‘비밀 미션을 수행하려면 당신이 알던 당신의 모습으로는 해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비밀요원들은 자신만의 아바타로 바뀌어 임무를 수행합니다.’
경만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내려왔다.
‘그럼.. 이제 저는 이런 모습으로 사는 건가요?’
눈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채 물어보자
미라클이 입을 앙 다물자 두 볼에 보조개가 옅게 생겼다.
“삐……삐….. 삐… 삐.. 삐. 삐”
기계음이 점차 작게 울렸다.
귀를 찌르는 듯한 소리는 두 사람이 있는 공간의
정적을 깨기에 충분했다.
‘제누와즈가 완성되었네요. 잠시만요.‘
미라클이 자리에 일어서자 경만의 얼굴에 바람이 느껴졌다.
두꺼운 오븐장갑을 양손에 낀 채
상체를 숙이고 오븐 문을 열어젖히자
환풍기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고소하고 달큼한 냄새가 가게 안을 채웠다.
‘제누와즈가 잘 굽혔네. 이번 건도 괜찮겠어.’
미라클의 얼굴에는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며 손으로 여러 번 얼굴을 쓰다듬었다.
까칠한 피부가 아니라 적당히 수분감이 있는 피부에
손끝에 닿는 곳마다 매끈하게 만져졌다.
평소 신경 쓰이던 수염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나이는 나보다 좀 더 있어 보이는데 나쁘진 않네.’
슬며시 올라간 입꼬리를 감추려 이내 표정을 숨겼다.
‘일단 잘 생겼으니 다행이다.‘
케이는 한숨을 크게 내쉬며,
“탕…. 탕…‘소리가 나는 곳으로 자연스레 초점이 옮겨갔다.
미라클은 제누와즈를 오븐에서 꺼내자마자
대리석 작업공간에 두 손으로 힘껏 빵틀을 내리쳤다.
빵틀이 뒤집어지자
유산지에 둘러싸인 제누와즈가
밑으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노릇노릇하게 잘 굽힌 제누와즈에서
김이 흘러나오자 미라클은 다시 케이에게로 몸을 돌렸다.
미라클은 서랍에서 꺼낸 카드를 한 손에 든 채
자리에 앉아있는 케이의 얼굴 앞으로 건넸다.
움찔거리는 경만에게 미라클은 경만의 귀에만 들릴 정도의 소리로 속삭였다.
‘케이! 난 이제 케이크를 만들 거예요.
당신의 미션 성공 여부에 따라 케이크의 주인은 달라질 겁니다.‘
카드에 적힌 글을 읽자마자 동공이 사시나무처럼 흔들렸다.
갑자기 숨이 가빠지는 경만은 마치 누군가 송곳으로
몸을 쿡쿡 찌르는 듯 경련을 일으키며 바닥을 뒹굴었다.
“기사년 8월 22일생 김희동”
“계유년 8월 29일생 정연희”
“비밀요원 J ‘조동문’을 살인한 자들에게
자신들이 저지른 죄에 대해 반드시
단 한 번은 뉘우칠 기회를 줄 것.”
‘여기로 그 사람들을 데려오면 됩니다. 알겠죠?‘
‘대신 당신의 능력 이상으로는 사용하지 말기를 바래요.‘
미라클의 눈에서는 오로라빛 광채가 빛났다.
그런 그녀를 경만은 그저 숨죽여 들을 뿐이었다.
경만이 두 눈을 찔끔 감자
그의 좁은 이마에는 한껏 성이 난 주름이 가득했다.
‘조동문!‘
’어제 마주친 ‘그’가 바로 비밀요원 ‘J’였구나…‘
그래… 지금 내 모습… 어디선가 봤다 생각했는데…
동문이었어… 동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