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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Nov 12. 2023

16년 차 직장인이 회사와 헤어지는 방법 feat.ㅅ

참지, 마요 _ 내적욕구 _퇴사

원래 잘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특별하게 잘난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모자랄 것도 없는 중간적 인간이기도 하다. 나이는 마흔일곱. 원래 마흔여덟인데 나라에서 나이 세는 법을 바꾸는 바람에 한 살 줄었다.


회사를 그만둔 건 약 3년 하고도 10개월 전의 일이었다. 막 마흔다섯이 되던 해 겨울, 더 이상 회사를 참지 못하고 퇴사했다. 16년간 채용과 교육, 조직문화 업무를 했고 그 일을 사랑했다. 문제는 대부분의 상사들과 썩 좋은 관계를 맺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천성이 고분고분한 사람이 아니기도 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면과 시야의 편협함을 한동안 보지 못했다.


조직문화 책임자로서 회사라면, 경영자라면 응당 이래야 한다 어설픈 정의론과 역할론에 매달렸다. 얼마간은 열정적으로 일했다. 외부 컨설턴트에 의존하지 않고 나만의 방법론을 만들어 그룹 차원의 베스트상을 받고 5~6개 계열사의 벤치마킹 요청을 받는 전성기도 있었다.


그럭저럭 잘 나가던 회사가 고꾸라지고 수백억씩 적자를 내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조직문화팀은 미운 오리새끼가 됐다. 매년 이 팀 저 팀 옮겨 다니는 통에 매년 연말이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 사이 팀은 파트가 되고 8명에 달하던 팀원은 4명으로 줄어들었다.


2011년 회사는 그룹 내 지주사에 흡수 합병 되면서 임원팀장인사, 재무회계, 구매 등 주요 기능을 대부분 모기업에 넘겨주고 독자적인 회사로서의 지위를 잃었다. 그렇잖아도 찬밥 신세였던 조직문화 기능은 있으나마나 한 존재로 전락했다.


이즈음 나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쏟아내는 투덜이이자 방관자로 변모했다. 참는 법을 잃어버린 폭주 기관차처럼 아무 하고나 설전을 벌이고 으르렁 거리고 주변 분위기를 절단 내곤 했다. 특히 모기업에서 낙하산으로 내려 꽂힌 임원과는 정면으로 부딪치기 일쑤였다. 회의마다 고성이 오가고 얼굴을 붉힌 채 회의실을 박차고 나오는 일도 잦았다.


그 상태로 내리 5명의 임원이 거쳐갔고 예외 없이 으르렁댔다. 그들은 꺼려했고 간혹 경고했다. 그래도 별 변화가 없자 최후의 인사담당 ㅅ상무는 마침내 조직문화팀을 해체시키고 나는 마케팅팀 팀원으로 쫓겨났다. 주변 사람들은 "당신 이제 무거워. 받아주는 곳 있다는 것만으로 다행이라 생각해." 라며 참고 다니라 했다.


처음으로 고개를 수그리고 그러마 내심 다짐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 마음먹었다. 누군가 사무직의 꽃은 마케팅이라고도 했는데 이 말에 약간의 위안을 느꼈다. 마케팅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5년 전쯤엔 조직문화 업무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마케팅 업무를 자원해 현업 사람들과 부대끼며 이런저런 상품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고가의 프리미엄 계절상품에 '여름채비'라는 네이밍으로 기획안을 만들어 대표로부터 창의적이란 평도 들었다. 경영진이 바뀌고 다시 조직문화 책임자로 복귀하면서 8개월의 짧은 외유를 끝냈지만 그때의 기억은 나쁘지 않게 남은 터였다.


그래도 이번엔 도무지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몸에 맞지도 않는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앉아 억지 연기를 하는 이방인 같았다. 기울어 가는 회사, 역할을 잃은 존재에 대한 회의가 매일매일을 머릿속을 부유했다.


"차장님 미팅 가시죠?"

마케팅 팀에서 처음으로 맡은 일은 그룹사 제휴 업무였다. HMR김치를 그룹사 홈쇼핑 채널에 입점시키는 일이었다. 솔직히 김치 따위 팔고 싶지 않았다. 유통이나 김치를 만드는 과정 또한 별 관심이 없었다. 직급은 4년 차 차장이지만 2년간 이 일을 도맡아온 사원급 매니저가 미팅을 주도했다.


업체 관계자 역시 몇 마디 나눠보고는 제 상대가 누군지 제깍 알아챘다. 절반도 채 알아듣지 못하는 마케팅 전문 용어와 프로세스가 오가는 동안 그저 입을 다물고 두 사람이 웃으면 따라 웃고 고개를 끄덕이면 따라 끄덕였을 뿐이었다. 첫 미팅은 둥둥 떠다니던 이상주의자를 현실이라는 바닥으로 끌어내려 너는 존재감 없는 존재라는 증거를 들이미는 재판정과도 같았다.


"처음이라 힘드셨죠? 차차 나아지실 거예요."

24시간 같았던 1시간의 미팅이 끝나고 후배직원이 건넨 말이 화살처럼 가슴에 꽂혔다. 친절한 데다 따뜻함마저 배어 있는 그 태도에 내 마음은 되려 차갑게 식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그만두자'


평소에도 "나는 회사라는 조직과는 안 맞는 인간"이라는 말을 달고 다녔다. 퇴사 후 3년이 훌쩍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그 괴리를 극복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해본 적이 없었다. 말만 앞세우고 좋아질 리 없는 상황 탓만을 해왔다. 그 시간이 무려 16년이었다. 그 말을 지키기 위해 더 이상 참지 않는다라고 스스로를 곧추 세우기엔 지난 세월이 무색하다. 이렇게 사람은 저 자신을 잘 모른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옮기던가' 혀를 찾을 것이다.


2020년 하고도 2월 초 어느 금요일, 퇴사 당일의 날씨는 적당히 춥고 하늘은 금방 눈이라도 내릴 듯 희끄무리했다. 사원증을 인사팀에 반납하고 책 몇 권과 평소 쓰던 치약과 칫솔 따위 잡동사니를 챙기고 보니 쇼핑백 하나면 충분했다. 떠나는 마당에 뭔가 요란할 필요도 없지만 지나치게 단출한 흔적은 지난날 이곳에서의 치열함마저 부정하는 듯 차갑디 차가웠다.


뚜벅뚜벅 걸어 나오던 사무실 복도, 천장에서 쏟아져 내린 조명 빛은 꼭 소나기 같았다. 잠시 피해 있다 또다시 아무렇지 않게 돌아와 걷게 될 거리처럼 잠시 걸음을 멈추어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누군가는 왜 참지 못했느냐며 채근했다.

다들 그렇게 산다며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 혀를 찼다.


그 말들을 듣고 비로소 후회가 생겼다


'왜 조금 더 지혜롭게 참지 않았을까?'


참아야 했다는 뜻이 아니다

내키는 대로 참지 말라는 뜻도 아니다.

참지 않는 것을 지혜롭게 했어야 했다는 뜻이다


후회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됐다.


'왜 더 빨리 그만두지 못했을까?'


우리는 싫은 것을 참지 않고 싫다고 말하고 있을까?

부당한 모욕과 간섭, 나를 나로 드러내는 일에 딴지를 거는 모든 부당함에

참지 않고 맞대응하고 있을까?


그것을 지혜롭게 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면

이곳에서의 삶은 조금 일찍 달라졌을까?


무턱대고 참지 않다간

미움받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참지 않기로 했다면

조금 더 지혜롭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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