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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Mar 12. 2024

마흔여덟 서민이지만 스타벅스에는 가고 싶어

참지, 마요 _내적욕구 _젊게 살기

아무도
단지 세월의 숫자만으로는
늙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이상을 저버림으로써
늙는다

– 사뮤엘 울만의 시 'youth' 中


스타벅스가 시끄럽다.

얼마 전 검사 출신 모 정치인이 '스타벅스는 서민이 가는 곳이 아니'라고 말해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고, 인스타에 정제되지 않은 정치적 피드를 올리는 데다 손대는 사업마다 말아먹으면서 '마이너스의 손'이라는 별명을 가진 재벌 3세 J씨가 스벅 코리아의 오너이기 때문이다.


흔하디 흔한 커피숍 중 하나라기엔 스벅이라는 브랜드가 가지는 상징성은 꽤나 크다. 전 세계 커피 문화를 선도하는 게임체인저로서 그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지금이야 커피를 끊어 스벅이든 빽다방이든 갈 일이 없지만, 스벅의 분위기를 꽤나 마음에 들어 했다.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녹색 세이렌 로고, 적당히 널찍한 공간과 낮은 채도의 간접조명, 다양한 형태의 의자와 테이블 등 일관성 있으면서도 고객의 동선과 필요를 고려한 인테리어도 좋았고, 몇 시간이고 머물러도 누구 하나 눈총을 주지 않는 편안함이 있었다.


비록 멤버십에 가입하거나 프리퀀시? 따위를 모은 적도 없지만 커피숍으로도, 또 기업으로도 스벅은 꽤나 흥미로운 venue임에는 틀림없었다.


창업자 하워드 슐츠의 철학을 보면 오늘날 스벅의 전 세계적인 번영이 우연이 아님을 알게 된다. 집, 회사 외에 편하게 자신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제3의 장소'를 제공한다는 콘셉트는 지친 현대인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커피라는 본질(맛은 물론 핵심 재료인 커피의 윤리적 생산을 위해 재배농가와 상생한다는 철학까지), 고객의 경험,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애정(함께 일하는 직원들 역시 '파트너'로써 각별히 대우하는)이라는 3각 진정성을 시장이 놓칠 리 없다.


자신들이 잘하는 것,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본질에 대한 고집이 스벅이라는 기업의 정체성을 선명히 해 전 세계적인 확산과 롱런을 이끌었다. 그렇게 시애틀에서 시작한 자그마한 커피전문점은 어느새 전 세계 커피 산업과 서비스의 상징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유독 스벅은 가십도 많은 편이다. 미국 본토에서는 종종 인종차별 문제가 불거지기도 하고, 핵심 상품인 커피 자체가 맛있니 없니 본질에 대한 논란이 잦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불거진 정치인의 서민 논란과 오너 리스크 이전에도 말이 많았는데 그 성격이 조금은 특이하다. 주로 브랜드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이슈다.


J씨의 S그룹이 스타벅스 코리아 지분을 완전히 인수하면서 한국패치 됐다는 거다. 프로모션이 난잡해지고 프리퀀시를 모으면 주는 굿즈에 한국 감성이 패치되어 불만이라는 웃지 못할 논란들. 심지어 굿즈에서 유해성분이 검출되면서 체면을 구겼다.


이용층의 세대 갈등도 생기는 모양이다. 젊은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중년의 이용객들에게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해달라고 했다거나, 젊은이들을 위해 중년, 노년층은 방문을 자제해 달라 했다는 기사는 하나같이 스벅이 그 주인공이다. 실소를 자아낸다. 언제부터 스벅이 서민과 중년이상은 못 가는 공간이 되었을까?


얼마 전 홍대에 갔다. 스벅에 들르려다 순간 멈칫한다. 서민논란, 세대논란이 떠올라서다. 내부를 들여다보니 대다수는 20~30대 학생들처럼 보인다. 서민인지 부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젊다는 건 알겠다. 이제 50대에 가까워지는 내가 들어가도 되나?라는 찰나의 생각이 우스워 헛웃음을 짓고는 당당히 매장으로 들어간다. 음료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주변을 살핀다. 저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 아저씨는 젊은애들 노는데 와서 껴있어?라고 하지 않을까?


"152번 고객님 주문하신 라떼 나왔습니다"


이름도 아이디도 없는 나는 152번 고객이다. 얼죽아라지만, 무조건 따뜻한 라떼다. 두터운 머그잔에 입술을 대고 홀짝거리며 마신다. 서민이면 어떻고 40, 50대면 어떤가? 자기 자신을 객관화해 볼 필요는 매우 있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2~30대이고 싶은 건 내 자유다. 가진 것 없어도 또 어떤가? 마음만은 풍족하므로 나는 부자다. 흰머리가 반백을 넘는 중년이지만 또 어떤가? 나는 내 이상을 저버리지 않았으므로 여전히 젊다. 아무도 단지 세월의 흐름만으로는 늙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50대가 되어도 60대가 되어도 혹은 그 이상으로 나이를 먹어도

홍대도 가고 스벅도 갈 테다.


(물론 건강상 이유로 커피도 끊은데다, 모자란 마이너스의 손이 오너로 있는 한 자발적으로 찾아갈 일은 없겠지만... 뭐 그렇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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