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릭스 leex Oct 22. 2024

[신입의 직격] 헬스 1년치 긁고 한달도 못 가는 이유

Ⅲ장. 職격 _ 하드웨어 3_ 피지컬

지금보다는 청춘, 그러니까 2~30대였을 때 나는 내 몸이 무슨 금광불괴쯤 되는 줄 알았어. 교육, 조직문화 업무 특성상 주 3~4일은 뒤풀이를 가장한 회식이 많았는데 거의 매회 3차는 기본이었지. 술자리 자체를 좋아하기도 했고 다음날이면 아무렇지 않은 듯 출근해 동료들로부터 "대단하다"라는 말을 들을 때면 일종의 술부심이랄까? 으쓱하는 마음도 있었. 그게 다 몸 망가뜨리는 자해행위나 다름없다는 사실도 모르고 말이야. 어리석었지


건강에 경고등이 들어온 건 40대에 들어서면서부터였어. 매년 정기검진에서 이상 신호가 하나둘 잡히더라고. 혈당은 정상범위인 100을 살짝 넘어 당뇨 전단계에 들어섰고, 혈압도 높아졌어. 또 어느 해는 지방간 수치가 높고, 또 언제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고 부위별로 돌아가며 경고등이 켜졌어


"원래 40대 넘으면 다 그런 거야. 나는 혈압, 혈당은 기본으로 달고 살아"

퇴근길에 우연히 마주친 타 팀 선배에게 고민을 털어놨더니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웃어넘겼어.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의 훈장 같은 것이라도 했지. 선배는 씩 웃더니 이렇게 말했어


"오랜만에 봤는데 술이나 한잔 하자"

그날도 아마 3차까지 마셨던 것 같아


성인이 된 이후 내 체중은 67kg에서 ±2kg 사이를 벗어나본 적이 거의 없어. 군 입대해서 훈련병 시절 70 초중반에 이른 적은 있지만 전역 후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더라고. 평생 단 한 번도 살쪘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어. 키는 179.8인데 키에 비해 저체중이라고 볼 수 있지. 비만이 아니면서 일정하게 유지되는 체중이 건강을 보증하는 확실한 증거는 아니지만, 잦은 술자리에 딱히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체중은 큰 변동이 없으니 방심하게 되더라고


사실 40대 초중반에는 아슬아슬했어. 간헐적으로 돌아가며 켜지던 경고등이 동시다발로 켜지기 시작했으니까. 겉으론 멀쩡해 보였지만 속이 병들어 가다 못해 임계점에 이르렀던 모양이야. 생각지도 못한 공황증세까지 생겨 1년 가까이 시달리면서 몸과 마음은 사실상 만신창이가 됐어. 마치 빚을 갚으라며 찾아온 사채업자처럼 닥치는 대로 마시고 운동도 하지 않고 마음대로 살아온 지난 삶에 대한 계산서를 들이밀기 시작하더라고


몸과 마음이 망가지니 일도 안되고 이런저런 관계도 나빠지기 시작했어. 짜증이 늘고 안 그래도 삐딱한 심성이 더 삐딱해지고 여러모로 악순환이 이어졌지. 인상 또한 심술궂은 고양이상이 돼버렸어. 지금 생각하면 아찔해. 만약 상황에서도 별일 아니라 여기면서 원래의 패턴을 유지했더라면 어디 한 군데 중병이 들거나 지인들로부터 배척당했을지도 몰라. 아니 그랬을 거라고 확신해


마흔다섯이 되던 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질렀던 퇴사는 몸과 마음상태에 관한 한 일종의 구원이나 마찬가지였어. 회식이 (강제로) 사라졌고,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없어졌고, 무엇보다 백수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를 계획하고 능동적으로 보내기 시작하면서 몸과 마음은 차츰 회복이 됐어


평일 아침 7시면 어김없이 기상해.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시작해 팔 굽혀 펴기 300회, 스쿼트 200회, 아령 150회 운동량을 4년 넘도록 유지하고 있지. 직장인 시절 늘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운동루틴이 마침내 생긴 셈이야


불면증, 만성피로 같은 이상증세들도 서서히 사라졌어. 특히 아무런 이유도 없이 심장이 뛰고 식은땀이 나고 급기야 죽을 것 같다는 극심한 공포에 빠지는 공황증상은 확연히 좋아졌지. 차츰 팔다리는 가늘어지고 배만 불룩 튀어나온 ET형이 돼 가던 몸매도 나름 균형이 잡혔어. 피트니스 센터에 등록해 PT를 받고 체계적으로 몸을 가꾼 보디빌더에는 턱없지만, 체지방은 빠지고 근육량은 상당히 늘었지. 여전히 내 체중은 67~8kg을 유지 중이야


몸과 마음의 상태가 괜찮아지면서 글 쓰고 책 읽는 본업에도 더 집중할 수 있게 됐어. '몸이 재산'이란 말을 실감하겠더라고. 20대 중후반 청춘이라면 특별히 몸에 대해 걱정하는 일은 별로 없겠지만, 결국 이때의 행동습관들이 쌓여 몸과 마음의 '질병'이라는 결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안다면 조금 더 현명하게 현재를 관리할 필요가 있어




"...이기고 싶다면 고민을 충분히 견뎌줄 몸을 먼저 만들어. 정신력은 체력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돼!"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 어린 장그래의 바둑 스승님이 들려주는 체력에 관한 조언은 50에 가까워지는 요즘 들어 더 와닿더라고.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고 하지. 맞아. 건강을 잃으면 다 무슨 소용이야


문제는 우리 직장 환경이 좀처럼 여유 시간을 갖기 어렵다는 데 있어. 연초만 되면 건강이든 자기 계발이든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만, 한 달도 채 유지 못하는 이유는 개인의 '의지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야. 빌어먹을 업무의 불확실성과 사무실에 만연한 심각한 비효율 때문에 도무지 예측가능한 개인시간 활용이 어렵기 때문이야


좋아지고는 있지만, 대다수 기업 경영진의 사고방식은 여전히 전근대적인 '근면성실'에 머물러 있어. 그저 오래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 '저 친구 일 잘한다'는 인식은 여전하고 이는 집단의식으로 작용해 어지간히 용기 있고 자의식 투철한 사람이 아니라면, 속절없이 그런 분위기에 휩쓸리고 말아


연초에 끊어둔 1년짜리 헬스클럽 'PT'를 받기 위해 칼퇴를 몇 차례 시도해 보지만 매일 야근하다시피 하는 동료, 선배들이 주변에 있다면 의식을 안 할 수 없지. 튀는 소수가 무색무취의 다수에 거슬러 그 특질을 유지하기란 정말이지 불가능에 가까워


조직 전체가 움직이지 않으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 업무 시간 내 효율을 극대화해 정시퇴근이 표준이 된 조직에서는 야근이 비표준이고 불성실, 혹은 무능력의 메시지로 작동해. 그 반대라면 정규 업무시간은 늘어진 고무줄 마냥 느슨해지고 야근이라는 형식으로 가득 채워지면서 일의 양과 질이 반비례하는 모순에 빠지고 말아


관건은 일의 불확실성, 예측불가성을 잘 컨트롤할 수 있느냐?인데 이는 개인과 조직의 실력과 집중력의 문제로 연결되고 또 건강한 신체와 마인드 문제로 촉발돼. 개인의 건강 문제는 결코 개인의 선에서 끝나지 않아. 조직 전체의 성과 혹은 퍼포먼스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언제든 악순환으로도 혹은 선순환으로도 이어지게 만드는 king pin으로 작용하는 셈이지


내 직장의 업무 환경이 비교적 예측가능한 편이라면 다행이지 뭐야. 그때는 의지력만 있으면 가능해. 만약 이런 상황에도 개인 시간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건 그냥 핑계일 뿐이고 스스로 게으른 탓이라고 여기는 게 맞지


루틴이란 어떤 형태든 한 번의 어긋남만으로도 그 항상성이 깨지기 쉬워. 하물며 루틴 자체가 없던 직장인이 개인의 여유 시간에 관대하지 않은 업무 환경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극복하고 퇴근 후 자신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이어나갈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아. 그때는 업무 환경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스스로 결정할 있어야 해. 나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또 중요하지 않은가? 무엇을 해야 하고 또 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 를 선명히 알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한다고




뭘 더 할지가 아니라, 뭘 버려야 할지를 아는 것

사회 심리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쿠르트 레빈(Kurt Lewin, 1890-1947)은 변화의 메커니즘을 다음과 같은 3단계로 제시했어

해동(Unfreezing) → 비정형 상태로의 전환(Moving) → 재동결(Refreezing)

정말로 변하고 싶다면 무엇을 해동할 수 있는가? 즉 내가 가진 것 중 무엇을 먼저 포기할 수 있는가? 결정하고 실제 행동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해


별 중요하지도 않고 우선순위도 아닌 일에 쫓겨 시간에 허덕이고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삶 속에서 여유를 찾을 방법이란 없어. 왜 하는지? 진지한 고민도 없이 시키는 일을 수동적으로 처리하는 데 급급하다 보면, 이게 내게 필요한 일인지, 중요한 일인지 알지 못한 채로 기계적인 하루하루에 매몰될 수밖에 없어. 정신 차리고 가만히 앉아 내게 주어진 일의 경중부터 따져보라고


중요도, 긴급도 라는 두 축으로 나눠 일을 분류하다 보면 중요하지도 않고 긴급하지도 않은 일들이 분명 보일 거야. 이일들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내 삶에 제거해야 해. 일을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내 본업, 잘하는 것,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기 위해서야. 더 많은 R&C를 투입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야. 그 일은 누가 대신 해주지 않아. 스스로 찾고 주변을 설득해 일상을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들로 가득 채우는 일이야


이제 퇴근 후와 주말 시간에도 여유가 조금씩 생겨. 주말 내내 소파와 한 몸이 되는 일도 차츰 줄어들어. 주중 무의미한 일에 시달리다 번아웃에 빠지지 않기 때문이야. 그냥 늘어지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역시 분명 필요하지만 그게 전부가 되어서는 곤란해. 숨쉴틈도 없이 빼곡하게 일주일을 채우라는 의미가 아니야. 제대로 비워내면 틈이 생기고 그 틈에 필요한 시간을 내 주도로 채워 넣고 빼는 주체적 일상이 가능해지게 만들라는 말이야


건강을 좌우하는 또 하나의 환경은 바로 식습관이야. '매일 먹는 것들이 나를 만든다'는 말이 있지. 평소 식습관 자체를 바꾸는 것만큼 별다른 의지도 필요 없고 효과적인 게 없어. 탄단지 영양소에 따라 골고루 먹는 습관은 말할 것도 없고 한 끼쯤 건너뛰는 간헐적 단식도 괜찮아. 이런 말도 있지. '인간은 평생 먹을 양이 정해져 있는데 그 양을 다 채우면 죽는다' 과식의 위험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섬뜩한 경고말이야. 먹는 즐거움도 좋지만, 얻는 게 있으려면 포기해야 할 것도 있다는 냉엄한 진리를 잊어서도 안돼


술자리 역시 의식적으로 조절해야 하는 식습관 환경에 가까워. 술도 술이지만 밤늦은 시간까지 쉴 새 없이 섭취하는 안주가 특히 치명적이기 때문이야. 내 경우 잦은 술자리에 익숙해진 탓에 술자리가 없는 평상시 저녁에도 야식을 찾는 습관이 생기더라고. 비단 체중, 다이어트의 문제라서가 아니라 내장 기관의 기능성에 관한 문제야. 24시간 돌아가는 공장처럼 돌리다간 얼마 못 가 과부하에 걸리게 될 테니 말이야


되도록 팀회식에는 참여하되 1차만 마치고 빠져나오는 습관을 가지는 게 좋아(비록 그 시절의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2차, 3차로 이어져 술에 잔뜩 취해 나누는 대화치고 생산적인 경우는 거의 없어. 매일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과 그 얘기가 얘기인 뻔한 대화를 통해 얻을 거라곤 공허함과 지독한 숙취, 내장기관의 혹사뿐이야


2차, 3차까지 동참 안 했다고 팀십이 없다느니 공동체 의식이 없다느니 하는 리더가 있다면, 가뿐히 무시해. 그 사람이 내 건강을 책임져 주지는 않아.


중요하지 않은 것, 버려야 할 것을 알지 못해 정작 가장 중요하고, 절대 버리지 말아야 할 것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는 우를 범해선 안돼


주 2회, 30분. 일상에 스며들듯 운동하기

운동 힘들지. 안 해본 사람이 맘먹고 10분만 해보면 알게 돼. 이게 보통 일이 아니구나. 새해맞이 50% 행사에 혹해 1년짜리 피트니스 이용권을 끊어놓고 1개월도 못 채우고 돈만 날리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지


처음엔 큰 욕심내지 말고 가볍게 시작해. 주 2회 퇴근 후 30분이면 충분해. 고작 그 정도로? 싶겠지만 실제 해보면 그 정도 유지하기도 결코 쉽지 않아. 관건은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느냐 야. 운동의 강도를 낮추거나 시간을 더 짧게 가져가도 되지만 매주 2회를 유지한다라는 원칙만은 지키라고. 잠자기 직전 단 1회 푸시업만으로도 매일 꾸준히 유지하기만 한다면,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이 수십% 나 감소한다는 실험결과도 있으니 말이야


주 2회 30분 원칙에는 사실 트릭이 있어. 실제로는 주 4회지만 마치 주 2회 인 것처럼 뇌를 속이는 거야. 수요일 하루를 건너뛰면 돼. 그러니까 월화, 목금 이렇게 마치 주 2회씩만 하면 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되는 거야. 게으른 나 역시 이 방법으로 4년이 넘도록 운동 루틴을 유지하고 있어


관점만 조금 바꾸면 일상생활에서도 운동은 얼마든지 생활화할 수 있어. 가까운 거리는 되도록 걸어 다니는 거야. 지하철이나 버스 1~2 정거장 정도는 일부러 그전에 내려 걷는 거지. 따로 시간을 낼 필요도 없고 굳이 의지력을 발휘할 필요도 없는 그야말로 패턴화가 된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커. 어디 그뿐인가? 조금 빠른 속도로 걸으며 머릿속 생각을 정리할 수도 있고, 주변 풍경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계절감이나 하루 시간의 변화 등을 느끼다 보면 감수성도 풍부해져


차라리 10분, 20분 조금 더 빨리 도착해서 쉬는 게 더 큰 가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운동 같은 운동을 하려면 더 긴 시간을 내야 하고 이런저런 장비와 의상을 갖추는 따위 꽤나 큰 의지력이 소모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토록 손쉽게 행동으로 옮길 수 있고 짧은 시간을 투자해 효과를 낼 수 있는 운동 습관이 또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어. 그 만한 시간을 들일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해


가볍게 툭, 그렇게 시작해 보라고




이전 26화 [신입의 직격]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어떻게 아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