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직은 곧을直, 자기 자신으로서 곧게 서야 한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무엇보다 나 스스로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뭘 잘하고 못하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부터 제대로 알고, 욕망이나 감정 등 내적 작용을 잘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을 주로 다뤘어요
두 번째 직은 짤織, 마치 질 좋은 날실과 씨실이 서로 짜여 하나의 명품 옷감이 만들어지듯, 직장이라는 조직사회 역시 개성 있고 뛰어난 개개인이 모여 빈틈없이 팀을 이룰 때 비로소 강력해진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어요. 더불어 함께 일하는 가치에 대해 공감능력과 관계 맺기의 두 가지 챕터로 나누어 이야기했지요
세 번째 직은 직책職, 우리가 일하는 이유는 먹고살기 위해서라는 경제적 이유도 크지만, 결국은 내가 나로, 내 이름값으로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함이 아닌가 싶어요. 그러려면 내 분야를 먼저 찾고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길 밖에는 없죠. 글쓰기 능력, 마인드, 태도 따위 내적 소프트웨어와 그것들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외적 하드웨어를 균형 있게 갖추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어요
17년간의 직장생활은 2~40대 내 인생의 황금기를 관통한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그 안에서 겪은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 성취감과 패배감 따위 총체적인 경험의 궤적을 돌아보니 그때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제야 보이는 것들이 있을 수밖에 없지요
그 인식을 가지고 20대의 나로 다시 돌아간다면 조금 더 잘 살았을까?라는 질문으로 이 글은 쓰였습니다. 통찰이라기엔 민망하지만, 지난 시간을 먼저 살아본 경험자로서 그 20년을 압축해 잘 전달할 수 있다면, 적어도 관점의 폭 하나를 넓혀주는 정도의 가치는 분명히 있다고 믿었어요. 물론 100% 정답이라고도 할 수 없죠
'아! 그때의 당신은 그랬고 이렇게 하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구나. 일리가 있네. 그렇게 해봐야겠어'
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아! 그때의 당신은 그랬고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구나. 그런데 지금 내 경우에는 아닌 것 같은데? 또 다른 제3의 방법을 찾아봐야겠어'
라고 할 수도 있죠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故 성철 스님의 말씀인데요. 처음엔 이게 무슨 당연한 소리인가 싶었죠. 숨은 뜻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그뿐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듣게 된 철학 강의에 또다시 그 말씀이 언급 됐는데 가만히 곱씹다 어느 순간 아! 하는 나만의 깨달음에 이르렀던 기억이 있어요
처음엔 보이는 게 전부죠. 말 그대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일 뿐이에요. 그런데 살다 보니 어? 내가 알던 산이 그 산이 아닐 수 있겠네? 싶을 때가 있어요. 잘 안다고 믿었던 누군가에게서 처음엔 미처 알지 못했던(긍정이든 부정이든) 무언가를 보게 된 경우와 같습니다. 그래서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은 말이 아니었네?' 합니다
그 단계에서 조금만 더 깊이 나아가면 또 어느 순간에는 내가 배척하고 외면했던 또 다른 대상에게서 내가 바라던 것, 혹은 보고 싶어 하는 면이 발견되기도 하는 거예요. 이번에는 '산은 물이고, 물은 산이었구나'로 나갑니다. 그 새로운 대상에 흥미가 생겨 관찰하고 부닥치고 생활반경 안으로 들여 겪어보니 또다시 익숙해집니다
그러다 문득 한동안 뒷전이었던, 그렇지만 늘 그 자리에 있던 최초의 대상이 다시 눈에 들어옵니다. 마치 오래된 책상 속 서랍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일기장을 발견한 것처럼 그날로 돌아가 뭔가 아련해집니다. 굳이 일기장을 펼쳐 넘겨보지 않아도 그 안에 쓰인 게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는 "아,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었구나"합니다. 이때의 문장은 시작 지점에서의 문장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완벽히 일치하지만, 그 속에 담긴 것은 이제 전혀 다른 의미가 됩니다
흐름도로 그려보면 이런 모양이에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일견 뻔해보이는 명제는 일정 시간과 꽤 진지한 사유의 과정을 거쳐 비로소 손에 얻게 된 하나의 정제된 결과물인 셈이죠.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성자의 명언을 내 방식대로 받아들인 나만의 깨달음, 즉 해답이 됩니다. 그 자체로 힘이 생기죠
신입 여러분 앞에 당장 주어진 모든 명제는 대부분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표면적 당위에 그칠 겁니다. 그 자체로 이견도 없고 완성된 형태로 보이겠지만 뻔하고 재미는 없죠. 이미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해서만들어 놓은 결과물일 뿐이니까요. 그 안에 꽤나 쓸만한 것들이 들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오롯이 내 것은 아니에요
아무 생각 없이 따르다 보면 어느 순간 알게 됩니다. 어? 이건 나랑은 안 맞는 것 같은데? 왜 이걸 이렇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그런 의문이 든다면 이제어떤 명제든 나만의 방식으로 사유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시그널이 주어진 겁니다. 그 시점이나 깨달음의 형태는 천차만별일 테지만, '왜'라는 호기심과 내 주관을 세우려는 야성을 잃지 않는 한, 반드시 대답해야 할 시점이 다가옵니다
그렇게 찾은 대답이야말로 거대한 조직의 일개 '부품'으로 전락하지 않고 '나'라는 주체로 우뚝 설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당장 답을 찾지 못해도 괜찮아요. 그 과정에서 얻은 것들은 무궁무진할 테니. 지름길도 없고 돌아갈 길도 없습니다. 묵묵히 나아가는 수밖에요. 싫든 좋든 그 과정을 겪어내고 얻어내는 것만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자산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