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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1편 | 전시 왜 봐?

나는 어쩌다가 매주 전시 차력쇼를 하게 되었는가

by 흐름 Mar 23. 2025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원래 오타쿠들은 물어보지 않아도 자기가 좋아하는 주제를 나불거리고는 한다  

앞으로 펼쳐질 글에 대한 단 한 문장의 요약을 해 보라면 자신있게 이 밈을 내밀 것이다. 전시 하나 보러 파리도 도쿄도 가버리는, 아름다운 것을 보러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평범한 직장인의 전시 보는 이야기.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나도 문득 내 마음이 궁금해서 혼자라도 나불대 보려고 한다.


내가 .. 전시를 많이 보나?


 전시를 ‘많이 본다’는 자각을 한지는 사실 오래되지 않았다. 워낙 SNS에 전시 정보나 전시 보러 다니는 사진이 많이 올라와서 그런가, 그냥 남들보다 조금 더 좋아하고 조금 많이 보는 편이라고 생각했지 객관적으로 많이 보는 사람인지는 인식하기가 어려웠다.

 사실 이쯤 되면 내 알고리즘이 얼마나 편향되었는지를 의심해 볼 만하지만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가진 이상 내게는 그게 매우 자연스러웠다. 어딘가에서 받은 전시 관람 경험 설문지 항목 중 ‘1년 기준 평균 전시 관람 횟수’의 선택지에 미리 제시된 숫자들이 내가 적고자 하는 숫자보다 터무니없이 적어 ‘기타’ 란에 ‘80?회 정도..’라고 머뭇거리며 적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렇게 ‘평균’에 대한 감각을 의심하고 스스로의 전시 관람 횟수에 대해 ‘많다’라는 자각이 생기기 시작하면, 이제 겸허히 받아들이게 된다. 마치 이렇게 말이다.


�(월요일 오전, 회의 후 평화로운 스몰톡 시간)

A : 주말에 뭐 하셨어요?

나 : 전시 봤어요.

A : 아~ 전시 자주 보시네요.

나 : 네. 주말 일정이 보통 심플해요. 전시 보거나, 친구 만나거나, 친구랑 전시 보거나…

(그렇게 대화는 성급히 마무리된다)


 이 대화는 민망하지만 실화이다. 2025년이 시작된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벌써 약 30개 정도의 전시를 본 것 같다. 챙겨보고 싶은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하나씩 늘어가면서 점점 전시 관람 일정이 차력쇼처럼 되어가다 보니 이제는 그냥 누구에게 같이 보러 가자고 물어보지도 않고 맘 편하게 혼자 본다.

 직장인이 전시를 볼 수 있는 시간은 미술관이 야간개장을 하는 날의 저녁 아니면 주말뿐이다. 그래서 주말 일정은 (3월 현재 기준) 6월까지 차 있다. 적어도 분기에 한 번씩은 아예 날을 잡고 리스트 업을 한 뒤 촘촘하게 타임라인을 짠다. 대부분이 전시 혹은 전시 관련 일정이다.

 MBTI 얘기는 이제 그만하고 싶지만, 나는 P가 90% 이상 나오는 ‘그때그때’ 인간이다. 하지만 전시 관람 일정에 있어서는 절대로 그럴 수 없다. 팔자에 안 맞게 철저하고 꼼꼼한 척을 해야 한다. 전시를 보다 보니 영화도 보게 되고 책도 읽게 되고 강연도 자꾸 들으러 다니게 되기 때문에, 정말 신중하게 잘 결정해야 동선도 낭비하지 않으면서 보고 싶은 모든 전시를 놓치지 않고 모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생활 절임이라는 칭호를 획득했습니다


 며칠 전 머리를 싸매며 전시 일정을 짜는 나를 보며 친구가 ‘문화생활 절임’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부정할 수도 없고 너무나도 적절해서 웃어버렸다. 그냥 짜는 것도 아니고, 체력과 시간과 거리와 동선을 모두 고려해서 두뇌를 풀 가동시키는 일을 기꺼이 자주 하게 된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나? 하는 생각도 문득 든다. 하지만 원래 사랑이란 가랑비에 옷 젖듯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가랑비보다는 좀 더 센 비를 맞은 것 같기도 하다.)  

(이것은 실제로 나의 2025년 3월 29일 토요일 전시 관람 계획이다. 이 완벽한 동선을 보라..)


 나는 대체 왜 이렇게까지 전시를 보게 된 걸까? 생각해 보면 정말 ‘보다 보니 이렇게 보게 되었다’가 맞는 것 같다. 좋은 경험들이 쌓이다 보니 더 잘 즐기고 싶게 되고, 맷집과 완력이 쌓이며 더 많이 할 수 있게 되기 마련이니 말이다. 너무 재미없는 답변인가? 하지만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취미가 그렇다. 5분할을 하며 매일 헬스장을 드나드는 사람들도 처음에는 회원복을 어색하게 입은 초보였을 것이고, 풀코스 마라톤을 뛰는 러너들도 언젠가는  런데이(*러닝 훈련 어플) ‘30분 달리기 훈련’ 1주차였을 것이니.  


 디자인을 공부하며 미술사나 미학 이론 근처를 서성거렸을 뿐, 관련한 전문적인 지식이 많은 편은 아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아는 게 많지 않으니 순수한 관객으로 남을 수 있다는 속 편하고 기분 좋은 나태에 영원히 기댈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비겁할수가.) 디자인 교육 커리큘럼에 현대미술을 깊이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수업은 분명 있었으나 극히 일부였으니, 따지자면 관계자가 아닌 사람들 중에서는 가장 가깝지 않을까. 예술이라는 영역에 대한 그 묘한 친밀감과 거리감, 그 사이 어디쯤 나라는 전시 차력사가 존재한다.


상상의 실체 속에서 해방감을 얻을 수 있다면


 전시 관람을 제대로 하기 시작한 건 순전히 ‘실용적인’ 이유였다. 2019년 하반기부터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며 삼성디자인교육원(이하 SADI) 입시를 준비하면서 마치 과제처럼 전시를 ‘해치우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전에도 관람을 안 한 건 아니었다. 어릴 때 부모님의 손을 붙잡고 예술의 전당에 갔던 기억도 있고, 성인이 되고 나서도 가끔 전시를 보러 갔었다. 하지만 분명한 이유나 계기가 생긴 것은 그때였다.

 어릴 때부터 디자인을 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와 스스로의 재능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미대 진학을 포기했었다. 하지만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는 디자인에 대한 꿈을 품고 있었다. 그 꿈이 어쩌면 현실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어느새 들었다. 저 높은 하늘에 얼핏 동아줄이 내려오는 게 보였다. 손끝에 닿을 것 같았을 때, 어떻게든 저 동아줄을 붙잡고 싶었다.

 순탄하지는 않았다. 주중 낮에는 일을 하니 시간과 체력이 모두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게다가 학원을 다닌 것도 아니라서 경쟁자들의 수준이나 상황을 전혀 모른 채 혼자 고립되어 준비하는 상황이었고, 애매한 비전공자(교대 시절 세부 전공이 미술교육이긴 했지만 거의 교양 수준이었다)로서 뾰족한 차별점을 쌓아가야 한다는 부담을 (아무도 요구하지 않았으나 혼자서) 안고 있었다. 닥치는 대로 디자인 잡지나 칼럼을 찾아 읽고 예술 관련 지식을 머리에 집어넣었지만 여전히 그 시절의 필자는 불안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전시를 좀 보러 다녀 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인과 예술은 분명 구분되어야 하지만, 또 완전히 떨어뜨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교과서처럼 훑어보았던 ‘네이버 디자인 포스트’ 게시글의 상당수를 전시나 예술 관련 포스트가 차지했다. 게다가 2019년은 바우하우스* 설립 100주년인지라 더욱 디자인 관련 전시가 많았다.


 *참고 : 바우하우스는 1919년부터 1933년까지 독일에서 설립·운영된 학교로, 미술과 공예, 사진, 건축 등을 통합하여 교육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나치에 의해 강제 폐교된 이후에도 현대식 건축과 디자인에 큰 영향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예술, 건축, 그래픽 디자인, 실내 디자인, 공업 디자인, 타이포그래피에 깊게 영향을 미쳤다.


 일단 초록창에 ‘서울 전시’라고 쳤다. 몇십 페이지가 나왔다. 찾아보니 볼 게 너무 많았다. 볼 게 많다고 생각하니, 거짓말처럼 불안이 가라앉고 설레기 시작했다. 설렘의 실체를 찾기 위해 일단 국립현대미술관부터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요일 야간개장은 이미 알고 있었다. 모든 작품을 하나하나 진득하게 봤다.  


(2019년 올해의 작가상 전시의 이주요 작가 섹션. 이주요 작가는 그 해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전시를 보고 나온 뒤 찍은 사진. 평일 저녁의 미술관은 더없이 평화로웠다. 가슴이 떨리는 건 오랜만이었다.)


 그 뒤로도 조금씩 조퇴를 달고 나와 전시를 보러 다녔다. 어차피 떠날 교직이었다. 원할 때 쓰지도 못하는 연차인 만큼 열심히 쪼개서 조퇴로 날려 버리자는 마음이었으니. 서울에 위치한 이름 있는 미술관은 거의 다 한 번씩은 갔던 것 같다. 어느 미술관을 가든, 들어서는 순간 해방되는 기분이었다.  


(조퇴 사유란에 ‘독서교육 연구’라고 적고 갔던 언리미티드에디션. 이곳이야말로 정말 살아 있는 독서교육의 현장이 아니겠는가.)

교사로 일할 때 가장 괴로웠던 부분들 중 하나는, 누군가를 연기하는 기분을 떨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진짜 나의 모습과 ‘이상적인 교사’의 모습을 비교하며 내 자연스러운 반응과 행동을 끊임없이 재단할 수밖에 없었다. 표준편차가 지극히 좁은 이 집단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언제나 너무 적었고 나는 대체로 조금씩 어긋난 선택을 했다.

 하지만 미술관은 너무나 자유로웠다. 모든 작품은 온전히 자유롭게 그 자리에 있었다. 크기, 형태, 이유, 결론, 방식, 모든 게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현실과 멀어지기 위해 끊임없이 낯설어지는 공간에서, 닿아본 적 없는 상상의 실현들을 마주하며 극도의 해방감을 느꼈다. 안식처가 생긴 기분이었다.  

(숨을 곳이 생기니 학교도 조금씩은 버틸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영어 수업 중 예시로 적은 문장과 마우스로 대충 그린 그림.)

 SADI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면서는 레퍼런스 수집이나 작업에 대한 영감을 얻겠다고 전시를 더 많이 보긴 했던 것 같다. 그때는 정말 뭔가를 보고 배워야 해서 그 목적에 맞게 전시를 많이 봤었다. 정작 전시를 가장 많이 밀도있게 보고 있는 지금은 시각예술분야와는 가장 거리가 먼 UX/UI 디자인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어쨌든 2019년 이후로 전시는 그 목적이나 방식을 변모하며 언제나 내가 가장 먼저 찾는 ‘취미’였다.

 전시 관람은 처음에는 수단이었으나 점차 목적 그 자체가 된 것 같다. 예전에는 무언가를 얻고 싶어서 전시를 보았다면 이제는 전시 자체를 즐기게 됐다. 오히려 전시를 더 잘 보기 위해 영화나 책 등 다른 것들까지 자꾸 건드리게 된다. 삶에서 차지하는 우선순위를 따져도 다른 것들과 쉽게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독보적이다.

지금은 전시를 보는 행위 자체가 완전히 자연스럽게 내 삶에 안착했음을 느낀다.


더 잘 사랑하기 위해 돌아보는 글


 앞서 서술했듯 나는 도락의 일환으로 전시를 즐기는, 지극히 나태하고도 나이브한 관람자다. 현대미술이라는 거대한 장막을 자신있게 걷어내어 나만의 뾰족한 시각을 선보일 만큼의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가진 건 가끔 인용이 너무 많은 평론을 읽다 보면 흐린 눈으로 넘겨 버리는 평범한 문해력 정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통해 대단하게 멋진 결론이나 멋들어진 평론을 늘어놓으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무엇’을 보는지보다는 ‘왜’ 보는지에 더 집중해보려고 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자. ‘전시 왜 봐?’ 시리즈는 간단히 말해, 전시 오타쿠의 혼자 나불대는 이야기이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더라도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열심히 떠들어 보면서, 내가 왜 이것을 사랑하는지, 내가 이것을 사랑하면서 어떤 변화를 맞이했는지를 들여다보려 한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구체적이면서 일상적인 방식으로 자유를 주는 이 취미에 온전히 절여지고 싶다.



[요마카세] 토요일 :  전시 왜 봐?

작가 : GARDEN

소개 : 주말마다(사실 평일에도..) 전시를 보러 다니는 직장인의 전시 보는 이야기입니다. ‘전시 왜 봐?’ 라는 질문에 짧게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을 상상해도, 무엇이 펼쳐져도 이상하지 않은 공간, 미술관에서 보낸 시간들을 글로 풀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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