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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양을 품은 별 Oct 14. 2024

단테의 별 - 1권 2부 25화

빛의 출현(出玄)-빛을 품다/존경도 사랑? - (17)

물에 빠진 생쥐꼴로 교실에 들어선 문승협일행이 도둑질하다 들킨 마냥 깜짝 놀랐다. 아직 야자시작시간 15분 전인데도 서수연선생이 평소와 달리 일찍 교실에 와있었다. 서수연선생과 반아이들의 눈동자가 걱정반 궁금반 표정으로 문승협일행에게 꽂혀있었다. 안광호와 이정훈이 부담스러운 침묵 속 시선을 떠넘기려고 문승협을 쳐다보았다.

“괜찮아요. 괜찮아.”

“뭐가 괜찮아, 많이 젖었구만.”

“아, 이건 수돗가에서 장난치다 그런 거예요.”

“그 꼴이 뭐야, 어여 닦아.”

“네, 감사합니다.”

문승협이 무슨 일 있었냐는 듯 괜찮다고 하자, 비로소 반아이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며 웅성거렸다. 서수연선생은 자기 의자등받이에 걸려있는 수건을 가져다주며 평정심을 되찾았다.

서수연선생이 야자시간도중에 문득문득 문승협을 관찰하였다.

방과 후 버스 타러 가면서도 아픈데 없는지 재차 확인했다. 헤어지면서 내일 보자는 말에 유난히 힘주었다.

다음날 조회하러 교실에 들어오면서도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를 건네며 문승협표정을 살폈다.

문승협은 왜 그러는지 궁금하였다. 점심시간에 농구하다 만난 남강선배를 통해 알았다.

“괜찮냐?”

“예. 어제 어떻게 알고 온 거예요?”

“느그 담임이 부른다길래 갔드만, 니가 껄렁한 아그들이랑 운동장 쪽으로 갔다믄서 걱정하드라.”

“선생님은 어떻게 알았지?”

“응?”

“아 아니에요.”

“참, 어제 너랑 같이 있던 이정훈하고 친하다메?”

“네.”

“그 아그가 공부 땜시 고민이 많을 것인디.”

“어? 어떻게 아세요?”

“울아부지가 그놈 아부지를 잘 알어. 그놈아 아부지가 평상시는 천사인디, 술만 마시믄 돌변한다드라.”

“그래요? 근데 공부는 왜?”

“그놈아 아부지가 못 배운 한 땜시, 술만 먹으믄 아들을 쥐 잡듯이 잡는단다.”

“정말요?”

“잉, 그 동네 사람들이 다 알믄 말 다했제.”

“형, 부탁할게요, 이거 비밀로 해주세요.”

“그라자, 어따 말해서 뭐 하겄냐.”

“그리고, 어제 도와줘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넣어두고, 그런 일에 휩쓸리지 마라잉.”


이진구가 문승협에게 한방에 나가떨어졌다는 소식은 학생들 입에서 한동안 오르내렸다. 희한한 점은 못난이형제들이 아닌 이진구패거리들을 통해 목격담처럼 구체적으로 퍼졌다. 그럼에도 이진구는 꿀리지 않고 꿋꿋하게 학교를 활보했다. 자신을 따르던 패거리들이 떠나자 3학년 불량학생들에게 꼬붕짓을 하며 따라다녔다. 더 이상 아이들을 괴롭히진 않았으나 여전히 경계의 대상이었다. 악랄함을 잠시 감췄는지는 알 수 없었다.


문승협은 미움을 허락한 이진구보다 이정훈이 신경 쓰여 관찰하게 되었다.

이정훈의 부모는 시장에서 가방과 모자를 판매하였다. 수년 동안 성실한 수완으로 매장을 점점 늘려갔다. 남강이 말한 이정훈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도 다르지 않았다. 이정훈아버지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중학교를 중퇴해 배움에 대한 결핍이 있었다. 장사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무시받아 쌓인 상처를 술로 분출했다. 그런 열등감과 자격지심이 자녀들을 향한 높은 교육열로 번졌다. 이정훈부모가 시끄러운 시장통에서 살다가 얼마 전 큰 매장과 가정집이 딸린 시내중심가 건물을 사서 이사 간 이유도 맹모삼천지교와 다를 바 없었다. 이정훈에게 전교 1,2등을 다투는 고등학교3학년 누나가 있었다. 늘 비교되는 스트레스이자 부모와 성적갈등이 빈번히 일어나는 원인이었다. 하지만 성적을 올리려는 이유를 묻는 서수연선생에게 결코 부모 때문이라거나 가정환경을 핑계 대지 않았다.

문승협이 야자시간에 이정훈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들켰다. 이정훈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장난을 걸었다.

“승협씨, 혹시 취향이 남자로 변한 것은 아니지라?”

“야, 뭔 소리야, 징그럽게시리.”

“음마, 오해는 지가 사고 나를 변태로 몰아부네잉.”

“내가?”

“니가 방금 야릇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잖애?”

“야 수다라, 이번 토요일에 수업 끝나고, 너네 집에 놀러 갈까?”

“안 부르던 별명까지 부르고잉, 뜬금없이 우리 집은 으째서야?”

“피, 싫으면 관두고.”

“아야 수다라, 서울놈 삐지믄 오래간다잉. 그라고, 이사했으믄 성들을 초대해야 장유유서 아니겄어?”

“오메 안버텅씨, 당신이 지금 나한테 장유유서를 따지요. 내가 너보다 더 묵은 밥그릇을 한 줄로 세우믄, 삼천포로 돌아가는 길 땜시 끝이 보이지도 안 해.”

“염병, 그건 니가 나보다 밥을 많이 먹은께 그라제.”

“하하하.”

“어이, 웃는 문승협씨. 당신멩키로 나보다 생일 늦은 아그들은, 두 줄로 세워도 끝이 안 보여 부러.”

“하하하, 인정. 생일 빨라서 아주 좋겠수다 수달씨.”

이정훈이 자기 집에 놀러 가는 대신 못난이형제들 집을 한 번씩 놀러 가자고 하였다. 문승협과 안광호가 즉각 동의하고, 황민과 송귀남에게는 따로 말하기로 했다.


못난이형제들이 이정훈집에 들어가니, 이정훈부모가 송구스러울 정도로 격하게 맞이하였다.

이정훈은 예상외로 다정하게 반기는 부모태도에 놀랐다. 조심스레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도 되는지 물었을 때만 해도 시큰둥하게 반응하여 걱정했었다.

“엄니아부지가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믄, 며칠씩 눈치 안 봤을 것인디.”

“아따, 우리 집에 친구들 데려온 것이 니가 처음인께 그랬제, 딴 이유가 있간디?”

문승협은 이정훈부모를 보면서,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고 그 처음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정훈부모가 아들친구들에게 뭘 해줘야 할지 안절부절못했다. 비빔국수와 만두를 한 상 차리더니 또 빵과 우유를 내놓았다. 수박과 참외를 주고는 금세 자두와 복숭아를 내밀었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하였다. 먹고 싶은 걸 말하라며 채근했다. 한참을 지켜 서서 대답을 기다렸다. 때마침 지나가는 아이스하드장사를 불러 팥빙수를 사주었다. 재미있게 놀다 저녁까지 먹고 가라는 말도 빠트리지 않았다.

못난이형제들은 차려준 음식을 배불리 먹고도, 과일을 먹으며 빌려온 만화책을 보았다. 한참 놀다가 집에 가야 한다는 황민과 송귀남을 배웅하는데, 이정훈의 누나가 왔다.

이정훈누나가 동생뿐 아니라 동생친구들까지 아기취급하였다. 문제를 내서 공부실력을 확인하겠다며 고등학교 전교 1,2등 위세를 뽐냈다. 당황한 문승협과 안광호는 뜻밖의 시험을 치렀다. 다행히 합격점을 받았으나, 친구들들보다 못한 이정훈은 누나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문승협이 머쓱해 안광호와 슬그머니 화장실에 갔다. 다녀오면서 거실진열장에 놓인 가족사진을 봤다. 이정훈의 부모와 남자아이 두 명에 여자아이 한 명이 찍힌 사진이었다. 작은아이와 여자아이는 이정훈과 누나였다. 큰 남자아이는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때마침 거실로 들어오는 이정훈엄마에게 물어볼까 하다, 실례일 수 있다는 생각에 그냥 방으로 들어갔다.

이정훈누나가 화장실에 다녀온 문승협과 안광호를 보고 잔소리를 멈췄다. 이정훈은 친구들 앞에서 자존심 상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문승협이 무심코 방금 봤던 가족사진에 모르는 남자아이 한 명이 누군지 물었다. 이정훈남매가 흠칫 놀란 표정으로 서로 쳐다볼 뿐 아무 대답 없었다.

문승협이 무안함을 감추려고 며칠 전 TV에 나온 화젯거리를 억지로 꺼냈다. 단지 친한 친구라는 이유로 용기를 냈다. 남의 가정사에 괜한 참견과 오지랖이 아닌지, 오히려 큰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닌지 고민했었다. 이정훈마음을 움직여 부모와 대화를 시도하는 기회이길 바라며 준비한 소재였다.

문승협이 공부압박에 못 이겨 자살한 중학생이야기로 이정훈누나에게 견제구를 날렸다. 주취폭력에 아들이 죽게 되면서 가정이 풍비박산 난 이야기를 진지하게 추가하였다. 약간 비장한 목소리로 가족 간 솔직한 대화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역설했다. 안광호도 방송을 보는 내내 자기 이야기 같아서 슬펐다며 동조하였다.

“에휴, 우리는 파릇파릇한 청소년이 아니라, 공부에 찌들어 시들시들한 늙소년이어.”

“아, 그래서 네가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는구나?”

“연설하네. 아야, 내가 재미난 야그하나 해주까?”

“뭔데?”

“울아부지랑 같이 그 방송 보다가 용돈받았잖애.”

“어떻게?”

“내가 시무룩해서 테레비를 보고 있는디, 울아부지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물끄러미 쳐다보드라고. 기회는 이때다 싶어 갖고, 공부는 알아서 할 테니 용돈이나 좀 달라고 했제. 그란께는 벌떡 일어나드만 지갑을 꺼내드라. 불로소득을 얻게 해 준 아주 좋은 프로였어, 큭큭큭.”

“이그, 너답다 너다워.”

피식 웃으며 꿀밤을 주려는 문승협과 피하려는 안광호가 실랑이했다. 장난스러운 두 사람과 다르게 이정훈남매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이정훈이 갑자기 한숨을 몰아 쉬더니 입을 열었다.

“나한테 대학교에 다니는 성이 있었는디, 3년 전에 공부 땜시 자살했어.”

“너는 뜬금없이 뭔 소리하냐, 실족사라고 경찰조사서도 확인했는디.”

“내가 숨겼어, 성이 쓴 일기장.”

문승협과 안광호는 이정훈의 폭탄발언에 깜짝 놀라 얼음동상처럼 굳었다.


이정훈의 형은 서울대학교법학과에 수석입학하여 전액장학금을 받은 수재였다. 공부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다. 1학년 때 이미 사법시험 1차에 합격해 판검사는 따놓은 당상이었다. 가족뿐 아니라 친인척들에게까지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런 이정훈의 형이 3년 전 아침 일찍 등산에 나섰다가 산에서 추락하여 사망했다. 경찰이 너무 깨끗한 주변정리에 자살가능성을 조사하였지만, 단서를 찾지 못해 단순추락사로 결론지었다. 비보를 접한 이정훈이 형자취방에서 발견한 일기장을 몰래 챙겼다. 나중에 아무도 모르게 혼자 읽었다. 부모가 받을 충격과 형의 명예를 위해 일기장을 숨겼다. 일기장에는 공부로 받은 압박과 스트레스로 괴로워한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형의 꿈은 의외로 소박한 서점주인이었다. ‘스스로의 억압을 벗고 하늘을 비상하는 자유를 선택하겠다, 기대를 저버려 부모님에게 죄송하다’는 글이 죽기 전 일기장마지막에 쓰여있었다.


“그 그럼, 사진에 있는 사람이 형?”

“잉, 맞어.”

“정훈아, 정말 미안하다.”

“모르고 한 건께, 괜찬해.”

“잉, 모르고 한 건께 널 탓할 순 없제. 근디, 사실 안 괜찬해, 오빠가 생각나갖고 슬퍼.”

“죄송해요 누나.”

“니는 나한테라도 말했어야제, 왜 말 안 했냐? 나도 죽을 거 같이 힘들어 죽겄는디.”

“엄니아부지가 충격받을까 비 걱정 돼갖고 그랬어. 그라고, 말하믄 뭐가 달라지냐?”

 “…….”

이정훈남매는 순간 수많은 감정이 혼재했다. 격정적인 감정에 안정을 찾으려는 듯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정훈누나가 빠르게 냉정을 찾았다.

“승협아, 아까는 놀랐제? 인자 괜찬해, 인자는 현실로 받아들여졌어.”

“네, 미안하면서도 조금 놀라긴 했어요.”

“니도 나멩키로 생각이 많은 갑다잉? 그래, 세상은 격식과 배려 때문에 괜찬다고들 한디, 사실 안 괜찬은 경우가 더 많아야, 가끔은 솔직히 표현하는 것도 괜찬해.”

문승협은 혹시 이정훈의 부모가 들었을까 봐 걱정하였다. 별다른 동요 없이 저녁상을 차려주어 안심했다. 불고기를 반찬으로 맛있게 먹고, 다음에 또 놀러 오라는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일요일이 지난 월요일, 문승협이 수척한 모습으로 등교한 이정훈에게 별일 없었는지 물었다. 우연히 엿듣고 이정훈부모가 모든 사실을 알았다는 말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사실을 듣는 순간 들이닥쳤을 법한데도, 전혀 아무렇지 않게 행동한 이정훈부모에게 대단함을 넘어 경외감마저 느꼈다.

“그럼, 형일기장은 보여드렸어?”

“느그 가고 나서 가져오라길래, 그냥 갖다 드렸어.”

“다른 말씀은 안 하시고?”

“그날은 별말 없었는디, 어제 아침에 불러서 가본께, 얼마나 울었는가 두 양반 다 눈이 퉁퉁 부었드라고. 누나랑 나랑 앉혀놓고 한참 말이 없드만, 아부지가 딱 한마디 하드라.”

“뭐 뭐라 셨는데?”

“미안하다고.”

“어머니는, 어머니는 아무 말씀 없으셨어?”

“같은 일 또 당하기 싫은께, 인자부터는 그냥 느그 하고 잡픈 대로 하고 살아라, 그러드라.”

“내가 괜한 이야기 해서 평지풍파를 일으켰나 봐, 너희 가족에게 미안하다, 진심이야.”

“아니어, 어찌 보믄 잘 된 일이여. 언젠간 말했어야 했고, 나도 언제 말할지 고심했은께.”


이정훈의 아버지는 어찌할 수 없는 태생환경 때문에 불평등한 삶을 살면서, 원치 않은 열등감과 자격지심을 얻었다. 자신처럼 불행하지 않길 바라는 자식사랑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자식들이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당당하게 살기 원하는, 어찌 보면 당연한 부모욕심이 빚어낸 불행이었다. 이 사회 말고는 어느 누구에게도 탓할 수 없었다.

이정훈의 부모는 곧 큰아들죽음에 대오각성하였다. 순종적이었던 이정훈엄마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주취폭력 남편에게 적극 대응했다. 이정훈아버지도 술을 끊음으로써 화답하였다.

이정훈의 가족은 정상적인 가족관계가 어떤 것인지 무엇이 정답인지 몰랐었다. 불편해서 마주치길 피했던 과거태도를 버리고 즐겁게 함께하는 시간을 점차 늘려갔다. 적어도 가족 때문에 괴로운 일은 없을 정도로 빠르게 회복되었다.

이정훈은 스스로 버렸던 막내아들지위로 복귀해 가족모두에게 사랑받는 막내특권을 누렸다. 때때로 누나의 시기와 질투를 즐기는 여유도 생겼다. 형이 그토록 원하던 자유를 자신이 얻었다는 자랑 아닌 자랑을 했다. 다만 이정훈이 밖에서 말이 많은 반면, 집에서는 꼭 필요한 말 이상은 하지 않았던 이중인격자였으나, 지금은 밖에서나 집에서나 말이 많아 이정훈의 가족에게 크나큰 숙제였다.


“야 수다라, 어제 버스에서 느그 누나 만났는디야, 니 학교에서도 말 많냐고 묻드라?”

“당연히 무자게 점잖다고 말했겄제?”

“잉, 별명이 수다리라고 야그 해줬어, 큭큭큭.”

“요런 싸가지, 니가 말을 고따구로한께, 하느님이 좋은 이빨 안 주고 버텅니 준거여. 이 안버텅아, 킥킥.”

“야자시간에 공부 안 하고 떠드는 사람이 있네?”

“선생님, 이수다리하고 안버텅이 떠들어요.”

“하하하.허허허.”

안광호와 이정훈이 작은 목소리로 티격태격하다, 목소리가 점점 커져 서수연선생에게 지적당하였다. 문승협이 장난스레 고자질하자, 반아이들이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서수연선생이 둘에게 창가로 가서 손들고 있으라고 했다. 둘은 나가면서도 옥신각신하였다.

서수연선생이 문승협을 불러 책상 옆에 앉혔다. 요즘은 이진구와 사이가 어떤지 물었다.

“특별히 마주칠 일이 없어서, 나쁠 것도 좋을 것도 없어요.”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선생님, 지난번 이진구와 그럴 때, 어떻게 알고 남강선배를 보냈어요?”

“그건 비밀이야. 말해주면 너 또 양명기선생을 질투할 거잖아.”

“양명기선생님이 말해줬어요?”

“비밀이라니까. 안광호, 이정훈, 자리로 들어가.”

서수연선생은 비밀이라면서도 양명기선생을 통해 알았다는 힌트를 줬다. 안광호와 이정훈을 벌에서 해제하며 딴청 피웠다, 다른 일은 없는지 물었다.

“특별한 일은 없는데요.”

“그럼, 보통 일은 있다는 얘기네?”

“네?”

“호호, 놀라기는. 뭔가 있긴 있구나? 어차피 다 들킬 건데, 어서 실토해.”

“보통 일도 없는데요.”

“오호, 숨기겠단 말이지? 요즘 정훈이는 좀 어때?”

“네?”

“잡았다 요놈, 무슨 일이야? 내가 담임이니까 알아야 하지 않을까?”

문승협은 이정훈을 한번 쳐다본 후, 가족사를 알게 된 배경과 최근 좋아진 상황을 간략히 설명했다.

“그랬구나. 그래서 그런지, 정훈이 표정이 예전보다 더 밝아졌어, 다행이다.”

“네. 정훈이가 평소 말이 많아서, 그런 우울한 과거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요.”

“그래, 세상은 계획과 필연으로만 이뤄지지 않아, 적당한 무계획과 우연이 가미되어 더 나아지기도 해.”

문승협은 서수연선생말을 묵상하였다. 자신이 준비했던 이야기는 계획이고 이정훈의 누나를 만난 건 필연이며, 이정훈의 가족사진을 보게 된 것은 무계획이고 이정훈의 부모가 이야기를 엿들은 건 우연이라 생각했다.

서수연선생이 이정훈과 이진구를 염두하고 문승협에게 한마디 하였다.

청소년에게 전부인 가정과 학교는 생존의 방이기에, 외로움과 공포가 돼서는 절대 안 된다며 강조했다.

문승협은 자리로 돌아와 서수연선생말이 무슨 뜻인지 해석해 보았다.

가정과 학교가 외로움과 공포로 갇힌 방이라면 학생들이 탈출하려 할 것이고, 탈출해서 나온 세상마저 여전히 목을 조여 오는 방이라면 또 필사적으로 탈출을 감행할 것이며, 계속된 탈출은 세상과 더욱 멀어지는 탈선으로 이어지기에,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 방탈출게임 같아 끔찍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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