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양을 품은 별 Oct 15. 2024

단테의 별 - 1권 2부 26화

빛의 출현(出玄)-빛을 품다/존경도 사랑? - (18)

학생들을 자기 거울 보듯 살피던 서수연선생이 정작 본인 관리에는 실패해 며칠째 결근하였다.

토요일수업이 끝나고 못난이5형제가 모였다. 서수연선생에게 사랑받는 만두 3종세트를 포장하여 병문안을 갔다. 집안일을 돕는 아주머니가 한번 본 낯익음으로 반갑게 맞아줬다. 아픈 사람이 있어서인지 집안 공기가 무거웠다. 줄지어 서수연선생방으로 들어갔다.

서수연선생은 화장기 없는 창백한 기색이었다. 아직 더운 날씨에도 두꺼운 전통보료 위에 앉아 얇은 홑이불을 무릎께 덮고 있었다. 웃는 얼굴로 못난이5형제를 맞이했다.

못난이5형제가 방석을 끌어다 서수연선생을 반원으로 둘러싸고 앉았다. 군만두와 고기만두, 튀김만두를 차례대로 풀어놓았다. 이정훈이 고기만두를 하나 집어 서수연선생에게 주었다.

“고마워, 너희들도 어서 먹어.”

“까칠 공주님이 먼저 드쑈, 그래야 우리 아랫것들이 편하게 먹지라.”

“너 이리 와, 나한테 죽을래? 그렇게 부르지 마랬지.”

“어허, 성질낸 거 본께 꾀병 같은디?”

“그래 꾀병이다, 너희들 때문에 힘들어서 쉬려고 그랬다 왜?”

“우리가 죄인이네잉, 으째야스까.”

“호호, 반장, 학교에는 별일 없지?”

“담임 없어도 된다는 말 나올까 봐 걱정이에요, 너무 별일이 없어서.”

“그래? 잘 됐네, 이 참에 그만두고 푹 쉬어야겠다.”

“네? 무슨 말씀이세요 무책임하게시리. 두 눈 동그랗게 뜨고, 선생님 오시길 손꼽아 기다리는 제자들이 몇인데.”

“내가 있으나 없으나 상관없다니까 그렇지 뭐?”

“아휴, 농담이에요 농담. 별일은 없는데, 선생님이 없으니까 다들 힘이 없어요.”

“진작 이실직고할 것이지, 어디서 감히 선생님을 놀리려고, 호호호.”

“네네 공주님, 알아서 잘 모시겠습니다.”

“오냐 문상궁, 앞으로도 쭈욱 잘 부탁하네. 근데, 그 뒤에 있는 건 뭐야?”

“아, 이거요.”

“어머, 웬 꽃다발?”

“하하, 누가 버렸나 봐요, 오다 주웠어요.”

“으째서 버려진 꽃이 승협이 눈에만 보였으까잉.”

“아야, 아까 그 꽃집에 꽃이 무자게 버려져 있드라, 못 봤냐?”

“어머, 향기가 참 좋다. 문승협, 센스쟁이.”

“부끄럽게 왜 그러세요, 그냥 꽃일 뿐인데.”

“무슨 소리야, 꽃에도 다 꽃말이 있어. 여기 이 흰장미는 순결청순, 붉은장미는 정열적 사랑, 분홍장미는 사랑의 맹세. 오호, 이 꽃다발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거 같은데? 맞지?”

“뭐시어, 승협이 너 시방 뭔 짓을 한 거여?”

“참, 너희들 그거 알아? 지난주 월요일인가, 서울청량리 대왕코너터에 맘모스쇼핑센터가 문을 열었대.”

“연설하네, 말돌릴라고 애쓴다. 으짠지 꽃을 삼시로 한참 생각하드라.”

“아 아니야, 꽃가게아주머니한테 그냥 알아서 해달라고 한 거야.”

“뭔 소가 하품하는 소리대? 흰장미 몇 송이 뭔 장미 몇 송이 달라하고, 이렇게 요렇게 포장해 달라는 것이, 그냥 알아서 해달라는 거여?”

“하하, 그래. 내 돈 주고 내가 산 거라서 의미 좀 붙여봤다 왜, 됐냐?”

“그란께 금방 뽀록날 거짓갈을 뭐 한디 하냐.”

“으짠지, 같이 돈 보태서 사잔께는, 한사코 지 혼자 산다고 하드라.”

문승협은 꽃다발을 사면서 혼자만의 의미를 붙였다. 한가운데 분홍장미 한 송이는 자기 자신을, 붉은장미 다섯 송이는 못난이형제들을, 둘러싼 흰장미 다발은 서수연선생을 생각하였다. 설마 들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적당히 얼버무리려 하였지만 적나라하게 밝혀져 버렸다.

“흰장미는 내 나이만큼 스물여섯 송이로 순결청순한 나를 의미하고, 붉은장미 다섯 송이는 정열적으로 나를 사랑한다는 우리 못난이형제들인 거 같은데, 사랑을 맹세한다는 분홍장미 한 송이는 누굴까?”

“뻔하요, 승협이 지그만?”

“뭔 소리야, 그럼 붉은장미를 네 송이만 했겠지.”

“어허, 우리를 합바지로아나. 니가 들킬까 비 억지로 다섯 송이 했겄제, 안그냐?”

“우와, 허벌나게 머리 썼그만?”

“긍께 말이어, 승협이 너 선상님 짝사랑하냐?”

“이그, 참 해석 어렵게 한다. 제자가 선생님을 사랑하는 건 뭐야, 존경이잖아 이 바보들아. 순결한 우리 선생님을 못난이형제들이 영원히 존경하겠다, 지키겠다, 그런 뜻이야. 그리고 무슨 짝사랑이야, 선생님도 우릴 사랑하는데.”

“근디, 으째 얼굴 빨개갖고 흥분해서 그라냐?”

“내가?”

“호호호, 그러게, 저렇게 얼굴 빨개져서 횡설수설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데?”

문승협은 들킨 마음을 숨겨보려 변명했으나 당황해서 말과 행동이 달랐다. 붉은장미를 네 송이만 하면 들킬까 봐 다섯 송이 한 것도 무용지물이었다. 말할수록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어서 급히 말을 돌렸다.

“선생님, 얘들아, 저런 예쁜 꽃이 시들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또또 뜬금없는 소리 한다 또.”

“피고 져야 꽃이제, 맨날 펴있으믄 그것이 꽃이어?”

“그래도, 사시사철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좋아할 것 같긴 한디?”

“언젠가는 그런 꽃이 나올지도 몰라, 상상이 발명이고 창조야.”

때마침 아주머니가 오렌지주스를 가져왔다. 못난이형제들이 주스를 마시고 만두를 먹기 시작하였다.

서수연선생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문승협을 바라봤다. 문승협은 속마음을 들켰다 싶어 부끄러웠다.

“선생님, 어디가 아픈 거예요?”

“감기야.”

“무슨 감기가 이리 오래 가요, 혹시 다른데 아픈 건 아니에요?”

“아 아니야, 이제 다 나았어, 걱정하지 마.”

문승협은 왜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는 다 아플까라며 속으로 한탄했다.

이정훈이 만화를 빌려오겠다며 서수연선생에게 원하는 만화를 물었다.

“음, 무술만화나 첩보만화.”

“선상님은 순정만화가 벨로인갑소잉?”

“난 질질 짜는 거보다, 슝슝 날아다니는 게 좋아.”

“지금 아픈 것이 실연당해서 그런 건 아니지라우?”

“내 딸이 실연이라도 당해서 아프면 소원이 없겠다.”

“앗, 안녕하세요.”

서수연선생의 아버지가 방문을 열며 퇴근을 알렸다. 못난이5형제가 일어나 인사했다.

“앉거라, 앉아.”

“좀 늦으셨네요?”

“응, 상공회의소회장을 만나느라 좀 늦었다. 상공회의소회장이 선자리를 마련한다는데, 선 한번 보자?”

“싫어요, 선은 무슨, 아직 나이도 어린데.”

“나도 죽기 전에 사위도 보고 손주도 봐야지 않겠냐, 싫다고만 말고 시간 한번 내.”

“싫다니까요, 난 시집 안 가고 아빠랑 평생 같이 살 거예요.”

“이그, 철딱서니 하고는. 나중 하늘에 있는 엄마 만나면 혼날까 무서워, 아빠도 혼자 살고 싶고.”

“새장가가고 싶으면 가세요, 제가 축복해 드릴게요.”

“내가 혼자 산댔지 새장가간댔냐? 제자님들, 너희 스승님 시집 좀 보내자.”

“스승님 아버님께 무자게 죄송한 말씀인디요, 우리는 아직 스승님을 시집보낼 준비가 안 됐는디 으짜스까요?”

“뭐? 하하하, 그 스승에 그 제자구나.”

“호호호, 봤죠, 제가 제자들 때문에 시집을 못 갑니다요 아부지.”

서수연선생아버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방문을 나섰다. 이정훈과 송귀남이 만화를 빌리러 갔다.

서수연선생은 자기편을 들어준 못난이형제들에게 고마워하였다. 학기 초 사건 후 문승협 주도로 매일 에스코트해 준 일을 꺼내며, 적어도 못난이형제들 졸업할 때까지는 시집을 안 가겠다고 선언했다.

이정훈과 송귀남이 만화를 빌려 돌아오다 시장 통에서 서수연선생이 좋아하는 순대와 간을 사 왔다.

기분이 한 것 좋아진 서수연선생은 전축을 켜고 대학가요제레코드판을 올렸다. 흥겨운 음악에 맞춰 간을 맛있게 먹었다. 문승협눈에는 언제 아팠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회복되어 보였다.

적당히 배를 채운 못난이형제들이 배를 깔거나 벽에 기대어 앉아 만화책을 폈다. 대학가요제레코드가 끝나자, 서수연선생이 팝송이 담긴 레코드판으로 바꿨다. ‘Boney M의 Sunny’가 흘러나왔다.

문승협은 서수연선생이 앉은 전통보료를 베고 누워 만화책을 보았다. ‘Stevie Wonder의 Isn't She Lovely’를 듣다가 졸더니, ‘ABBA의 Dancing queen’에서 깜박 잠들었다.

서수연선생이 낮은 보료를 베고 잠든 문승협이 불편해 보여 무릎베개를 해줬다.

문승협이 ‘진추하&아비의 One summer night’에 잠에서 깼으나 꼼짝 할 수 없었다. 잠결에 돌아누워 눈을 떴더니 서수연선생의 허벅지맨살에 치마 안으로 속옷이 보였다. 순간 너무 놀라 바로 눈감았다. 심장이 너무 쿵쾅거려서 기절할 정도로 정신이 아득하였다. 아무 잘못이 없음에도 떨리는 자체를 자책했다. 침착하려 애쓰며 방법을 찾았다. 서수연선생에게 왜 치마를 입었냐고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잠꼬대하는척하며 반대편으로 돌아누웠다. 마침 ‘Eagles의 Hotel California’가 나왔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벌떡 일어나 앉았다.

“어, 이거 내가 좋아하는 노랜데? 선생님, 이거 이글스 노래죠.”

“응, 일어났니?”

“네, 깜박 잠들었나 봐요.”

“그래, 짧은 시간이지만 쿨쿨 잘도 자더라.”

“선생님, 선보세요.”

“뭐야, 자다가 웬 봉창 두드리는 소리 까요?”

“선을 봐야 남자 보는 눈이 생기죠.”

“너 우리 아빠 편에 서서 배신 때리지 마라.”

문승협은 위기상황을 돌파하고자, 선을 안 보겠다는 서수연선생심기를 건드렸다. 마음에도 없는 말로 횡설수설하였다. 다행히 문승협의 속사정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집에서 여자들과만 생활하는 문승협에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지만, 서수연선생을 상대로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한편으로는 그런 감정을 느낀 자체가 죄스러웠다.

“선생님, 언제 출근하실 거예요?”

“월요일에 출근할 거야.”

“월요일은 국군의 날인데요?”

“그럼 화요일에.”

“정말 다 완쾌된 거예요?”

“응, 너희들 병문안이 보약인가 봐, 싹 다 나았어.”

못난이형제들은 저녁 먹고 가라는 서수연선생협박을 가까스로 물리쳤다. 저녁시간 전에 집을 나섰다.

서수연선생은 걱정하는 못난이형제들 때문에 완치됐다고 하였으나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국군의 날과 개천절에 이은 추석휴무와 한글날까지, 10일간 이어지는 긴 연휴가 끝난 뒤 출근해도 되었지만, 제자들 걱정에 편치 않은 몸을 이끌고 화요일에 출근했다. 그러나 오후가 되면서 급격히 나빠졌다. 갑작스러운 일을 사유로 조퇴하였다. 제자들에게는 병원행을 숨겼다.

긴 연휴가 지난 뒤 다시 출근했을 때는 그나마 건강이 회복되어 다행이었다. (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