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출현(出玄)-빛을 품다/존경도 사랑? - (20)
문승협의 생일이 다가왔다. 서수연선생과 못난이형제들이 몰래 모여 어떻게 생일을 축하할지, 틀어진 마음은 또 어떻게 돌릴지 의논했다. 하필 문승협이 교무실 옆 과학실을 지나가다 작당모의를 들었다.
마음이 여린 문승협은 서수연선생과 못난이형제가 자신 때문에 고민하자 마음이 불편하였다. 며칠고민 끝에 말하기 곤란한 집안일이라고 둘러댔다. 그러나 여전히 문승협의 언행이 예전과 달랐다.
서수연선생과 못난이형제들이 께름칙한 마음으로 생일을 축하하였다. 문승협은 즐거우면서도 즐거워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빠른 시간 내에 자기감정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문승협생일 다음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는 일상이었다. 다들 당장 등교하고 출근하기 바빴다. 눈앞에 닥친 생업에 쫓기느라 정신없었다. 하지만 신군부세력들은 은밀하고 긴박하게 움직였다. 문승협뿐 아니라 일반국민들은 상상할 수 없는 국가권력찬탈음모가 거행되고 있었다. 대한민국서울 심장부에서 대한민국역사흐름을 바꾸는 대사건이 벌어졌다.
전두환과 노태우 등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세력이 정승화육군참모총장 등을 불법적으로 강제 연행했다. 하극상으로 군권을 장악한 군사반란사건 12.12사태가 발생하였다.
박정희대통령이 시해된 뒤, 최규하과도정부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에 임명했다.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은 계엄사령관에 취임해 지휘계통을 개편하였다. 윤성민참모차장, 장태완수경사령관, 정병주특전사사령관 등을 중용했다. 10·26 사태에 직접 연루된 중앙정보부와 대통령경호실도 축소 개편하였다. 수도권 주요 군지휘관을 교체하는 등 군내부개혁을 진행하자, 정치군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부각됐다.
군부 내 사조직‘하나회’가 4년제 육군사관학교 최초 기수인 11기 지도아래, 하나의 배타적인 파벌집단을 형성하면서 세력갈등이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10·26 사태 수사를 전담하는 계엄사합동수사본부장이자 보안사령관전두환소장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기존 육군지도부였던 정승화육군참모총장세력과 갈등하였다. 쟁점은 사건수사와 군인사문제였다.
하나회신군부가 이에 불만을 품고 군사쿠데타를 획책했다. 이들은 주도권장악을 위해 11월 중순 국방부군수차관보유학성, 1군단장황영시, 수도군단장차규헌, 9사단장노태우 등이 모의한 뒤, 12월 12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20사단장박준병, 1공수여단장박희도, 3공수여단장최세창, 5공수여단장장기오 등과 사전 접촉하였다.
12월 초순 보안사령관전두환이 보안사대공처장이학봉과 보안사인사처장허삼수, 육군본부범죄수사단장우경윤에게 정승화육군참모총장연행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시했다. 신군부는 이에 따라 육군참모총장정승화를 김재규내란방조혐의와 10·26 사태 수사비협조를 내세워 연행하기로 기획하였다.
결국 12월 12일 저녁 전두환합동수사본부장이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하라고 지시했다. 박정희대통령시해 당시 사건현장인 궁정동안가부근에 대기한 것과 사건 이후 김재규를 구속할 때 미온적 태도를 보이는 등 수사를 지연시켰다는 의혹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저녁 6시 50분경 무장한 제33헌병대병력이 한남동육군참모총장공관 주변에 배치되었다. 약 20분이 지난 7시 10분경 국군보안사령부인사처장 겸 계엄사령부소속합동수사본부조정통제국장허삼수대령이 합동수사본부수사2국장우경윤 등 보안사수사관과 수도경비사령부제33헌병대병력 65명을 앞세워 육군참모총장공관에 난입하였다. 경비병들에게 총격을 가해 제압한 뒤,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을 총으로 위협하여 체포했다. 저녁 7시 30분 즈음 강제로 끌고 나와 국군보안사령부서빙고분실로 연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참모총장부관이 전화로 외부와 연락을 시도하는 등 반발하였다. 합동수사본부 측 보안사수사관들이 권총을 발사해 총격전이 벌어졌다. 정선엽병장과 박윤관상병 등이 희생되었다.
윤성민육군참모차장지휘하의 육군수뇌부가 정황을 파악하고 전군에 비상을 발동했다. 합동수사본부 측에 정승화육군참모총장 원상회복을 명령하였으나, 거절은 불 보듯 뻔했다.
12월 13일 0시부터 새벽 6시 20분 사이, 신군부세력이 1공수여단과 5공수여단 병력을 동원하여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점령하였다. 9사단을 주축으로 한 병력들이 중앙청으로 진입해 경복궁 등 핵심거점을 차례로 점령하고, 방송국과 신문사를 통제하에 두었다. 12·12 군사반란을 감행하여 불법적으로 군권을 장악한 신군부세력이, 진압군병력출동을 추진한 정병주특전사사령관과 장태완수도경비사령관을 체포했다. 또한 윤성민참모차장과 이건영3군사령관, 하소곤육군본부작전참모부장, 문홍구합동참모본부장 등 육군수뇌부장성들을 무장해제하여 모두 서빙고분실로 불법연행하였다.
정병주특전사사령관을 체포하는 과정에서도 억울한 희생이 있었다. 이날 새벽 최세창3공수특전여단장이 특전사사령관실을 방문해 마지막으로 회유하려 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곧바로 박종규중령의 부대병력을 동원해 정병주특전사사령관을 체포하려고 하였다. 이미 국방부와 육군본부가 1공수에게 점령당하는 등 진압군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특전사에 있는 대부분 군인들이 신군부회유에 넘어간 상태였으나, 김오랑소령은 반란군의 회유를 거절한 후 권총을 장전하고 사령관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약 10분 뒤 평소 친분이 깊은 박종규중령의 특전사부대가 사령관실을 공격했다. 김오랑소령은 교전 중 반란군이 쏜 여러 발의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전사하였다.
이 같은 반란군의 정승화육군참모총장연행과 병력이동은 대통령의 재가 없이 이루어졌다. 신군부세력이 사후 승인을 받으려고 최규하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해 총장연행재가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하였다.
마침내 전두환합동수사본부장이 최규하대통령에게 김재규와 연루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으니, 정승화를 연행하여 조사토록 승인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최규하대통령은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13일 새벽 재가했다.
12월 13일 오전 9시, 9사단장노태우와 50사단장정호용이 각각 수경사령관과 특전사령관에 취임함으로써 대한민국군부가 반란주도세력에 의해 완전히 장악되었다.
다음날 아침, 노재현국방부장관이 정승화참모총장연행에 대해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에 관여했던 것이 판명됐기 때문’이라고 짤막한 배경설명을 발표하였다. 그 역시 신군부에 의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일주일 뒤, 박정희대통령시해사건에 관여한 김재규 등 7명이 육군계엄보통군사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다음 날 장충체육관에서는 통일추체국민회의에서 선출된 최규하가 대한민국 제10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1970년 시작한 새마을운동의 평가를 두고 옥신각신하였다. 새마을운동 1단계가 관주도형으로 3대 운동과 5대 시책을 근간으로 전개되어 근대화추진에 공헌했다는 점은 긍정적 요인으로 꼽혔다. 3대 운동은 '증산, 근검, 인보', 5대 시책은 ‘농촌주택개량확대, 농가소득증대가속화, 도시·공장 새마을운동본격화, 새마을운동정신생활화’였다. 반면 유신정권이데올로기를 학습시켜 국민을 유신정권이 상상한 이상적인 국민으로 결집시키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였다는 점은 부정적 요인으로 비판받았다. 유신정권의 말로와 더불어 가치와 유효성을 상실하여 마지막 해를 맞이했다. 새마을운동 제2단계는 어떤 성격으로 변화될지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국민들은 염원이었던 유신독재체제철폐가 국가원수시해라는 초유사건으로 이루어져 맘껏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었다. 다사다난했던 기미년 1979년 마지막 1초까지 하극상이 장악하였다.
군사반란으로 군부를 장악한 신군부와 등장한 1980년 경신년은 비상계엄상태의 안개정국이었다. 대한민국이 어떤 소용돌이에 휩싸일지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웠다.
최규하대통령이 신년사에서 국민 신뢰와 화합을 당부했다. 김영삼신민당총재는 개헌시한을 앞당겨 1980년 하반기까지 정권을 이양하라고 촉구하였다. 김종필민주공화당총재는 헌법개정을 서둘러 1981년 초에는 정권교체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대미환율을 19%, 은행대출금리를 25%, 정기예금금리를 24%로 인상했다.
서울시장은 시청, 교육위, 시경을 1983년까지 강남지역으로 이전할 계획이라며, 부동산광풍에 이은 본격적인 강남시대를 예고하였다. 서울지하철 2호선 왕십리에서 문래구간이 착공되었다.
대한민국 해군과 해병대 창군자이자 독립운동가 손원일예비역해군중장이 작고해 서울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경우회가 경찰정치중립제도화를 요구했다. 정작 정치중립이 필요한 검찰은 반대의견을 견지하였다. 대한변협도 경찰수사권독립에 반대했다.
정부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침공에 항의하여 모스크바하계올림픽 불참을 선언하였다. 한국역사상 처음 올림픽선수단 불참으로, 다른 나라들도 대거 불참을 선언하여 반쪽짜리 올림픽대회라고 비난받았다. 프로권투선수김태식이 WBA플라이급타이틀전에서 파나마 루이스이바라를 2회 KO로 꺾어 챔피언벨트를 차지했다.
문교부는 중고교교복자율화를 학교장재량에 맡겼다. 교육목적 외 학생동원을 금지하라는 지시를 전국에 하달하였다. 전체 중학생 중 80~90%가 정상학력미달이라고 밝혀 학생들을 공부의 수렁으로 밀어 넣었다.
중학교3학년이 된 문승협은 혹시나 부활할지 모를 고등학교입시를 고려해 열심히 배워왔던 검도를 그만두었다. 또래에 비해 크진 않았으나 중간 정도 키로 부쩍 자랐다. 두 번째 늘인 교복바짓단이 짧아져 복숭아뼈가 보였다. 중학교에서 최선임이 된 동급생들이 모자와 교복을 변형하여 개성 찾기에 나섰다. 교복을 입으면 똑같은 모습이 되는 획일화에 반항이었다. 반면 문승협은 멋 내기에 별관심이 없었다.
서수연선생이 건강문제로 담임을 맡지 않았다. 문승협은 전수찬미술선생의 반이 되었다. 담임선생체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미술대회에 참가했다가 금상을 받아 횡재하였다. 신군부의 시국수습일환에 따른 문교부주최 전국미술대회였다. 모든 부문에 의무적으로 참가하라고 강제하였다. 학교미술부에 판화전공자와 지원자가 없었다. 반장입장에서 미술과목을 맡은 담임이 꼬드겼다가 협박했다가 회유하는데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일주일간 속성으로 판화를 전수받았는데 상까지 받았으니, 문승협의 잠재적 미술재능을 발견한 사건이었다.
이후 전수찬선생이 틈만 나면 미술부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미술공부를 해보라고 하였다. 문승협은 거절을 잘못하는 성격인 데다 마땅한 핑곗거리가 없어 난감했다. 미술선생이전에 담임선생의 제안이라 거부하기도 어려웠다. 결국 취미 삼아 해보라는 마지막 권유로 미술실을 드나들었다.
3월 마지막 날을 향해가는 점심시간, 서수연선생이 앞서 가는 문승협을 불러 세웠다.
“승협아, 어디가?”
“미술실에 가요.”
“그건 뭐야?”
“반아이들이 미술시간에 그린 그림인데, 미술실에다 갖다 놓으래요.”
“그럼 그거 갖다 놓고 매점으로와.”
문승협은 재빨리 미술실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1층에 있는 인혜여중고매점으로 갔다. 여학생들이 매점에 들어서는 문승협을 보면서 키득거렸다. 서수연선생을 중심으로 모여 웅성대던 여학생들이 삼삼오오 썰물처럼 흩어졌다. 여고3학년이 문승협어깨를 툭치며 던진 한마디에 여학생들이 떠들썩하게 웃었다.
“지금은 많이 컸겄다잉?”
“우하하하. 호호호.”
“네? 뭐가요?”
“잉, 니 거시기. 키 말이여 키, 호호호.”
“와하하하, 호호호.”
문승협은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였다. 평소 남학생과 접촉이 없는 여학생들이 호기심에 웃는 거라고 생각하며 그냥 무시했다. 서수연선생 옆에 앉은 강지영선생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문득 무슨 일이 있었다는 예감이 들었다. 테이블로 다가가니, 양명기선생이 뭔가를 호주머니에 넣었다. 의자를 빼주며 앉으라는 친절이 수상하였다. 서수연선생이 태연히 문승협을 쳐다보았다.
“선생님, 무슨 일이에요?”
“내일 중대발표가 있으니까, 우리 못난이형제들 내일 점심시간에 여기서 만나자.”
“무슨 일인데요?”
“그건 내일 만나서 알려줄게. 승협아, 여기 빵 먹어.”
문승협은 빵을 먹으며 주위시선을 살폈다. 매점에 들어오다 느낀 이상한 분위기는 뭐며, 내일 중대발표는 또 뭔지, 꼭 뭔가에 홀린 기분이었다.
하굣길에 버스 타고 가면서도 생각해 봤지만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았다.
문승협이 등교준비로 바삐 움직였다. 교복을 입은 뒤 책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막냇동생 문윤아가 방으로 들어왔다. 평상 시면 잠들어있을 이른 시간인데, 똘망똘망 한 눈빛으로 다가와 진지하게 불렀다.
“오빠.”
“응, 우리 막내가 웬일로 일찍 일어났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오빠가 이 세상에서 제일 잘생겼어.”
“하하, 용돈 필요해?”
“아니. 진짜로 이 세상에서 오빠가 제일 잘생겼다니까? 진심이야.”
“고맙워요 윤아씨, 윤아도 세상에서 제일 예뻐요.”
“만우절. 호호호, 속았지 롱. 오늘이 만우절이지 롱.”
문승협은 유난히 아침잠이 많은 문윤아가 만우절 장난치려고 일찍 일어난 게 기특했다.
학교에서도 등교하자마자 만우절을 빌미로 여기저기 난리법석이었다.
약속된 점심시간에 못난이형제들과 인혜여중고매점으로 갔다. 서수연선생과 홍지아가 평상시와는 사뭇 다른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지아도 왔네?”
“응, 잘 있었지?”
“제수씨, 오랜만이네요잉, 가내 두루 평안하지라?”
“아니요, 심신이 고달프네요.”
“음마, 으째서라우? 뭔지 말해보쑈, 우리가 해결해 줄 텐께.”
“우리 서방님 나체를 봤다는 소문이, 인혜여중고에 쫙 퍼졌어요.”
“무 무슨 말이야, 내 나체라니?”
“어제 이 자리에서 만천하에 공개됐다던데?”
“여기서?”
“정작 각시인 나는 서방님 나체를 못 봤는디, 딴 가시나들이 다 봤으니, 이 억울함을 으째야스까잉.”
“하하하, 아야 승협아, 남자라고 몸뚱아리를 막 놀리믄 쓰냐.”
“지아야, 무슨 소리야?”
“오메오메, 우리 서방님은 본인 나체사진도 모른 갑네잉.”
“너 1학년때 무주구천동 캠핑서 찍은 사진 기억나?”
서수연선생이 문승협 눈치를 살피면서 물었다. 문승협은 머릿속에 번뜩 스치는 한 사건이 떠올랐다.
재작년 무주구천동으로 캠핑 갔을 때, 남강과 2, 3학년 선배들이 짜고 구천동 계곡물에 헤엄치는 문승협의 팬티를 벗겼던 장면이었다.
서수연선생이 싱긋 웃으며 내막을 알려줬다.
양명기선생이 보이스카우트대장 문영보선생사진을 구경하다, 팬티가 벗겨진 채 찍힌 문승협사진이 재미있어 챙겼다. 하필 그 사진이 서수연선생에게 전해주려 갖고 온 다른 사진들 속에 있었다.
남자로서 굴욕스런 장난이어도 추억이라 생각하자던 당시 여유가 문승협에게 치욕이 되어 돌아왔다.
“설마설마했는데. 공교롭게 공개되었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스 승협아, 미안해. 양명기선생님도 그 사진이 거기에 끼어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대.”
“그럼 선생님도 봤어요?”
“응, 그런데 자세히는 못 봤어, 얼핏 봤어.”
문승협은 어제 매점에 들어선 상황을 영사기처럼 돌려보았다. 여학생들과 강지영선생이 웃는 모습이 떠올라 수치스러우면서도, 서수연선생이 자세히 못 봤다는 말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
“선상님, 자세히 못 봐서 서운한 표정 같은디요?”
“이그, 정훈아, 분위기 좀 봐가면서 까불자.”
“히히히.”
“우리 서방님 넋 나가셨네, 서방님? 문승협?”
“응, 응?”
“정신 챙기셔요 서방님.”
“그건 그렇고, 중대발표는 뭐예요?”
“아, 다름이 아니라, 나 휴직할 거야.”
“어허, 타짜끼리 으째 그러실까잉. 선상님, 오늘이 만우절인지 다 알아라우.”
“만우절? 호호, 오늘이 만우절이구나. 근데 진짜야.”
“에이, 누굴 속일라고 이러시까잉.”
“내일부터 안 나오고, 오늘이 마지막 출근이야.”
“참말로요?”
“응, 참말이다.”
“휴직인데 무슨 마지막 출근이에요? 복직하면 다시 학교에 나올 수 있잖아요.”
“응, 맞아. 그러니까, 나 학교에 다시 나올 때까지 잘하고 있어, 알았지?”
“…….”
“지아도. 그리고 아까 말한 거 잘 부탁해.”
서수연선생은 반복되는 건강문제로 휴직을 결정하였다. 언제 복직할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사랑하는 제자들과 이별이 속상했다.
“그람 오늘 야자 끝나고 송별회라도 해야 겄는디?”
“무슨 송별회야, 금방 복직할 텐데.”
문승협은 빨리 복직하라는 말로 반대하였으나, 송별회를 하자는 못난이형제들 다수 의견을 말릴 수 없었다. 서수연선생은 소지품을 챙겨 집에 가져다 놓고, 수업 끝나는 시간에 맞춰 오기로 했다.
서수연선생이 교무실로 올라가 물품을 챙겼다. 문승협이 수학여행선물로 준 목각인형을 들어보았다.
왕비목각인형 뒤 도포자락 끝에 ‘서수연’이라고 쓰인 글씨를 발견하였다. 귀여운 문승협모습이 생각났다.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눈물이 맺혔다.
송별회라지만 중학교3학년에게 특별히 할만한 일은 없었다. 서수연선생과 추억이 깃든 분식집에서 서수연선생이 좋아하는 만두 3종 세트에 순대와 간을 즐기는 게 최선이었다. 시간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홍지아가 꽃다발을 준비하여 빠른 복직을 희망했다. 못난이5형제는 편지지 한 장에 짤막이 롤링페이퍼를 썼다. 서수연선생이 읽고 눈물을 흘렸다. 문승협이 서수연선생에게 영원히 이별할 사람처럼 유난 떤다며 불손하게 면박을 주었다. 그러면서도 긴 한숨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말 많은 이정훈도 울고, 결국 다 울었다.
서수연선생이 포옹으로 이별을 마무리하고 떠났다. 송별을 마친 못난이형제들이 문승협과 홍지아를 남겨두고 먼저 갔다. 홍지아는 문승협과 버스를 탔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슬픈 표정을 짓는 문승협눈치만 살폈다.
“누가 보면 나라 잃은 사람인 줄 알겠다.”
“어? 아 미안, 집에 금방 왔네.”
“조심히 가, 어깨 좀 펴고. 서수연선생이 애인이라도 되냐, 실연당한 사람처럼 그러지 좀 마. 네 마음은 이해하지만, 지켜보는 나도 좀 생각해라.”
“지아야, 낮에 매점에서, 선생님이 너한테 잘 부탁한다는 게 뭐야?”
“별거 아냐, 그냥, 널 좀 잘 지켜보라고.”
“…….”
“나 들어간다, 잘 가.”
“응, 잘 자.”
홍지아는 집에 들어가 책상 앞에 앉았다. 슬픔에 젖어 집에 가는 문승협을 안 봐도 훤하였다. 자기 마음을 몰라주는 문승협이 미웠다. 책상 위에 다정히 마주 보고 있는 한 쌍의 아기천사인형을 바라봤다. 여자아기천사인형을 등 돌려놓았다. 복잡한 생각을 떨치려 양치와 세안을 하고 침대에 누웠다. 불을 껐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낮에 서수연선생이 했던 말을 되짚어보았다.
서수연선생이 2년여 지켜본 문승협을 홍지아에게 설명하였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여러 가지를 당부했다. 문승협의 미소 뒤에 뭔지 모를 슬픔이 있고, 늘 자신을 바로잡으려 스스로를 괴롭힌다는 말은 잘 이해되지 않았다. 마음이 여린 문승협을 잘 부탁한다는 말에 책임감이 생겼다. 침대 조명등을 켜고 책상 앞에 앉았다. 남자아기천사인형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너는 쟤한테 관심도 없는디, 으째 너를 쟤한테 부탁하는지 모르겄다.”
이번에는 등 돌린 여자아기천사인형을 바라보며 한마디 하였다.
“쟤가 너한테 관심 없어도, 니가 쟤를 좋아하믄 잘해줘 부러. 좋은디 으짜겄냐, 그것이 니 운명인디.”
여자아기천사인형을 들어 남자아기천사인형에게 뽀뽀시키고, 남자아기천사인형을 바라보게 놓았다. 남자아기천사인형은 정면을 보게 돌려놓으며 현실을 투영했다.
서수연선생이 이별로 문승협을 힘들게 하는 것처럼, 정부는 연탄값을 35.2%, 석탄값을 41.9% 인상하여 서민경제에 큰 고통을 주었다. 한국은행이 16년 만에 처음으로 GNP가 1.7% 마이너스성장한다고 발표해 국민들에게 시련을 주었다.
국산구축함 1호 '울산함'진수식이 현대중공업울산조선소에서 개최되고, 울릉도 저동항이 준공되었다.
이란과 단교한 미국정부가 주이란미대사관에 억류된 자국인 인질구출에 특수부대를 투입하였으나 실패했다. 서스펜스 스릴러영화로 ‘사이코’라는 말을 사회화시킨 거장 앨프리드히치콕 미국감독이 사망하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