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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양을 품은 별 5시간전

단테의 별 – 1권 2부 30화/1권 끝

빛의 출현(出玄)-빛을 품다/존경도 사랑? - (22)

전두환의 대통령취임과 동시에 정권교체가 숨 가쁘게 전개되고,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정화운동으로 사회각계각층에서 비명이 이어졌다. 암울한 시대를 맞이한 가운데 사회문화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치안본부가 미국에서 음주운전측정기를 도입해 전국경찰관서에 처음 배포하였다. 김포공항 신청사가 착공 2년 10개월 만에 완공됐다. 전매청이 지난달 ‘태양, 거북선’등 고급담배값을 평균 40%나 인상한데이어 ‘솔’ 담배를 시판했다.

축구선수차범근이 서독분데스리가 베스트 11에 선정되었고, 축구협회장은 국내최초프로축구팀 ‘할렐루야’ 창단을 밝혔다. 요트선수 노영문과 이재웅이 탄 ‘파랑새호’가 경남울산에서 미국 LA 간 태평양을 건넜으며, 수영선수조오련이 헤엄쳐 대한해협횡단에 성공했다.

부산시가 일본 TV 불법송출을 방지하려 불법유선방송사업자단속지시와 ‘일본 TV 안 보기 운동’을 전개하였다. 제29회 미스유니버스선발대회본선이 서울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되고, 삼성전자 등 가전 3사가 미국 NTSC방식으로 컬러 TV를 시판했다.

위컴한미연합사령관이 LA타임스인터뷰에서 ‘한국인은 레밍(들쥐)’이라고 발언해 파문이 일었다. 두 달 여전 미국TBS가 세계최초케이블 TV 뉴스채널‘CNN’을 개국하였다.

동아일보시사만화 ‘고바우영감’이 김성환작가해직으로 연재가 중단되고, 5개 TV와 라디오의 방송사심의실장회의는 심수봉, 이주일 등 연예인 24명을 출연금지했다.

대입본고사제폐지와 졸업정원제실시, 과외금지 등을 골자로 한 ‘교육정상화 및 과열과외해소방안’이 마련되었다. 대학생가정교사금지와 대학휴교령을 9월 1일부로 해제시켰다. 소요사태로 법정수업일수 180일을 충당 못할 시, 각 대학에 유급시키겠다는 경고와 함께 전국대학들이 109일 만에 정상수업을 개시하였다.


세상은 우연이든 필연이든 흐르는 시간과 함께 진화를 멈추지 않았다. 문승협가정도 예외일 수 없었다.

할머니 박옥춘과 엄마 이항리의 고부갈등내전으로 가뜩이나 안 좋은 상황에서 생활비사건이 터졌다.

이항리는 문승협과 문현아를 시어머니에게 맡겼을 때, 생활비를 보태지 못해 늘 빚진 마음이었다. 남편 문경준사업이 여의치 않아서였으나, 월급을 받게 되면서부터는 많진 않아도 자식들 생활비를 보냈었다.

작년 초 이항리와 문윤아까지 시댁에 함께 살면서부터는 전액부담해 왔다. 반면 시누이 문희경과 시어머니는 생활비를 일절 보태지 않았다.

이항리는 천정부지 치솟은 물가에 생활비가 빠듯했다. 무더위에 방방마다 켠 선풍기와 잦은 샤워로 전기세수도세가 많이 나와 고민이었다. 있는 살림으로 잘 꾸리려 했지만 뜻밖의 곗돈사기를 당하였다. 빌려준 돈마저 떼이게 돼 엎친데 덮쳤다. 높은 이자를 받기로 하고 알뜰히 모은 5백만 원을 지인에게 빌려줬으나 좀처럼 연락이 닿지 않았다. 몇 번 받은 이자가 꿀처럼 달콤하고 생활비에 큰 보탬이었지만, 이자는커녕 원금마저 못 받게 생겨 괴로웠다. 이전에도 생활비문제로 타박을 들은 터라 시어머니에게는 감히 말도 못 꺼냈다. 그렇다고 마냥 버틸 수 없어서 시누이에게 생활비가 부족해 힘들다며 하소연했다.

문희경이 자기도 엄마에게 월급을 전부 주고 용돈을 타 쓰는 형편이라고 하였다.

시누이에게 한 푸념이 계산이 정확하기로 소문난 시어머니귀에 들어갔다. 집세도 안 받는데 무슨  생활비를 들먹이냐는 날 선 힐난이 돌아왔다. 그나마 아들월급까지 자기 돈이라고 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문희경은 올케 이항리말에 기분 나빴던 건 사실이었으나, 오빠 문경준월급으로 여섯 식구가 생활하기에 빠듯하다고 생각했다. 올케를 돕겠다는 선의로 엄마에게 말을 전했는데, 박옥춘생각은 많이 달랐다.

이항리는 떼일 위기의 5백만 원과 사기당한 곗돈에 전전긍긍하였다. 죄 없는 문승협을 붙들고 그 돈을 합하면 웬만한 집 한 채 값이라며 넋두리했다. 누구에게도 절대 발설하지 마라고 신신당부하였다. 하지만 생활비부족과 금전적 압박을 더 이상 견디지 못했다. 결국 시어머니에게 손을 벌렸다.

박옥춘이 쉽게 들어줄 리 만무했다. 이항리는 어쩔 수 없이 곗돈사기와 돈 떼일상황을 설명하고 재차 도움을 청하였다. 돈에 야박한 박옥춘이 이번 한 번 만이라며 10만 원을 주었다.

이후 이항리는 사기당한 곗돈은 어찌 됐는지, 돈을 빌려간 사람과는 연락됐는지, 하루가 멀다고 시어머니질문에 시달렸다. 시아버지와 남편에게는 비밀로 해달라며 간곡히 부탁했지만, 박옥춘귀에 들어간 이상 일파만파 퍼진다는 것을 간과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가를 치렀다. 문재환이 집에 들르면서, 동네가 떠나갈 듯 언성이 높아지는 고부간 큰 다툼이 되었다. 문승협에게 발설마라고 신신당부했던 비밀을 스스로 깨버린 업보였다.

박옥춘이 남편 문재환에게 생활비를 많이 받아낼 요량으로 며느리에게 생활비조로 30만 원을 줬다고 하였다. 문재환이 각박한 사람이 웬일이냐며 핀잔만 줄 뿐 돈줄생각을 안 했다. 박옥춘이 뿔따구 나서 이항리비밀을 폭로하며 역정 냈다. 문재환이 며느리를 불러 남편도 친구한테 사기당해서 곤욕을 치렀는데, 너까지 정신 못 차리면 어쩌자는 거냐며 노발대발야단쳤다. 이항리는 시아버지에게 불호령을 들은 데다 비밀을 지켜주지 않은 시어머니에게 서운하였다. 더욱이 생활비로 10만 원을 줘놓고 30만 원으로 부풀려 화가 나 시어머니에게 따졌다. 박옥춘이 무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이년 저년 하며 목청 높였다. 이항리도 욕만 안 했을 뿐, 지지 않으려고 바득바득 대들었다. 문재환이 지켜보다 분노하여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문재환은 의부증에 가까운 아내 박옥춘의 히스테리 때문에 고민했었다. 고부간문제도 심각해 이대로 둬선 안 되겠다고 생각하였다. 이럴 바엔 자신이 주로 머무는 순화광산으로 아내를 데려가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급작스런 남편의 결정에도 박옥춘은 순화광산으로 가는 것을 의외로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항리와 모두에게 잘된 일이었다.

여름방학마지막 날, 박옥춘의 짐을 실은 트럭이 순화광산을 향해 출발하였다. 문승협은 다가오는 추석에 순화광산에서 만나자는 약속으로 할머니와 작별했다. 남겨놓은 할머니눈치는 불편하였으나, 차를 타고 떠난 할머니표정은 좋아 보였다.


문승협은 여름방학이면 자의 반 타의 반 어디를 다녀왔지만, 어수선한 시국에 다들 몸 사리듯 방학 내내 도서관만 오갔었다. 개학을 맞아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난다는 즐거움으로 등교했다. 예상외로 친구들 대부분이 침통한 표정이었다. 웃음과 농담을 잃은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5.18 광주민주화항쟁 후유증이 유일한 공통점이었다. 직간접시련을 겪은 아이들이 한 반에 적게는 서너 명, 많게는 십여 명에 이르렀다. 방학을 보내면서 친인척 피해와 소식을  알게 된 친구들, 아직까지 생사불명인 친인척을 걱정하는 친구들, 대학에 다니는 형과 누나들이 피해를 입어 난관에 처한 친구들, 사연도 각양각색이었다.

피해자가족들은 지역사회와 학교에서 5.18 이야기를 금기시해 분통하였다. 아무리 정부의 하달과 단속으로 처벌받는다지만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행여 슬픔에 겨워 술에라도 취해 말할라치면,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빨갱이로 모는 고약한 사람이 종종 있었다. 아픈 가슴을 품고 끙끙대면서 피해자가족들끼리 모여 서로를 위로해야 했다. 그래도 그들의 괴로움과 슬픔을 달래주고 따뜻이 대해주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학생들이 뒤숭숭한 분위기로 수업에 집중 못하자, 중고교뿐 아니라 대학까지 입시제도가 변경된다는 말이 나왔다. 학교는 이를 계기로 면학분위기를 조성해 학생들을 공부에 열중하도록 다잡기에 나섰다.

중학교3학년 문승협에게는 당장 고교입시제도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선생들이 다시 고입연합고사로 환원될 수도 있다고 했으며, 이는 곧 고교입시지옥을 뜻하였다. 고교평준화정책에 따라 고교선발고사로 바뀌어 시행된 지 불과 1년도 채 안된 상황이어서, 중학교3학년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문승협과 친한 1년 선배 남강과 박현이 작년에 고교선발고사를 치르고, 추첨배정방식으로 올해 초 문일고등학교에 입학했었다.  


고교평준화정책은 1974년 서울과 부산에서 시작하였고, 이듬해에 대구, 인천, 광주가 시행했다. 1979년부터 중소도시까지 확대되었다.

앞서 실시한 중학교무시험진학제도는 치열한 중학교입시경쟁을 해결하고, 국민학교에서 입시위주교육이 사라지는 긍정효과가 있었다.

반면 중학교교육은 일류고등학교진학을 위한 입시위주교육으로 파생되었다. 고교입시과열로 중학교교육과정이 비정상적 운영되어 학생들의 전인적 발달을 저해하였다. 학부모들은 고교입시준비를 위해 학교 밖에서 행해지는 과외수업 등 과도한 사교육비를 부담하게 되었다. 학교교육에 대한 불신풍조까지 만연했다. 더욱이 고등학교가 학생∙교원∙시설 등에서 심한 격차를 드러냈고, 일류고와 삼류고로 분류되어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 위화감까지 조성되었다. 이같이 고교입시문제가 심각해지자, 문교부가 해결방안으로 내놓은 것이 고교입시제도개선과 평준화정책이었다. ‘중학교교육정상화촉진, 고등학교평준화로 학교 간 격차해소, 과학 및 실업 교육진흥, 지역 간 교육균형발전도모, 국민교육비부담경감, 학생인구대도시집중억제’등을 목표로 삼았다.

이로써 중학교학생들을 과중한 입시부담에서 해방시켜 전인교육을 도모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다. 고입재수생문제와 중학생들 과열과외를 해소시켰다. 교육격차가 완화되어 지역 간 균형발전과 대도시인구집중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학습집단이질화로 수업효율성이 떨어져 전반적인 학력을 저하시킨다는 ‘하향평준화’ 문제가 제기되었다. 사학의 자율성위축과 경영난을 가중시키며,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원성을 샀다.


문승협과 친구들은 고입연합고사가 1년 만에 다시 부활될 리 만무하다면서도, 눈앞에 보이는 세상이 제정신이 아닌지라 진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학교가 끌어가는 면학분위기를 회피할 수도 없어서 수동적이나마 공부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신일고야구부가 제1회 서울시장기쟁탈 고교야구대회결승에서 선린상고를 3대 2로 꺾고 우승했다. 세상은 그렇게 5.18 상흔에 아랑곳없이 일상을 빠르게 회복해 갔다.

양명기선생과 강지영선생이 문승협의 득달에 못 이겨 서수연선생소식을 알아봤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감감무소식인 서수연선생은 시간 사이로 차츰 묻혀갔다.

문승협은 하복을 입고 졸업앨범에 실을 분단별사진을 찍었다. 다음날 작은 고모까지 가족과 함께 추석을 쇠러 조부모가 있는 순화광산으로 출발하였다. 목포역에서 기차를 탄 문승협가족은 광주송정리역에서 다시 경전선완행열차로 갈아탔다. 문승협이 열차차창 밖으로 바라본 광주는 평온해 보였다. 불과 4개월 전 5.18 민주항쟁 당시 처참함과 광주 어딘가에 있을 서수연선생생각에 가슴이 아렸다.

문현아와 문윤아가 순화광산사택에 도착하기까지 이래라저래라 하는 문승협을 귀찮아했다. 문승협은 신경 끄라는 말에 서운하면서도, 스스로 알아서 할 정도로 커버린 동생들이 대견하였다. 어릴 적 동생들로 여기고 챙기려 했으나 어느새 국민학교 6학년과 2학년이었다. 참 무심한 오빠라는 생각이 생각이 들었다. 처음 가는 순화광산사택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며, 기차칸에서 나는 눅눅하고 케케묵은 냄새를 겨우 참았다.

문재환부부가 기거하는 순화광산사택은 방이 여러 개 달린 단층양옥이었다. 마당에 화단과 채소 기르기 쏠쏠한 텃밭이 아기자기하였다. 작은 별채와 차고도 있었다. 큰 나무들이 집주위를 둘러싸고 있어 아늑했다. 여름엔 매미우는 소리에 귀가 먹먹하고, 늦가을엔 낙엽이 무수히 떨어져 치우기 힘든 흠이 있었다. 대문 앞 길건너편 개울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정겨웠다.

이항리가 저녁상 치우는 중에, 남편 문경준이 도착해 밥상을 다시 차렸다. 막내딸 문윤아가 반가운 마음에 식사하는 문경준무릎에 앉았다. 이항리가 아빠식사하는데 불편하니 내려오라고 하였다. 문윤아가 입을 삐죽이며 일어났다. 문경준이 식사하면서 아버지 문재환과 도안광산운영에 대해 잠시 이야기했다. 바로 옆에 아들과 두 딸이 앉아있음에도 한번 힐끗 쳐다볼 뿐이었다. 별말 없는 아빠에게 서운한 막내딸이 안 보고 싶었는지 묻자 그제야 관심을 보였다.

“윤아가 보고 싶었으니까, 아빠가 이렇게 왔지.”

“얼마큼?”

“윤아가 아빠 보고 싶은 거에 만 배만큼.”

“진짜?”

“그럼. 아빠가 거짓말한 적 있어?”

“응.”

“하하하. 현아는 잘 있었어?”

“네.”

“승협이는 키가 몇이냐?”

“지금은 165 정도예요.”

문경준은 자식 셋 중에 그나마 막내딸 문윤아와 친근하였다. 아들 문승협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문승협은 기차 타고 오면서 아버지와 만날 생각에 설렜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질문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대신 질문받을 것을 상상해 많은 답변을 준비하였으나 쓸모없게 되어 서운했다. 부자지간에 서먹한 문제는 계속 숙제로 남았다.

추석을 하루 앞둔 다음날, 아침나절부터 동네아주머니와 순화광산직원부인들이 음식을 바리바리 싸왔다. 덕분에 평소 추석과 달리 몇 가지 음식만 장만하면 되었다. 자연히 문승협의 심부름거리도 없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 작은아버지가족들이 차례차례 도착하였다. 다들 자가용을 운전하고 왔다.

문승협은 사촌동생들과 집 앞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았다. 함께 놀면서도 지적장애가 있는 서울사촌동생 문승현과 간질로 가끔 발작을 일으키는 부산사촌동생 문승대를 돌봤다. 문승현을 동생으로 둔 문승희와 문승대를 형으로 둔 문승지가 자신보다 한참 어린 나이여서 사촌동생들을 늘 신경 써왔다. 아니나 다를까 문승현이 개울에 넘어졌다. 문승협이 온몸이 젖은 문승현을 업고 집으로 갔다.

서울사촌동생 문승현은 서울작은아버지 문경빈의 둘째 아들로, 갓난아이적엔 지적장애가 있는 줄 몰랐다. 걸음마를 시작할 즈음 잘 걷지 못해 병원진단으로 알았다.

문승협은 여동생만 둘이라 남동생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나이 어린 사촌동생들이 몸이 불편한 형제를 돌보는 모습을 볼라치면 측은지심에 마음 아팠다. 장애아들을 둔 수심 가득한 두 작은어머니를 마주할 때면, 자신이 어떻게든 성공해서 도와야겠다는 다짐도 여러 번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직접 보살피겠다는 각오도 했었다.

오랜만에 만나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하였다. 박옥춘이 저녁식사를 하면서 문경준의 회사재산을 빼돌린 박준배향방을 경찰인 문경빈에게 물었다. 가족이 다모인 명절에 하필 그런 이야기를 하냐며 문경준이 발끈하자, 문경빈이 어머니를 대하는 태도를 지적하여 일이 커졌다.

“형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손주들 있는디, 엄마한테 그렇게 불손하게 굴면 돼요?”

“뭐야? 이 시끼가 어디 형한테 말을 그따구로 해? 굴면이라니? 싸가지 없이.”

“음메, 염병하네, 무담시 지 동생한테 성질이까잉.”

“뭐요? 엄마는 뭐 한디 준배이야기를 꺼내갖고, 내 성질을 건드요?”

“궁금한께 물어본 것이어, 물어본 것도 죄냐?”

“그란께요, 궁금한 건 알겄는디, 왜 그것을 지금 묻냐 말이요?”

“형 그만하쑈, 밥 먹다 말고 이게 뭔 짓이요?”

“오빠, 아부지도 있는디 진정하쑈. 엄마도 맥없이 그런 말 해갖고 분란을 일으키요, 오빠성질 모르요?”

“아따 이 시끼들이, 인자 단체로 그라네? 내성질이 으째서야? 이것들이 참말로 나를 개무시하네?”

“여보, 진정하세요. 그만하고 식사해요, 예?”

“오메, 그래도 지 서방이랍시고 뭐라 하그만잉.”

“어머니도 말씀 그만하고 식사하세요.”

“어허, 부창부수라드만, 둘 다 똑같이 사기당해 갖고 염병들 하네 참말로.”

“뭐라우, 그건 또 뭔 소리다요? 승협이 엄마가 뭔 사기를 당했다고 그라요?”

“느그는 위아래도 없냐? 애비가 있으나 없으나 잘들 한다. 아그들이 다 와있는디, 뭔 쓰잘데없는 야그를 해갖고 이 난리를 만들어, 나이 들믄 나잇값 좀 해.”

문재환이 숟가락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가 담배를 물었다. 비로소 분란이 소강되었다.

결국 문경준약점인 박준배이야기로 화목한 추석이 박살 났다. 이항리약점이 되어버린 곗돈사기와 돈 떼일이야기로 고부갈등은 더 깊어졌다. 서로 위로와 격려보다는 각자 입장에서 옳고 틀림을 가리기에 바빴다. 가족 간 불화가 갈수록 악화되었다.

문승협은 할머니를 시작으로 작은아버지들과 고모가 아버지를 공격하여 마음 아팠다. 이미 여러 번 겪었던 일이기에 괜찮을법했지만, 이전엔 어려서 두려움정도였다면, 이번에는 충격이었다.

윤옥희가 상심해 있는 문승협을 따로 불렀다. ‘어른들이 참 못났다, 그치. 어른들 이야기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려, 마음에 담아두지 마’라고 하였다. 문승협은 서울작은엄마의 위로에 고개를 끄덕였으나, 가슴속에 멍에로 남았다.

문경준은 무시당했다는 분을 이기지 못하였다. 추석날아침 근무지인 도안광산으로 가버렸다. 박옥춘을 위시한 어른들이 가고 없는 문경준을 매정하게 비난했다.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추석인데 장남으로서 무책임하게 갔다는 이유였다. 문승협은 또 한 번 상처받았다. 문승협가족이 아침을 먹으면서 선장을 잃은 선원들처럼 주눅 들어 좌불안석하였다. 

“경철이 형, 언제 가요?”

“대구처갓집에 들려야 해서, 점심묵고 갈라고. 경민이 니는 언제 가냐?”

“나는 목포처갓집 다녀왔은께, 내일 갈라고라.”

“경빈이 형도 내일가요?”

“응, 내일. 나도 서울 올라갈 때 동선을 고려해서, 먼저 목포처갓집에 갔다 왔어.”

문승협은 문득 외할머니가 보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외갓집에 못 가본 지도 3년째였다.

아침상을 치우자마자 문재환의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어른들은 손님맞이로 부산했다. 문현아와 문윤아는 사촌동생들과 어울려 놀았다. 문승협은 울적한 마음에 혼자 동네를 둘러보았다.

문경철이 점심을 먹고 대구처갓집으로 출발하였다. 오후에도 문재환의 손님들이 드문드문 다녀갔다.

저녁식사시간이 되어갈 즈음 순화광산소장이 다시 찾아왔다. 이항리가 술상을 차려냈다. 문재환과 문경민은 술을 잘 못해서 잔을 받아만 놓았다. 문경빈과 광산소장은 주거니 받거니 했다. 박옥춘이 서울아들을 위해 큰돈 썼다며 잘 삭힌 홍어를 가져왔다. 서울아들 문경빈이 기분 좋게 막걸리 한잔을 비우고 홍어를 맛봤다. 때마침 방에서 나온 문희경이 한 점을 집어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소장이 재미있다는 듯 빙긋 웃었다. 멋쩍어하던 문희경이 불쑥 5.18 광주항쟁으로 피해는 없냐고 물었다. 흠칫 놀란 소장이 길게 한숨지었다. 단숨에 술잔을 비우고 입가에 묻은 막걸리를 훔쳤다.

“저그 녹동마을하고 주남마을을 안가? 여그서 10분 정도 거리여.”

“몰라라우, 여그 안 산디 어뜨케 알겄소.”

“5.18 사태가 일어난 사흘 뒤인께, 21일인가 기여. 공수부대가 느닷없이 나타나드만, 광주로 가는 도로를 막드라고, 그래서 그런가 부다 했제. 그란디, 주남마을을 지나가는 버스에다 무담시 총을 갈겨 갖고, 메락없이 열일곱인가 죽었어. 어디 그뿐이 간, 멍하니 있는 주민들한테도 쏴갖고, 또 세 명을 죽여부렀단께.”

“오메오메, 으짜스까잉.”

“그라고 저그 녹동마을에 화약고가 있는디, 거그다가 죽은 시신을 암매장했다는 소문이 파다해. 광주하고 나주 간 도로에서도, 공수부대가 탱크로 길을 막드만 버스 4대에다 막 총을 쏴부렀어. 탄 사람들이 다 몰살당했다 드라고. 어디 가서 이런 말 하지 마소잉, 누구한테 들었단 야그도 말고. 행여 말했다가는, 말한 사람이나 나나 다 잡혀간께, 절대 말하믄 안 돼야.”

소장은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고 했다. 총 든 군인을 보거나, 탱크 지나가는 비슷한 소리만 들어도 부들부들 떨린다고 하였다.

순화광산 주변 주민들도 5.18 광주민주항쟁피해자가 여럿이었다. 바로 옆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문승협은 목포역에서 시위지도부를 통해 들었던 소식들이 진실이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추석다음날 아침, 큰고모 문희숙내외가 왔다. 다 함께 점심을 먹은 후 각자 터전으로 돌아갔다.

이전 명절과 다르게 진외가박동후회장집과 종갓집을 방문하지 않았다. 전화안부로 대신한 것은 처음이었다.

문승협에게 매번 상처를 주는 명절이 지나가고, 정부와 정치권이 또다시 발 빠르게 움직였다.


국무회의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국가보위대책회의’로 개칭했다.

제5차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투표율 95.5%에 찬성률 91.6%로 개헌이 확정되었다. 제5공화국헌법제정과 동시에 국회와 각 정당들을 자동해산시킴으로써, 유신헌법으로 설치되었던 헌법기관인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폐지하였다. 전두환대통령이 국회를 대신할 국가보위입법회의의원 81명을 임명했다. 입법회의는 ‘정치풍토 쇄신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의결하였다.

미국공화당후보 로널드레이건이 지미카터의 대통령연임을 저지하고, 대통령당선자기자회견에서 한국지지의사를 표명했다.

육군고등군법이 김대중 등 내란음모사건항소심에서 김대중 사형, 이문영 징역 20년, 문익환 15년, 예춘호 12년형을 각각 선고하였다.

계엄사가 불교계정화를 명분으로 전국사찰에 난입하여 조계종 승려와 관계자 등 153명을 불법연행했다. 조계종이 임시중앙총회에서 종회를 해산하고 정화중흥회의발족을 의결하였다.

노동청이 ‘노동계 정화지침’을 전국 각 사업장 등지에 시달했다. 제1차 노동계정화조치로 노총위원장 등 한국노총산별노조위원장급 12명이 해임되는 노동탄압이 이어졌다. 제2차 노동계정화조치로 민주노조간부 191명이 강제로 사표 냈다. 전태일모친 이소선씨가 청계천피복노조 임금인상농성배후조종혐의로 구속되었다.

고려대생들이 ‘반파쇼 민주화의 횃불을 들라’는 선언문을 뿌린 시위로 자진휴업조치를 내렸다. 서울대농대생들이 유인물 ‘민주화 학우 선언’을 배포하고 시위하였다. 경희대생들이 교내에 반정부유인물을 뿌리는 등 학원가 민주화운동은 계속되었다.

정부가 20개 재벌계열사정리를 담은 ‘기업체질 강화대책’을 발표하고, ‘의료보험법 시행령’ 개정을 결정했다.

문교부가 고교우열반편성을 허용하였다. 서울지하철 2호선 신설동에서 종합운동장구간이 개통됐다.

MBC가 주간농촌드라마 ‘전원일기’를 첫 방영했다. KBS에서는 ‘젊음의 행진, 100분 쇼, KBS바둑왕전, TV문학관’등이 첫 전파를 탔다. 한여름에 열렸던 ‘강변가요제’가 광주민주항쟁여파로 열리지 않았지만, ‘MBC대학가요제’는 시기를 늦춰 개최하였다.


문승협이 MBC대학가요제를 시청하다 깜짝 놀랐다. 참가자 중에 이자연을 발견하고 흥분했다. TV에 다가가 않으며 문현아를 불렀다. 문현아가 TV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였다.

“어? 저 언니가 왜 저기에 있어?”

“현아야, 저 언니 생각나?”

“오빠한테 신사라 하고, 나한테 숙녀라고 했잖아.”

“하하, 4년 전 일인데 기억하는구나. 가수가 되고 싶다더니, 진짜 가수 됐네.”

“근데 저 언니 머리 왜 저래, 아줌마 같아.”

“하하, 그러게, 촌스럽긴 하지만 예쁜데?”

“우아, 저게 예쁘다고? 오빠, 가서 눈 좀 씻고 와라.”

이자연은 빨간 립스틱을 두껍게 바른 화장한 얼굴에, 폭탄 맞은 양 아주머니파마머리여서 촌스러웠다. 사춘기 중학교3학년 문승협눈에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날씬한 몸매가 예뻐 보였다.

이수만과 왕영은의 사회로 시상식이 거행되었다. 이자연이 ‘바다노래’라는 노래를 불러 아차상을 받았다. 사회자와 인터뷰에서 계속 도전하여 가수가 되겠다고 희망했다. 문승협은 노래제목 ‘바다노래’가 낯익었다. 시상식이 끝날즈음 도안광산에서 장사하던 이자연엄마의 대폿집상호라는 것이 기억났다.

동상에 관동대학교 둘 하나의‘그 누가’, 배재전문대등 3개 대학의 ‘내님’, 추계예술전문대의 ‘동천’. 은상에 숙명여대등 5개 대학생으로 구성된 샤프의‘연극이 끝난 후’, 서울대와 연세대 마그마의‘해야’. 금상에 홍익대와 단국대 뚜라미의‘해안선’. 대상에 연세대학교 이범용과 한명훈의 ‘꿈의 대화’가 수상하였다.

문승협은 편지보관상자에서 3년 전 이자연의 편지를 찾았다. 이자연의 광주집전화번호를 확인했다.

1주일 후, 축하와 안부 인사차 다이얼을 돌렸다. 거의 3년 만에 하는 연락이라 미안함이 배어있었다.

“여보세요.”

“누구시요?”

“저 승협이요.”

“뭐시, 승협이라고?”

“네, 잘 있었어요?”

“목소리가 다른디, 감기 걸렸냐?”

“아니오, 변성기라서 그런가 봐요.”

“오호라, 그라믄 인자 어른 다 됐겄다잉.”

“뭐래, 이제 중3인데.”

“옛날 같으믄 장가가서 애가 몇이다야.”

“하하, TV 봤어요.”

“으째, 이쁘게 나오디?”

“입술은 쥐 잡아먹은 거처럼 빨갛고, 머리는 무슨 폭탄 맞은 마냥, 촌스러워 죽는 줄 알았어요.”

“음마, 꾸민다고 돈을 솔찬히 줬는디, 섭하다.”

“하하, 아니에요, 예뻤어요. 축하해요.”

“아따 겨우 아차상 인디, 쑥스럽다야.”

“아차상이 뭐 어때서요, 나한테는 대상이었어요, 노래도 좋았고.”

“진짜? 혹시, 너 애인 있냐?”

“중학생한테 애인이 어디 있어요. 왜요?”

“어허, 왜요는 일본 요란께는. 말을 달짝지근하게 한 것이, 연애한가 싶어서.”

“저 원래 그런 남자였어요. 다 잊었나 봐?”

“내가 니를 으째 잊겄냐, 대학가요제에 나간 것이 누구 때문인디. 잊은 건 너겄제.”

“난 잊은 적 없는데?”

“잊은 적 없다는 남자가 거의 3년 만에 연락하냐? 내 마지막 편지에는 답장도 안 했음시롱.”

“하하, 그건 미안해요, 변명하지 않을게요.”

“아니, 변명해. 나를 속이는 변명은 말고, 나를 달래는 변명은 해, 그것이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여.”

문승협과 이자연은 이런저런 안부와 각자 생활, 대학가요제를 소재로 이야기 나눴다. 5.18 광주민주항쟁 때 별일 없었는지는 빼놓을 수 없는 질문이었다.

이자연은 엄마 때문에 집밖으로 일체 못 나갔다고 하였다. 광주땅에 있었으면서도 시위에 동참하지 못한 죄스러움에 항상 부채의식이 있다고 했다.

이자연의 엄마는 광주민주항쟁 당시 음식을 방에 차려 놓은 뒤, 이자연의 외출을 막으려고 문밖에서 자물쇠를 채웠다. 혹시 딸이 잘 못될까 두려워 가둬야만 하였다. 이자연 모르게 시민군식사를 나르고, 부상자 이송과 치료를 도왔다. 나중에 알고 따지는 이자연에게 ‘내가 너라면 가만있지 않을 거라 확신했기에, 딸이 하였을 위험한 일에 엄마가 대신 나섰다, 그렇게 해서라도 역사 앞에 양심의 가책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었다’고 했다.

문승협은 모녀가 의지하고 잘 산다는 생각이 들어 안심되었다. 서로 자주 소식을 전하자며, 광주에 가면 꼭 연락한다는 약속으로 통화를 마쳤다. 수화기를 내려놓기 무섭게 엄마의 잔소리를 들었다.

이항리가 문승협의 겨울교복을 다림질하면서, 용건만 간단히 하라고 긴 통화를 질책했다. 김철종에게 전화가 왔다. 2주 뒤 동창회가 있다는 연락이었다.


대학가요제수상곡들이 거리곳곳마다 울려 퍼지고, 대중을 통해 인기리에 불렸다. 문승협은 검은색겨울교복을 입고 졸업앨범사진을 찍었다.

어느덧 최선경 추모 2주년이 되었다. 작년에 비해 참석인원이 더 줄었다. 서울로 전학 간 김진철외에 학생회임원들은 대부분 참석하였다. 다들 일 년 사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예전 귀여웠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남녀모두 신체발달로 성장한 키만큼 체형이 커졌다. 얼굴에는 여드름이 피어났다. 여자아이들이 거뭇하게 난 수염에 변성기로 목소리가 굵어진 남자아이들을 아저씨 같다며 놀렸다. 남자아이들은 가슴이 도드라져 보이는 여자아이들을 앞에 두고 시선을 어디다 둘지 몰라 방황했다.

작년처럼 제갈민주와 박진숙의 주도로 간략히 최선경을 추도하였다. 시간이 지나서인지 슬퍼하는 기색이 예전보다 덜했다. 작년에 냉랭하던 이정주와 차여선이 결국 친구사이로 남기로 하였다며 결별을 밝혔다. 친구들은 둘 사이에서 처세하기 어려워했다.

“야 문승협, 너 인혜여중 홍지아와 사귄다드라?”

“여선이 너도 들었냐? 진짜 둘이 사귀냐?”

“아야 현기정,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니가 그걸 믿냐? 내가 전에 말했잖애.”

“그라믄, 그때 그 야그가 그 야그여?”

“뭔 야그인디 그라냐? 민주야, 뭐대?”

“차여선, 니가 뭐 한디 관심이냐? 으째, 승협이랑 한번 잘해 볼라고 그라냐?”

“아따 저 유치하고 쪼잔한 놈. 정주 니가 그란께 나한테 채인 거여.”

“뭐시어? 채이긴 누가 채여, 내가 찬 거제.”

“예예, 맘대로 생각하세요. 민주야, 얼른 을퍼봐야?”

“느그들 신체발달에 비해 정신발달은 무자게 더디다잉, 으째 승협이한테 안 묻고 민주한테 난리냐?”

“허허, 그란께 말이어. 진숙이 말대로 당사자인 승협이한테 물어봐라.”

김철종의 말에 친구들 시선이 문승협에게 모아졌다. 문승협이 웃으며 제갈민주를 쳐다봤다. 친구들 시선이 자연스레 제갈민주에게로 옮겨갔다.

“홍지아가 승협이한테 쪼까 껄떡대기는 했는디, 아무 관계도 아니어.”

“어이 민주씨, 고상한 숙녀께서 껄떡이란 말을 쓰믄 쓰겄소? 으째 당신이 그리 잘 아요?”

“오메 철종씨, 까불이 신사께서는 별말씀 다하요잉. 지가 홍지아한테 직접 들었고요, 둘이 합창단 하고 보이스카우트걸스카우트로 친한 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어라우.”

“진짜여? 거짓갈 아니어?”

“두말하믄 잔소리제. 근디 말이어, 내가 홍지아랑 야그 해본께, 아그가 생각보다 괜찮하드라.”

여자아이들이 제갈민주답변을 듣고 싱겁다는 듯 웃었다. 김용남이 김철종에게 물었다.

“철종아, 느그 성은 인자 별일 없냐?”

“잉? 잉, 아직 다리를 좀 절기는 한디, 괜찬해.”

김철종의 형은 목포역에서 5.18 시위대를 돕다 계엄군에게 사진 찍혔다. 한동안 경찰서와 보안대에 불려 다니며 조사받았다. 김용남의 어머니가 인맥을 동원해 손을 써 다행히 단순가담자로 판명받아 풀려났다. 고문을 받은 후유증으로 아직 다리를 절었다.

김용남이 친구들에게 5.18 피해가 없었는지 물었다. 다행히 친구들에게 직접적 영향은 없었으나, 몇 명은 친척들이 당한 사건들을 심각한 표정으로 풀어놓았다. 다들 중간중간 누가 들을까 봐 주변을 살폈다.

문승협은 추석에 순화광산 갔을 때 광산소장에게 들은 이야기는 차마 할 수 없었다. 순화광산소장말대로 혹시 모를 후환이 두려웠다. 엄마에게 들은 광주에서 양장점 하는 막내 이모 이항경의 경험과 목격담도 말하려다 참았다. 생각하는 이상으로 5.18 피해자가 가까운 주변에 수없이 많았다. 이야기하는 내내 침통하였다.

이정주와 차여선이 사귄 것도 그렇고, 남녀친구들이 허물없는 유선국민학교 문승협의 동기동창회는 매우드문경우였다. 남녀가 만나는 자체를 죄악시한 시대라, 남녀 칠 세 부동석이라는 말이 꾸준히 유행했다. 남녀가 쑥스러워 말 붙이기도 어려운 환경이었다. 이들도 성장하면서 사회가 요구하는 시선에 따라 점점 멀어져 갔다.

문승협은 친구들과 헤어지고 의식행사처럼 옛날 최선경집 앞으로 갔다. 홍지아집대문이 열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얼른 숨었다. 홍지아엄마가 외출하였다. 다시 나와 최선경침실이 있던 2층 창문을 바라보았다. 또 최선경을 닮은 지선이라는 아이가 떠올랐다. 작년에는 최선경얼굴이 먼저 나타났지만, 이번에는 지선이라는 아이 얼굴에 오버랩되어 최선경얼굴이 나타났다.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최선경에게 죄스러워 고개를 가로저었다. 최선경얼굴이 기억에서 사라졌을까 봐 두려웠으나 지워지지 않아 안심했다. 불현듯 홍지아가 이 광경을 지켜볼 수 있다는 의심에 주위를 살펴봤다. 집으로 가면서 작년 오늘과 데자뷔 한 느낌이 신기하였다.


고입선발고사를 일주일 앞둔 일요일, 문현아가 도서관에 가려고 나서는 문승협을 불러 세웠다.

“오빠, 홍지아라고 알아?”

“응, 예전에 큰고모랑 서예 배우러 다닐 때 알았어.”

“둘이 사귀어?”

“아냐, 그냥 조금 잘 아는 친구야.”

“아, 그렇구나.”

“근데, 너는 홍지아를 어떻게 알아?”

“나는 홍지아언니가 누군지 몰라.”

“그럼 왜 물어 본거야?”

“내 친구 경아네 집에 놀러 갔더니, 걔네 언니가 오빠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더라고.”

“걔네 언니는 나를 어떻게 아는데?”

“모르지. 그냥 놀러 갔는데, 문승협 동생이냐면서, 친한 척 막 잘해주더니 묻더라.”

“그래서, 뭐라고 했어?”

“그냥 있는 그대로 말했어.”

“그러니까 뭐라 그랬는데?”

“잔소리 대마왕에 취미가 심부름시키기, 마음이 여린 소심한 준법소년.”

“뭐라고? 진짜 그렇게 말했어?”

“호호호, 왜, 찔려? 그렇게 말하려다, 내 오빠는 내가 지켜야지 싶어서, 그냥 범생이라고 했어. 그 언니가 오빠한테 관심이 많더라, 여자친구 있는지도 꼬치꼬치 캐묻더라고.”

“야, 어디 가서 오빠얘기 함부로 하지 마, 알았지?”

“오빠, 그 언니 목화여중3학년인데, 엄청 예뻐.”

“예쁜 거 하고 나하고 뭔 상관이야. 아무튼, 어디 가서 오빠말 하지 마라고, 응?”

“안 해, 안 한다고.”

문현아는 퉁명스럽게 남얘기하듯 말했으나, 부모대신 의지해온 탓에 자신을 수호신처럼 보호해 주는 오빠에게 정이 많았다. 오빠에 대해 묻거나 접근하는 언니들에게 까칠하고, 때로는 질투심에 짜증 낸 적도 많았다.

여자친구에 대한 오빠마음을 떠보려 친구언니를 예쁘다고 하였지만, 관심 없어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내심 오빠에게 여자친구가 안 생기길 바랐다.


문승협은 시험합격의미로 동생들과 작은 고모에게 모찌떡과 갱엿을 받았다. 고교추첨배정을 위한 고입선발고사여도 첫 입시시험이라 엄청 떨렸다. 인문계고와 실업계고로 구분된 고입선발고사시험은 중학교교육과정 내에서 출제하였다. 작년과 다르게 반공과 도덕과목이 포함되어 특이했다.

고입선발고사가 치러진 다음날부터 야간자율학습이 종료되었다. 수업도 4교시로 일찍 마쳤다.

문승협이 평상시처럼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였다. 버스정류장에 여학생 3명이 문승협을 뒤따랐다.

집에 다다를 즈음, 여학생 중 한 명이 빠른 걸음으로 바짝 따라붙었다. 문승협책가방 사이에 뭔가를 찔러 넣고 쏜살같이 달아났다. 문승협은 순간 당황했으나, 아무 일 없는 척 뒤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들어갔다. 대문을 닫자마자 뛰어들어가 엄마 이항리에게 사실대로 고하였다. 이항리가 흥미롭게 듣고는 문승협가방 사이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여학생이 쓴 연서였다. 이항리가 예쁜 봉투를 열고 편지를 읽었다. 별말 없이 그대로 다시 가방에 넣었다.

이항리가 저녁에 퇴근한 문희경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했다. 작은 고모 문희경이 문승협에게 가져오라고 해서 읽었다. 깔깔 웃으며 편지를 다시 건네주었다.

“여자애가 먼저 만나자고 편지를 주다니, 요즘 애들은 당돌하네. 승협이 생각은 으짜냐?”

“네? 아직 편지 안 읽어봤는데요?”

“으째서 니 편진디 본인은 안 읽고. 언능 읽어봐. 오랫동안 지켜봤는디, 니가 맘에 든다고 사귀잔다야.”

문승협이 편지를 펼쳤다. 마지막에 ‘최경주’라고 쓰여있었다. 내용은 문희경말과 대동소이하였다.

“최경주가 누군디, 아는 가시나냐?”

“누군지 몰라요.”

“오빠, 최경주는 경아네 언닌데? 전에 오빠에 대해 물어봤다던 내 친구언니야.”

“니를 꽤나 좋아한가 부다잉, 미리 조사도 하고.”

“고모, 어떻게 하죠, 승협이가 아직 어린데?”

“어리다고 뭔 일 있겄소? 승협이 니 생각은 으짠디?”

“모르겠어요, 지금은 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나중에 대학 가서 만나면 모를까.”

“그냥 한번 만나봐, 맘에 들믄 친구처럼 지내고. 그래도 맘에 안 내키믄 대학 가서 만나자고 해.”

“고모, 그래도 될까요? 승협이 공부에 방해될까 봐.”

“언니는 별 걱정 다하요. 여자친구 땜시 공부 못하믄 그게 어디 남자요? 희숙이 언니보쑈, 형부랑 만나믄서 공부도 잘하고, 형부도 명문대 가서 앞가림 잘합디여.”

“그러긴 한데, 승협이는 마음이 여려서, 끌려 다닐까 봐 걱정되네요.”

“중도 절이 싫으믄 떠난다고, 승협이 니가 결정해.”

“고모는 제가 여자친구 사귀는 거 찬성이에요?”

“잉, 찬성. 아따, 내 조카가 인자 여자친구 생기겄다잉, 호호호.”

문승협은 엄마는 물론 작은 고모도 반대할 줄 알았다. 작은 고모가 아무리 개방적이라도 여자친구의 ‘여’자도 꺼낼 수 없는 사회분위기에서 이성교제를 쉽게 찬성하여 놀랐다. 더욱이 스스로 결정하라는 말이 오히려 부담되었다. 어찌할지 고민되었다.


일주일 지나고 방학을 이틀 앞둔 수요일, 최경주가 친구 2명과 문승협집 길목에서 기다렸다. 지나가는 문승협을 골목으로 불러들였다. 빨개진 얼굴로 수줍어하며 물었다.

“편지 읽어봤어요?”

“네.”

“그럼 생각해 봤어요?”

“저기, 혹시 깡패예요?”

“네? 아 아니에요, 깡패로 보여요?”

“길목에서 기다렸다가 골목으로 부르고, 친구들은 망보고.”

“아 그건, 혼자는 도저히 용기가 안 나서 친구들에게 부탁한 거예요.”

“호호호, 아야 뭐라냐? 우리 보고 깡패라냐? 진짜 여자깡패 한번 보여주까?”

“아야 장난하지 마야, 우리를 날라리로 오해하겄다.”

“놀라게 했다면 미안해요, 궁금한 나머지 제가 조급했네요. 편지에 보면, 24일 저녁 여섯 시에 긴자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봤어요?”

“네.”

“긴자는 어디 있는지 알죠?”

“네.”

“목포극장 사거리, 유달산 등구 쪽에 있어요.”

“알아요.”

“그럼 그때 거기서 봐요.”

최경주가 부끄럽다는 듯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서둘러 골목을 빠져나갔다. 친구들도 호기스러운 장난은 온데간데없이 쑥스레 뒤따라 갔다.

문승협은 낯선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인 게 처음이라, 쿵쾅거리는 가슴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저녁시간 다되어 집에 온 문현아에게 최경주에 대해 물었다. 최경주의 동생 최경아와 최근에 친해져서 자세한 건 모른다며, 작년 초 서울에서 전학 왔다는 말만 덧붙였다.

문승협은 다음 주 약속에 나갈지 말지 결론 내리지 못했다. 복잡한 생각을 떨치려고 TV를 켰다. 비틀스멤버 존레넌이 미국뉴욕저택 앞에서 총상을 입고 얼마 전 숨졌다는 비보가 나왔다. 마음이 더욱 뒤숭숭하였다.


이홍우가 시사만화‘나대로 선생’을 동아일보에 연재를 개시했다. 사회정화위는 불량만화출판사대표와 만화가 14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14명을 불구속 입건하였다.

KBS ‘전국노래자랑’이 첫 방송되었다. 언론통폐합조치로 TBC동양방송과 DBS동아방송이 KBS에 흡수합병되고, KBS2TV와 라디오 3개 채널이 개국했다. 전일 방송, 서해방송, 한국 FM, 국제신문 등이 각각 종방 되거나 종간됐다. 전남지역 통합일간지 광주일보가 창간되었다. 문공부가 MBC-경향 주식 중 65%를 KBS가 인수하며, 나머지 35%를 5.16 장학회가 보유한다고 공표하였다. 국내최초 통합통신사 연합통신이 설립되었다. KBS1TV에 이어 KBS2TV와 MBC가 컬러방송을 시작했다.

계엄사가 불교계 부조리수사결과를 발표하였. 승려 등 18명을 구속형사입건하고, 각종 부정치부재산이 2백억 6천만 원이라고 밝혔다.

김대중 등 내란음모사건관련자 12명은 2심 판결에 불복하여 대법원에 상고했다.

5.18 당시 신군부 편에 선 미국을 규탄하는 광주미국문화원방화사건이 발생하였다.

민청학련사건관련자 김지하시인 등 8명이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서울대생들이 교내학생식당과 도서관계단에서 ‘반파쇼 학우 투쟁’ 유인물을 뿌리며 시위를 벌였다. 이른바 ‘무림 사건’이었다.

민정당창당준비위원회가 구성되고, 민정당사무총장이 구공화당지방조직을 인수하겠다고 밝혔다.

민간단체 ‘새마을운동중앙본부’가 발족된 이후, 전두환대통령이 전국 새마을지도자대회에서 새마을운동은 민간운동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마을운동이 1단계 관주도형에서 새마을운동중앙본부가 중심이 된 2단계 민간주도형으로 바뀌었다. 전두환대통령의 동생이자 대통령경호실보좌관인 전경환이 새마을운동중앙본부사무총장으로 거론되었다. 새마을운동이 질주할 준비를 마쳤다.

문교부가 국어순화운동을 범국민운동으로 강력한 전개를 알렸다. 국무회의는 대입예비고사제를 학력고사제로 바꾼 ‘교육법개정안’을 의결하였다.


서울광화문에 ‘교보문고’가 설립된 크리스마스이브날, 문승협이 동생친구언니 최경주를 만나러 긴자로 향했다. 긴자는 일본전통만두 교자전문점으로 사장이 일본사람이었다. 야끼교자와 아게교자가 유명하였다. 어른들이 야끼도리를 안주로 사케를 즐기는 곳이기도 했다.

크리스마스이브인데도 손님은 구석 쪽 테이블에 자리한 여학생 다섯 명이 전부였다.

문승협이 여학생들 수다 떠는소리에 잠시 머뭇거리다 마지못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여학생들이 돌연 침묵하며 일제히 일어나 자리를 권하였다. 의자에 앉은 문승협은 쑥스러워 고개를 못 들었다.

여학생 중 한 명이 음식을 주문하자고 했다. 최경주는 주문엔 관심 없이 문승협을 살폈다. 여학생들이 주문을 한 뒤 문승협에게 이것저것 물으며 짓 굳은 질문과 장난을 걸었다. 최경주는 미안해하며 친구들 말리기에 급급하였다. 최경주와 여학생들의 인상과 행실이 나쁘진 않았다.

문승협은 중학교1학년 때 서수연선생과 여학생들로 붐비는 인혜여중고매점에 처음 간 날이 떠올랐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남자 여러 명 사이에 여자 한 명은 있을 수 있어도, 여자 여러 명 사이에 남자 한 명은 역시나 곤혹이었다. 처음 보는 여학생들 사이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앉은 자세는 또 어찌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얗게 백지장이었다. 그냥 여학생들이 하는 대로 맡겨야 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최경주가 먹으라며 권하였다. 고개만 끄떡일 뿐 가만히 있는 문승협에게 나무젓가락을 갈라 앞 접시에 놓아줬다. 여학생들은 아랑곳없이 음식을 먹었다.

조금 까불대는 여학생이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 냥, 너무 순진해 여학생 앞에서 고개도 들지 못한다고 문승협을 놀렸다. 최경주가 미소로 동의하면서도 아게교자를 하나 집어 문승협의 앞접시에 올려놓았다.

“이거 좀 드세요.”

“네.”

“우리 동갑이니 말 놓을까요?”

“그랍시다, 같은 또래끼리 말 높인 것도 그란디, 말 편하게 합시다.”

“네.”

“승협씨.”

“아야 간지럽게시리 승협씨가 뭐냐, 그냥 이름 불러라. 그래도 되지라?”

“네.”

“아따 그래도, 초면에 쪼까 그란디?”

“괜찮아요, 이름 불러도 돼요.”

“승협아.”

“호호호.”

“물어볼 것이 하나 있는디, 물어봐도 되까?”

“네.”

“아따 금방 말 놓기로 해놓고는, 네가 뭐까잉.”

“경주가 좀 순해갖고 내가 대신 물어보는 것인디, 인혜여중 홍지아랑은 뭔 사이까?”

“친구예요.”

“봐라, 내 말이 맞제, 사귄다는 소문은 헛방이란께.”

“친구믄, 둘이 사귀는 친구는 아니제?”

“네.”

“호호, 그라믄 됐다야, 경주야 잘해봐라.”

“저기 경주씨, 저랑 저쪽에 가서 잠깐 이야기 좀 할까요?”

“네?”

문승협은 여학생들 사이에 혼자 있는 게 너무 불편했다. 어느 순간 최선경이 떠올라 계속 앉아있을 수 없었다. 솔직한 자기 마음을 전하려고 최경주와 단둘이 출입구 쪽 자리로 옮겨 앉았다. 잠시 뜸 들이다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경주씨 마음은 잘 알겠어요, 하지만, 저는 여자친구 사귀기엔 아직 어리다고 생각해요.”

“…….”

“미안해요, 나중에 대학 가서 만나요.”

“…….”

“그럼 저 먼저 갈게요.”

문승협은 애초부터 교제생각이 없었다. 거절할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해 망설였었다. 최선경에게 죄스런 마음이 드는 순간, 대학 가서 만나라는 엄마말이 떠올라 인용하였다.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경황이 없었다. 최경주를 달랠 겨를 없이 부리나케 자리를 빠져나왔다. 낙심한 표정으로 당황하던 최경주에게는 미안하였다. 그렇다고 그냥 받아들일 수 없는 노릇이어서 잘한 결정이라고 스스로 다독였다. 크리스마스이브날 저녁 겨울공기가 이렇게 시원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집으로 가는 길에 한 송이 두 송이 눈이 내렸다. 눈꽃송이를 보면서, 첫눈 올 때까지 새끼손가락에 물들인 봉선화가 지워지지 않으면 첫사랑이 이뤄진다는 최선경말을 떠올렸다. 누군가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눈이며, 누군가에게는 그리움이 담긴 눈이었다. 한편으로 최선경에게 도의를 지켰다는 생각에 마음이 홀가분했다. 갑자기 야끼교자나 아게교자를 하나라도 먹고 올걸 하는 아쉬움이 고개 들었다. 이 와중에 그런 생각을 한 웃긴 놈이라고 비웃어주며 서둘러 집으로 갔다. 눈이 펑펑 쏟아졌다.

작은 고모 문희경은 크리스마스이브를 즐기느라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동생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문승협을 반겼다. 엄마 이항리가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어떻게 됐어?”

“엄마말대로 대학 가서 만나자고 했어요.”

“그래 잘했다, 여자친구는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사귈 수 있어.”

문현아는 애써 웃음을 감췄다. 문윤아는 그 언니 속상하겠다며 동정하였다.

문희경이 다음날 소식을 듣고 피식 웃었다. 사회와 학교의 강요된 윤리로 이성교제가 없었던 자기 경험에 비추어 못내 아쉬웠다.


정부가 ‘공무원윤리헌장 5개 항’을 선포하였다. 입법회의 본회의는 언론기본법 등 19개와 노동관계 5개 법안을 통과시켰다. 118개 법안과 동의안 처리를 끝으로 당년도 일정을 마무리했다.

상공부가 기업체질강화대책에 따라 26개 그룹 631개 계열사 중 166개사를 정리토록 지시하였다.

경제기획원이 내년 중 서울에 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 8개 신∙증설계획을 발표한 가운데, 당년도 도매물가 44.2%, 소비자물가 34.6%, 경제성장률-5.7% 기록을 밝혔다. 초유의 마이너스경제성장률과 1인당 국민소득이 감소되는 최악의 경제성적표를 내놓았다.

미국미래학자 앨빈토플러가 ‘제3의 물결’을 통해, 농경시대와 산업시대에 이은 정보화시대를 주장하며, 21C 디지털혁명을 예견했다. 1977년 영미권을 중심으로 시작한 디스코열풍이 끝나가는 과도기를 맞아, 수많은 팝송이 국내로 밀려들었다. 그럼에도 조용필이 원탑가수로 등장하여 대학가요제노래와 함께 인기를 누렸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광고문구가 최고유행어로 등극하였다.

영원할 것 같았던 영욕의 1980년이 시간의 힘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었다. 대한민국민주화에 길이 남을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중학교3학년 문승협인생을 꿀꺽 삼켰다. (1권 2부 끝. 1권 끝)

☞ 2권 1부 1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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