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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양을 품은 별 Sep 02. 2024

단테의 별 - 1권 1부 13화

빛의 출현(出玄)-빛을 품다/무슨 감정일까? - (11)

이자연어머니는 그동안의 산전수전경험으로 터득한 감각이 있었다. 명리학과 관상학에 관심이 있어 틈틈이 공부했다. 처음에는 이곳에 잘 정착하려고 주위사람들과의 소통과 원활한 관계를 위해 활용하였다. 차츰 용하다는 소문이 났다. 이자연과 비슷한 나이의 아픈 딸이 있는 동네친구가 있었다. 어디서 굿을 하면 딸이 낫는다는 말을 들었는지 이자연어머니에게 사정사정 부탁했다. 죽은 사람 부탁도 들어준다는 심정으로 나름의 굿형식을 빌어서 해주었는데 신기하게도 아픈 곳이 나았다. 이후 이자연어머니가 신내림 받아 작두를 탄 무당이라고 소문이 퍼졌다. 임자 없는 여자라고 계속 집적거리며 구애에 하던 남자들이 슬슬 피하기 시작하였다. 이자연어머니는 남자들의 괴롭힘을 피할 수 있어 좋았다. 그래서 무당이라는 소문을 부인하기보다는 오히려 집 한편을 무당집으로 꾸몄다.

 

“내가 시방 어린 아그한테, 뭔 말하는지 모르겄다.”

“누나, 거기 한번 가보면 안 돼요?”

“사당아? 귀신 나올지도 모른디, 그래도 갈래?”

“아, 진짜요? 그럼 난 안 갈래요.”

“호호, 현아 겁나 불었네. 승협이는 으째, 가볼래?”

문현아가 겁먹고 혼자 있겠다고 하였다. 문승협은 이자연을 따라 뒷문으로 나갔다.

얼마 전 대문너머로 봤던 그곳이었으나 그때의 스산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사당 안 벽 한가운데에 화려한 옷을 입은 여자초상화가 걸려있었다. 매서운 눈빛에 온화한 미소가 오묘했다. 제를 올리는 단상 앞쪽에 방석과 작은 책상이 놓여있었다. 손님을 맞이하거나 책을 읽을 때 사용하는듯하였다. 어수선한 여느 무당집과는 다르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저 그림은 누구예요?”

“울 엄니가 모시는 신이어, 귀신도 잡고 병도 고쳐주고, 잘 살게 해주는 신이제.”

“에이, 신은 무슨. 엄마가 무당도 아닌데 무슨 신을 모셔요.”

“그래, 그런 신은 아닌디. 엄니가 기도할 때마다 비는, 울 엄니만의 신이어.”

“그런데,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다.”

“명성황후여, 명성황후의 초상화.”

“정말이요? 을미사변에 일본 놈들에게 시해당한 조선의 황후?”

“잉, 고종의 부인이고, 시아버지 흥선대원군이 괴롭혔제.”

“어떻게 보면 누나 엄마랑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뭔 소리까, 울 엄니가 훨씬 이쁜디?”

“아니, 외모 말고 인생 말이에요.”

“니가 나도 모르는 울엄니 인생을 으째 아냐? 너 어디서 뭔 소리 들었냐?”

문승협은 여직원에게 들었던 이자연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나 무심코 한 말이었다. 이자연이 팔짱을 끼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누 누나, 미안해요, 나도 모르게 그만.”

“됐고, 누가 뭐라디? 언능 말해봐야?”

“누나 엄마가 시댁의 행패와 괴롭힘을 못 이겨서 여기까지 왔다고.”

“누가 그라디?”

“그건 대답하지 않을래요.”

“으째서야?”

“그 사람 입장이 곤란해지잖아요, 나 때문에.”

“다른 건, 다른 말은 없어?”

“네, 그것뿐이에요, 다른 말은 없어요.”

이자연이 흥분을 가라앉히며 허리춤에 올렸던 손을 풀었다. 문승협에게 앉으라며 방석을 끌어다 주었다. 이자연도 방석을 끌어다 앉았다. 무릎을 세워 팔로 감싸 안고 말이 없었다. 문승협도 덩달아 숙연했다. 이자연이 뭔가 작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젖히더니 천정을 향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왜 회사에 안 갈라고 한 줄 아냐?”

“조금은 알 것 같아요.”

“뭔디?”

“누나 엄마?”

“쬐그만 녀석이 눈치는 빨라갖고. 그래 맞어, 엄니한테 반항하는 거여.”


이자연은 자라면서 부모에 대한 이야기와 소문을 숱하게 들었다. 주변사람들의 엄마에 대한 편견과 자신에 대한 놀림까지, 수많은 상처를 받았어도 잘 참아 왔다. 최근 윤두조의 괴롭힘으로 인해 엄마에 대한 반항심이 고개 들었고, 회사를 그만두는 것으로 표출되었다. 아버지 없는 서러움에 원망스럽기도 하고, 엄마를 보면 너무 불쌍하다고 했다. 언젠가는 자신과 엄마를 버린 아버지와 그 가족들에게 복수해 주겠다고도 하였다. 이자연마음속에는 부모에 대한 애증이 버무려져 있었다.

이자연엄마는 어려운 형편에도 이자연을 대학에 보내려 했다. 이자연은 엄마를 혼자 두고 도저히 갈 수 없어 스스로 포기했다고 하였다. 혼자 남아있을 엄마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자기가 곁에서 지켜주겠다는 사랑이었지만 동정이기도 했다. 부모로부터 생성된 여러 가지 콤플렉스가 이자연인생을 혼돈으로 몰아넣었다.

문승협도 비슷한 환경이었기에 마음깊이 공감하였다. 자라는 아이들에게 가정환경이 수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세상 모든 부모들에게 힘주어 말하고 싶었다. 부모들이 만든 가정환경이 아이들에게 수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걸 무시하고 방관하는 부모들이 있어 문제였다. 각자 자란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유전자가 남녀결혼으로 융합되어 새로 태어난 유전자까지는 어쩌지 못하더라도, 아이가 태어난 이후 가정환경에 의해 후천적으로 진화하는 유전자만큼은 부모가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누나, 부모가 자식의 좋은 모습을 보고 싶은 건, 자식이 부모의 좋은 모습을 보고 싶은 것과 다르지 않대요. 부모가 자식에게 존경받고 싶은 건, 자식이 부모에게 사랑받고 싶은 것과 같은 것처럼요. 그러니 누나가 엄마 마음을 조금만 이해해 줘요.”

“그래야제, 내가 별수 있간디.”

“그리고, 제가 어려서 짧은 생각일 수도 있는데요. 물론 상대적이고 정도에 따라 생각이 다르겠지만, 어쩌면 있어서 괴로운 아빠보다, 차라리 없는 아빠가 나을 수도 있어요. 아빠에 대한 원망도 누나 마음속에서 지워버리면 어떨까요?”

“그렇게는 못하제. 다른 건 몰라도, 내가 꼭 복수해서 우리 엄니 한을 풀어줄 것이어.”

“누나도 피해자지만, 진짜 피해자는 누나의 엄마니까. 그것은 엄마한테 맡기고, 누나는 누나의 일을 하는 게 복수 아닐까요?”

“니가 뭘 안다고 그라냐. 내가 우리 엄마의 삶을 십여 년간 지켜봤어, 용서가 안 돼야.”

“나는 잘 모르니까, 한번 생각해 보라는 거죠. 누나를 설득하려는 게 아니에요.”

“불쌍한 우리 엄니 보믄, 넘나 슬프고 화가 나부러.”

“누나가 엄마가 아닌데, 왜 엄마인양 슬퍼해요? 엄마보다 슬프고 화나? 누나가 엄마를 부끄러워해서 그런 거 아닌가요? 누나의 엄만 사랑해서 얻어진 결과니까,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지만. 그런 엄마를 창피해하는 건, 누나자신을 괴롭히는 거고 현실부정이에요. 엄마가 자랑스럽진 않더라도, 나아준 엄마를 창피해하진 말아야죠. 엄마는 무슨 죄야, 누나의 엄마도 이럴 줄 몰랐을 거라고요.”

이자연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무릎에 댄 채 흐느꼈다. 문승협은 천천히 가볍게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그렇게 소리 없이 어깨를 들썩여 우는 이자연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한참을 울던 이자연이 진정하려고 애써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이고, 시방 내가 뭔 일이지 모르겄다.”

“누나 미안해요, 이러려는 게 아닌데.”

“괜찬해, 원래 그런 거여. 그러려고 그런 것이 아닌디, 세상은 늘 그래야. 울엄니를 위해서라도, 낼 다시 출근해야 쓰겄다.”

“누나는 꿈이 뭐예요?”

“인자는 갑자기 꿈까지 묻냐?”

“저번에 집에서 잘 때 보니까, 가수 이미자노래 들으며 따라 하는 거 봤는데, 엄청 행복해 보였어요.”

“너 응큼허다잉, 숙녀를 몰래 훔쳐보고. 엄니가 노래를 잘해갖고, 나도 가수가 꿈이었제.”

“지금은요? 누나가 가수 하면 행복할까요?”

“왜야, 니가 가수 시켜줄라고?”

“가수를 시켜줄 수는 없지만 하게 할 수는 있죠.”

“뭔 소리 다냐?”

“내가 누나를 설득하면 되죠. 누나의 엄마꿈도 엄마처럼 되지 말라는 거고, 누나 대학 가는 거잖아요.”

“그래서야.”

“지금이라도 공부를 다시 시작해서 대학을 가고, 대학에 가면 가요제 같은데 나가 상을 받고, 그렇게 가수가 되는 거예요.”

“뭔 말 같은 소리를 해라, 내가 그 어려운 것을 어떻게 하겄냐.”

“왜 못해요? 대학 가면 엄마 소원성취하지, 가요제 나가면 최소한 도전은 해보는 거고, 가수까지 되면 행복해지는데? 거기다 유명해지면, 누나의 아빠 되는 사람한테 복수까지 하는 건데요? 일단 지금 당장은 공부만 하면 돼요, 내가 응원할 테니까 한번 도전해 봐요?”

“너는 가슴 싱숭생숭하게 하는 뭔 재주 있다잉?”

“무언가에 도전하는 건, 두려워하는 자신과 마주하는 용기가 필요지만, 누나는 분명히 할 수 있어요. 나는 누나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행복한 자연.”

“안 돼야, 못해.”

“왜 못해요?”

“울 엄니를 혼자 두고 떠날 수 없단께.”

“누나의 엄마 때문이라는 것도, 자기 합리화고 변명이에요. 엄마 혼자 남는 게 문제라면, 엄마랑 같이 가면 되잖아요.”

“여그가 울엄니 고향이나 다름없는디 어딜 가겄냐. 내 욕심 챙기자고 그렇게는 못해야, 말도 안 되는 소리제.”

문승협은 ‘가족도 타인이다, 자신 외엔 모두 타인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자연의 마음을 알기에 말하길 망설였다. 갑자기 사당 문이 덜컹 열리더니 이자연어머니가 들어왔다.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딨다냐, 말이 안 되믄 되게 해야제. 내가 같이 가믄 대학갈라냐? 그라믄 내가 어디든 따라갈란다.”

“아따 엄니, 진정하쑈. 시방 어쩌자는 것도 아닌께, 생각 좀 해봅시다.”

“밖에서 다 들었는디, 승협이 말이 틀린 게 하나 없어. 긍께, 어린 승협이 말이라고 우습게 듣지 말고, 잘 새겨들어. 우리 승협이를 애기로만 봤는디, 여간 총명하고 이정스럽다잉.”

이자연어머니가 딸을 위해서라면 정신적인 고향마저도 포기하고 떠나겠다고 하였다. 문승협은 그런 엄마를 둔 이자연이 부러웠다. ‘가족도 타인이다, 자신 외엔 모두 타인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에 모순을 느꼈다. ‘가족도 타인이지만, 타인이라 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자연은 시간을 벌어볼 심산으로 일단 내일 출근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밤이 더 깊어지기 전에 문승협남매를 사택으로 바래다주겠다는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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