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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 Aug 27. 2022

#7 임영애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


 손주가 없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었다. 결혼을 한 지 몇 년이나 흘렀는데도 아들 부부로부터 임신 소식이 들리지 않아 어디 아픈 데가 있는 건 아닐까, 나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 아이가 잘 들어서지 않는 것일까, 하는 걱정들을 꽤나 했었는데 아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부터는 손주가 없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서른 넷이라는 고운 나이에 남편을 잃고도 꿋꿋하게 버텨내는 며느리가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했다. 하루아침에 아들을 잃어버린 영애의 마음도 무너져 내리지만 아직 둘째 아들이 살아있는 데다가 때때로 미운 구석이 있는 남편도 건강하게 옆을 지키고 있다. 영애가 위로라도 하려고 치면 그 아이는 늘 가만히 웃으며 괜찮다고 도리어 영애를 위로해 왔다.

 첫째 며느리를 걱정해 본 적은 없었다. 밝은 아이는 아니었지만 눈빛이 언제나 단정했다. 스물일곱의 나이에 부모님을 사고로 잃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애잔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 아이의 단단한 마음을 보니 대견하기도 했다. 첫째 며느리인 선아는 키가 크고 살집이 조금 있는 둘째 며느리에 비해 키도 작고 얼굴도 작고 몸집도 작았지만 손이 야무졌다. 알밤처럼 속이 옹골찼다. 나이에 비해 동안인 첫째 며느리는 어깨에 닿을 듯 말듯한 길이의 단발머리를 하고 있어 때로는 고등학생 같기도 했다.

 어느 날 첫째 며느리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머님, 저 빵집 차리려고요.”

 “갑자기 웬 빵집?”

 “얼마 전에 규정 씨랑 처음 만났던 빵집 지나갔었는데, 주인이 가게를 내놓았더라고요. 그냥... 한번 해보려고요.”

 영애는 대답도 없이 전화를 끊고 한참을 목놓아 울었다. 잘난 것 하나 없는 아들놈을 잊지 못하고 아직도 주변을 맴도는 그 애를 보면서 이제 그만 훌훌 털고 떠날 수도 있는데, 다른 집 보면 멀쩡한 남편 두고도 못 살겠다고 도망가는 여자들도 있는데, 이 미련한 그 애는 왜 그러질 못하는 건지 속이 문드러졌다. 아들이 죽고 나서 한동안은 그 애를 보지 못했다. 아니, 보지 않았다는 쪽이 더 맞다.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히 젊은 나이였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에 예쁜 나이였기에 영애는 며느리의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아들이 며느리를 어여삐 여겼듯 영애 또한 그랬다. 계속해서 찾아오는 며느리를 문전박대하기도 하고 오는 전화를 다 차단하기도 하며 영애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했다. 자신의 말은 곧 죽어도 듣지 않아서 둘째 아들에게 부탁까지 했다. 죽은 사람 놓아주고 부디 새 삶을 살라고, 그렇게 말을 전해주고 오라고. 형이 죽었을 때에도 그렇게 울지 않았던 둘째 아들이 며느리를 보고 온 날은 얼굴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눈물을 쏟아냈다. 엄마, 형수는 단 한 번도 자기가 며느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대요, 딸이었대 이 집에서, 딸을 왜 버리냐고 하더라.

 영애는 한 달에 한번 친구들과 점심 모임을 가졌는데 하루는 점집에 갔다. 신내림을 받은 지 많이 지난 무당인지라 신력이 좀 빠졌지만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가려운 데를 단번에 긁어줘서 친구들과 종종 찾았다. 아들들이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도 이곳에서 궁합을 보고 결혼 날짜를 받았다. 길일이라고 했는데 첫째 아들네를 보니 점괘가 잘 맞지는 않는 것 같다. 영애는 자기 순서가 왔을 때 무당에게 며느리 이야기를 했다. 그 아이가 장사를 시작한다는데 어떻게 해야 자리를 잡을 수 있냐고.

 “오방색이 다 들어간 주머니를 하나 만들어. 부적 하나 써줄 테니까 그 주머니에 적두랑 같이 넣어서 금고에 보관해.”

 영애는 친구들과 재래시장에 들러 오방색이 다 들어간 고급 천을 샀다. 이왕 만드는 거 제일 좋은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완성하고 나니 오밀조밀한 게 마치 첫째 며느리 같았다. 잘 접어 놓은 부적이 무슨 효과가 있을까 싶었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야 마음이 편했다.

 한창 오픈 준비로 바쁜 며느리의 빵집에 오방색 팥주머니를 갖다 주려고 들렀다. 팥주머니만 들고 가기엔 손이 아쉬워서 며느리가 평소에 좋아하던 도토리묵을 쒀서 갔다.

 “어머님 도토리묵은 언제 먹어도 맛있어요.”

 “많이 먹어, 힘들 텐데.”

 “가져오신 건 뭐예요?”

 “팥. 장사 잘 되라고.”

 그 애는 또 가만히 웃었다.

 “장사 대박 나면 어머니 덕분이에요. 규정씨랑 결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요. 갑자기 팥으로 만든 음식들이 너무 생각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규정씨한테 퇴근할 때 팥으로 만든 것들 좀 사오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는데, 전 그때 팥으로 만든 음식이 그렇게나 많은 지 처음 알았잖아요.”

 “뭘 사왔더냐?”

 “팥죽, 단팥빵, 팥칼국수, 팥시루떡, 꿀빵, 양갱 그리고 비비빅이요.”

 이번엔 영애가 웃었다.

 “근데요 어머님, 그이 떠나고 나서 다른 건 다 먹는데 이상하게 비비빅만큼은 못 먹겠더라고요.”

 “왜?”

 “그때 3개에 천 원이라고 비비빅을 3개나 사왔었는데, 그이가 비비빅을 제일 좋아하거든요. 그 좋아하던 비비빅을 저 다 먹으라고 하나도 안 먹은 거 있죠. 그게 뭐라고, 자꾸 생각나요.”

 영애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괜히 무당 말 듣고 팥주머니를 만든 게 잘못이었다.

 “어머님, 저 먹고 싶어요.”

 “무엇을?”

 “비비빅요.”

 “사다 줄까?”

 영애는 지갑을 챙겨 얼른 빵집을 나섰다. 아들이 죽고 나서 단 한 번도 자신에게 뭘 먹고 싶다고 말한 적이 없는 아이였는데 이렇게 나서서 말해주니 무척 기뻤다. 무릎이 시큰거렸지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편의점에는 아이스바가 없어서 몇 군데를 돌아야 했지만 작은 동네슈퍼에서 겨우 하나 찾아냈다. 영애는 신이 나서 까치걸음을 하며 돌아왔다. 아들밖에 없는 영애는 딸이 얼마나 갖고 싶었는지 모른다. 비비빅을 사서 돌아가는 길에 기억이 났다. 나도 아들 둘, 딸 둘이다. 그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뭔들 못할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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