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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정 Aug 23. 2022

#6 채서아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


 펼 서, 버금 아.

 이름부터 생일까지 사주를 받아서 태어난 아이, 서아이다. 어린 시절부터 남들은 평생에 한번 겪을까 말까  일들을 모조리 겪은 서아의 엄마는 자신의 자식만큼은 평탄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수백만원을 들여 날짜를 받아 서아를 낳았다. 자식들이 튀는 부분 없이, 무던하게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엄마의 숙명과도 같았다. 비싼 돈을 들여 받아온 사주 덕분인지 서아는 어릴 때부터 흔하디흔한 감기조차 크게 앓지 않고 크게 아픈  없이 무난하게 자라왔다. 값비싼 사주 탓인지 서아는 어느 곳에서나 특출난  또한 찾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 진로를 위해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하던  서아는 되고 싶은 것도, 잘하는 것도, 심지어 좋아하는 것도 찾지 못해 상담 시간 내내  먹은 벙어리마냥 선생님의 설교만 듣다 시간을  보냈었다. 동생은 자신의 유전자와 다른 모양인지 조금만 움직여도 근육이  생기는 모양이었는데 동생은 스스로 그런 재능을 하찮아했지만 서아는 그런 것조차 부러워했다.

 “너는 그 재능 살려서 한다는 게 고작 보안요원이야?”

 “누나가 뭘 알아.”

 “다치고 위험한 일이니까 그러지.”

 “아직은 괜찮아. 더 늦으면 못 할 것 같아서 그래.”

 “원래 꿈도 아니었잖아?”

 “꿈 말고 내 의견을 내세우는 법 말이야. 누난 안 답답해?”

 “내 사주엔 싫어요가 없나 봐.”

 “그놈의 사주.. 지겹지도 않아?”

 서아와 달리 동생인 희수는 엄마가 받아놓은 날짜에 딱 맞춰 태어나지 못했다. 무엇이 그렇게 급했는지 예정일보다 3주나 일찍 양수가 터져버리는 바람에 엄마의 바람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쟤는 조금이라도 잘 될 때마다 사주 때문에 그렇게 된 거다 라는 말을 안 들어봐서 그래, 속으로 말을 삼켰다. 엄마는 자꾸만 나의 인생을 자꾸만 운명에 합리화한다. 내가 잘 된 것은 모두 운명 덕분, 내가 이토록 평범한 삶을 살아온 것 또한 정해진 운명라 믿는다. 때때로 이것이 나의 숨통을 조여왔다.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구나.

 어느덧 서아가 공직생활에 발을 들인지도 6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진정 이름 따라, 사주 따라 사는 건가 싶을 정도로 공무원이 되기 위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마냥 적당히 중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며 큰 사고 없이 국립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해 그 해에 바로 합격하고 동사무소로 발령받았다. 동사무소에서 1년 반, 구청에서 4년, 크게 아픈 곳도 없어 휴직도 단 한번 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 올해 초에 다시 또 동사무소 민원실로 발령이 났다.

 “채주임도 폴댄스 한 번 배워보지 그래?”

 “예?”

 또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저러시나, 싶었다. 서아가 아는 폴댄스라 하면 외국 영화에서 손바닥만 한 옷을 입은 여자들이 봉에 매달려 남자들을 유혹하는 춤사위였다.

 “우리 같은 사무직은 계속 모니터 보면 거북목도 심해지고 어깨도 아프잖아. 행정지원팀에 문주임도 배운다던데 한번 해보라는 거지. 나는 무거워서 봉이 휠까 봐서 못해. 허허.”

 의외였다. 꽉 막힌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때까지 오해했구나 싶었다. 그래도 폴댄스라니, 이렇게 선정적인 운동을 내가 배워도 되는 걸까, 사실 따지고 보면 선정적이라는 것도 오해이지 않나, 인도의 수행방법인 말라캄바에서 기원한 거라는데 문제 될 것이 있나? 인도의 전통 스포츠인데? 명확하지 않은 답변들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지만 악력이 좋은 편인지라 잘할 수 있을 것 같단 자신감이 생겼다. 옆 팀의 문주임님한테 학원을 소개받아 상담을 받고자 방문했을 때 생각보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있었고 체계적인 커리큘럼이 마음에 들어 당장에 등록했다.

 처음에는 폴에 닿는 부분마다 살이 쓸리고 악력만으로 버티기에 다른 근력들이 부족한 편이라 수업의 반도 채 따라가지 못했다. 심지어 폴에 눌린 곳은 멍들고 폴에서 떨어질 때마다 멍이 들다 못해 갈비뼈에 금이 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아는 멈추지 않았다. 금이 간 갈비뼈거 붙자마자 서아는 다시금 폴댄스 학원을 갔다. 처음에는 노출이 심한 폴댄스 의상 또한 부담스러웠지만 익숙해지자 몸에 맞는 폴댄스 의상을 색깔별로 구매했다. 조금씩 늘어가는 자신의 실력에 스스로 감탄하며 중력과 좀 더 싸워보고 싶단 생각도 했다. 엄마의 등쌀에 못 이겨 오랜 시간 책상 앞에 앉아있던 습관이 비로소 빛을 발했던 순간이었다. 처음으로 인내심을 가르쳐준 엄마에게 고마웠다.

 클라임조차 힘들었던 선아가 L포즈, 사이드싯을 순차적으로 해내고 피겨헤드라는 스핀 동작을 처음 배웠을 때는 두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이었다. 살이 쓸리는 부분은 여전히 아프지만 마치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한번 듣고 나면 잊을 만큼 어려운 이름들이 많았지만 하나씩 해낼 때마다 드는 성취감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을 때보다, 대입에 성공했을 때보다 심지어 태어났을 때보다 더 기뻤다. 성인이 되고 나서 엄마를 따라 같이 간 철학관에서 선아의 인생에 폴댄스가 들어올 거란 이야기는 없었다. 스스로 운명을 개척한 것 같았다.

 서아의 서른 번째 생일에 친구들과 야경이 한눈에 보이는 루프탑 클럽에 갔을 때 폴댄스에 도취되어 있던 서아인 지라 무대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폴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운명을 개척한 서아였기에 무서울 것 하나 없었다. 비어있는 폴이 서아를 위한 생일선물처럼 느껴졌다. 기분 좋게 술에 취한 서아는 망설임 없이 폴에 올랐다. 그 누구도 서아를 말리지 못했다. 오히려 더 추라며 박수도 치고 함성도 질러주었다. 이지 코브라, 히어로, 폴피쉬, 백슈퍼맨, 타이타닉 동작을 연달아서 보여주었다. 짧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했지만 흥분한 서아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폴에서 내려오지 않은 채 학원에서 갈고닦은 실력을 보여주며 엔젤 스핀으로 마무리했다. 나오는 음악 또한 폴댄스를 추기에 딱이었다. 심지어 클럽 DJ가 서아의 장단을 맞춰주었다.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무대의 조명도 서아를 비추었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친구들은 서아가 연예인인 것마냥 호응해주었다. 인생에서 최고의 생일이었다.

 주말이 지나고 출근했을 때 서아는 동장실로 불려 갔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서아의 폴댄스를 영상으로 촬영했고 각종 커뮤니티와 유튜브에 올렸다. 어두워서 얼굴이 제대로 안 나왔을 거라 잡아떼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요즘 나오는 휴대폰의 카메라 성능은 뛰어났으며 하필이면 클럽의 모든 조명들이 서아를 향해 비추고 있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서아는 동장실을 빠져나왔다. 친한 몇몇의 직원들은 어차피 운동인 거고, 클럽에서 어떻게 놀든 자기들이 무슨 상관이냐며 신경 쓰지 말라 했지만 생각보다 영상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처음엔 동사무소 직원들에서 구청 직원들. 그리고 민원인들까지. 안 그래도 서아의 직업은 사람들의 평가 기준이 혹독하리만큼 높은 직업이었고, 무슨 행동을 하든 이해는커녕 비난받기 좋았다. 서류를 발급받으러 온 민원인들 중 서아를 알아본 사람들은 혀를 차거나 비아냥거리거나 조롱했다. 공무원이 그렇게 해도 돼요? 공무원이 클럽에 가도 돼요? 다들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지 볼일이 없으면서도 찾아와서 서아를 구경하고 갔다. 내가 동물원 원숭이야? 이상하게 보는 게 잘못된 거 아니야? 속으로만 생각할 뿐 내뱉지는 못했다.

 징계를 받지는 않았다. 갑작스러운 수시인사로 민원인을 안 보는 부서로 발령이 났을 뿐이었다. 서아는 묘한 쾌감을 받았다. 분명 엄마가 입이 닳도록 이야기 한 사주에는 구설수에 오를 내릴 것이라는 건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틀렸고 내가 맞았다. 운명 같은 건 없다.

 퇴근 후 동생과 둘이서 간만에 외식을 하기로 했다. 정시 퇴근한 서아가 동생의 회사 앞으로 갔는데 동생은 아직도 퇴근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버려서 동생이 자주 가는 빵집에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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