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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정 Aug 19. 2022

#5 윤영대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


 “대리님, 그거 들으셨어요? 영업팀 브파인더 고소당했대요.”

 “에, 정말요?"

 “모르셨어요? 대리님 동기가 고소했다던데요, 증거까지 싹 다 모아서.”

 “힘들어하긴 했는데 고소한단 이야긴 못 들었거든요.”

 “회식 때 끌어안고 은근슬쩍 터치하는 거 영상이랑 녹음 다 찍어서 경찰에 넘겼대요. 대단하지 않아요? 진짜 멋있어. 그리고 이때까지 당했는 직원들도 증언해준다 해서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이 없나 보더라고요. 대박이지 않아요?”

 “언제 한번 당할 줄 알았지.”

 “옛날처럼 쉬쉬하던 시대는 지난 지가 언젠데. 브파인더도 참.”

 “이런 변태 새끼들 물러나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모두가 윤영대에 대해 수군거리고 있었다. 윤영대는 회사가 자신이 아닌 여직원들의 편에 섰다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영대가 속해 있는 회사는 영업계의 3D 중 하나라고 불리는 제약회사인데, 그중에서도 기강이 세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고 자부했다. 요즘은 제약회사 영업팀에 여자들도 많이 채용되는 편이나, 영대가 입사했을 당시에는 여성 직원이 거의 없는 편이었다. 대열은 자신에게 벌어진 이 모든 일들이 부당하다고 느껴졌다. 별명인 ‘브파인더’도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격려차 직원들의 등을 쓰다듬은 것인데 손가락으로 브래지어가 있는 부근을 툭툭 쳤다고 생긴 별명이었다. 남자들이 많은 영업팀 특성상 여직원들 기운 내라고 격려해준 것이 뭐가 문제가 되는 것인지 몰랐다. 뭣 모르는 신입 직원들한테만 그랬어야 했는데, 어느덧 연차가 쌓여 잔뼈가 굵어진 대리급 사원들까지 건드린 게 실수였다. 하필이면 자기들끼리 똘똘 뭉칠 줄이야. 여자가 사회생활 시작한 거면 이 정도는 감수했어야지. 옛날이었으면 돈 번다는 꿈도 못 꿨을 텐데. 영대는 억울했다. 입 안에서 쓴 맛이 났다.

 그만하세요, 하고 그 발랑 까진 대리가 말했던 게 밥 먹을 때마다 생각이 났다. 회식으로 간 노래방에서 흥에 겨워 대리를 이끌고 블루스를 추고 들어와 어깨를 몇 번 쓰다듬었다고 두 눈 똑바로 뜨고 그만하세요라고 했다. 눈꼬리가 처진 아이였는데, 그 말을 할 때에는 처진 눈꼬리 부근에 시뻘겋게 달아올라있었다. 이렇게 돈 버는 거에 감사히 여겨야지, 나 때만 했어도 너희 집 밖으로 못 나왔어, 세상 편해진 줄 알아야지. 기가 막혀 훈수를 뒀다. MZ세대라는 것들이 판을 치는데 그래 봤자 어린애들 아닌가. 며칠 후 자기네들끼리 똘똘 뭉쳐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 이후로 이런 모멸을 겪고 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존경의 눈빛을 받던 영대였는데 하루아침에 푸대접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이까짓 일로 신고하다니. 20년 전이었으면 꿈도 못 꿨을 텐데 말이다. 세상이 망해 가려고 미쳐 날뛰는 중이구나 생각했다.

 회사에서는 퇴직을 요구했다. 스무 해 넘게 회사를 위해 일해준 사람이니 나름의 예의를 차려서 이야기했다. 더 이상 시끄러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깔끔하게 제 발로 나가기만 해 준다면 퇴직금 따위들을 잘 챙겨주겠다, 는 등의 말을 했지만 묘하게 표정들이 속 시원해 보였다. 까짓것 나가면 되지, 내가 영업만 20년 넘게 했는데 사업 하나 못 할까 봐서? 대영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한 번만 그냥 넘어가 달라고, 그 발랑 까진 애들이랑은 어떻게든 합의해서 없던 일로 해서 오겠다,라고 감사팀 직원들에게 사정했다. 조사실을 나오자마자 직원들의 일하는 소리가 분주하게 들려왔다.

 “다들 일이나 할 것이지, 쯧.”

 영대는 혀를 차면서 사무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갔다.

 영대는 사기업을 다니는 것 치고는 오래 버텼다. 영대의 친구들은 이미 5년 전부터 퇴직을 권고받아 아파트 경비, 치킨집, 자금의 여유가 있는 사람은 펜션 등 숙박업을 하며 또 다른 경제활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게 중 그나마 영대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치킨집이었는데 사실 그것도 매장 관리에 배달에 아르바이트생 관리까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영대의 자금 상황이 넉넉한 것은 아니었다. 한창 가상화폐 투자로 몇백만원, 몇천만원, 심지어 몇십억원을 벌었다는 이야기들이 인터넷을 떠돌 때 그에 혹해 영대도 신용대출에다가 제2금융 대출까지 받아가며 무리하게 비트코인에 투자했다. 비트코인으로 성공한 사람은 극소수였으며 영대는 당연히 높은 확률의 사람이었다. 투자했던 돈을 모조리 다 잃고 심지어 아내 몰래 대출을 받고 코인을 한 것이어서 이혼 소송 중에 있었다. 이런 상황에 회사를 나가는 것은 제 발로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브파인더 도대체 언제 그만둔대?”

 “그러니까, 눈 마주칠 때마다 너무 소름 돋아.”

 “난 지금 같은 공기 마신다는 거 생각만 해도 소름 돋아.”

 회사 내 카페에서 영대가 있는 줄 모르고 직원들은 욕들을 해댔다. 손에 들고 있는 뜨거운 커피를 머리 위에 부어버리고 싶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 앞에서 머리 숙이던 것들이 이젠 욕을 해대니 회사 한 번 잘 돌아간다 싶었다. 분노를 못 이겨 어금니를 꽉 깨무니 더 쓴 맛이 났다. 경력이 높은 지라 직접 영업을 뛰러 갈 일이 적었는데, 이젠 사무실에 있는 것이 너무 고역이라 출장을 핑계 삼아 자꾸만 밖으로 나갔다.

 불이 꺼진 방 안에 홀로 누워있다가 문득 싱크대에 쌓여있는 술병들과 배달해서 먹고 남은 음식들이 눈에 들어왔다. 날파리가 자꾸 꼬인다 했더니 저게 문제였던 모양이다. 늘 뒤치다꺼리해주던 아내가 없어지고 나니 영대가 신경 써야 하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다하다 이제 쓰레기까지 제 손으로 치우는 상황이 오니 몸 안에 있는 장기들이 다 뒤틀리는 기분이 들었다. 종량제 봉투에 음식물과 일반 쓰레기를 다 때려 넣고 터덜터덜 단지 내 분리수거함으로 향했다. 봉투의 밑 부분이 터졌는지 음식물 찌꺼기가 새고 있었다. 영대는 회사 근처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작은 평수가 있는 곳이어서 영대네 회사 직원들이 더러 살고 있었다. 누군가 뒤를 따라오는 것 같아 돌아보니 영대의 옆 부서 신입 직원이 멸시의 눈빛을 띈 채 바라보고 있었다. 밤 중이라 어두웠지만 그 눈빛만은 선명했다. 자신을 쓰레기 보듯 보는 눈빛.

 “왜 그렇게 봐?”

 “쓰레기 다 새요.”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지?”

 “아씨, 냄새나. 더러워.”

 영대의 눈을 바라보며 명백히 말했다. 나한테 하는 말인가, 이년이 돌았나. 한마디 하려고 했으나 말문이 막혀 버렸다.

 “더럽다고요.”


 영대는 다음날 사직서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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