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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정 Aug 17. 2022

#4 이지은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


 지은은 주말 아침에 카스테라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프렌치토스트와 커피가 6,500원. 평일에는 출근하는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주말 아침은 꽤나 여유로웠다. 주말 아침에 책 한 권을 들고 가서 프렌치토스트를 오래오래 먹으며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것을 구경하는 건 지은만의 즐거움이었다. 카스테라의 사장을 지은은 참 좋아했다. 어느 날 왼손에 짐을 한가득 들고 문을 열지 못 한 채 낑낑대고 있을 때 무표정한 얼굴로 나온 사장이 무심하게 열어준 문에 지은은 감동했다. 멀쩡한 오른팔 두고 문을 왜 못 열고 있냐고 물을 법도 했지만, 사장은 구태어 묻지 않았다. 말수는 많지 않지만 친절한 사람, 이라고 생각했다. 지은이 오른팔을 쓰지 못하게 된 건 6년 전 갑자기 발병한 척수염 때문이었다.

 평범한 집안에서 예술가를 꿈꾸는 것은 불효였다. 요즘처럼 다양한 콘텐츠가 없었던 시절의 예술은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아주 긴 터널과도 같았다.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는 천재는 단 1%의 영감이 없는 지은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단어였다. 최선을 다해 살았다. 포기해버린 미술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다른 분야에서는 성공을 해야만 했다. 미술 따위 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여야만 했다. 성공과 행복은 다르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지은은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해 수석으로 졸업했다. 국어국문학과를 나왔다. 지은은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말도 안 되게 운이 좋았다. 딱히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에 재능은 없었지만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과외 아르바이트가 지은을 또 다른 길로 안내해 주었다. 지은이 찍어 준 문제들이 모의고사에 나왔고 공부에 흥미는 없지만 머리가 좋았던 학생이 그것을 기억했다. 오지랖이 넓은 학부모 덕분에 과외가 끊이지 않았고, 누가 곁에 숨어서 예상문제라도 알려주는 것마냥 지은을 대학입시학원 족집게 강사로 만들어주었다.

 “선생님은 왜 입시학원 쪽으로 왔어요? 수석 졸업이면 교직 이수받을 수 있었지 않아요?”

 “아, 학원이 좀 더 바쁘잖아요.”

 “에엥, 요즘은 워라밸 추구하는 삶이지 않아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반응이었지만 지은은 진심이었다. 입시학원 특성상 아이들의 하교 시간에 맞춰 느지막이 출근을 할 수 있지만 지은은 늘 오전 10시에 출근하여 수업을 준비하곤 했다. 특별히 성실한 사람은 아닌데 다들 그렇게 보니 성실한 사람인 것마냥 행동했다. 다양한 교재들을 비교한 자료를 준비해서 공유하면 다들 고마워해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은은 ‘성실한 사람’에서 ‘뛰어난 사람’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지은의 반 아이들 중에는 입시에 실패한 사람이 없을 정도였고 학부모들 또한 학교 선생님보다 지은에게 더 의지했다.

 전날 과음을 했던 게 문제였는지 고등학교 때 이후로 10년 만에 코피를 흘렸다. 아침부터 피 봤네,라고 생각하며 출근 준비를 하는 도중 팔에 쥐가 났다. 팔에 쥐 나는 건 또 처음이네,라고 생각하며 엄마를 불렀다.

 “엄마, 나 팔에 쥐 났어. 좀 주물러줘.”

 “그러게, 어제   적당히 먹지 그랬어.”

 엄마의 잔소리를 끝으로 지은은 뒤로 넘어갔다.

 꼬박 이틀을 잠들었다고 한다. 이틀을 잠들었다기엔 대학병원 응급실에서의 상황이 생생하게 기억 속에 있었다. 지은은 내가 유체이탈을 경험한 건가,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죽어가는 소리를 처음 들었다. 응급실에서 옆 베드에 누워있던 할아버지의 배 안에 복수가 계속 들어차 울부짖으며 죽어가던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끝도 없이 목을 긁어내는 소리를 내다가 숨이 넘어가는 그 시점이 되는 순간 조용해졌다. 신음 소리 한 번 못 내고 죽는다는 건 다 거짓말이다. 사람이 죽을 때에는 좀비 소리가 난다. 응급실에서 꼬박 이틀을 보내고 영상의학과에서 일하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의사 친구 두니 이런 게 참 좋구나, 속 편한 생각을 잠깐 했다.

 이 세상에 좀비가 존재한다면 꼼짝없이 잡아먹힐 것이다. 아, 난 아픈 사람이니까 그냥 지나쳐 가려나. 가만히 누워만 있으니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서는 미국의 소아들에게서 간혹 발병되는 자가 면역성 질환인 척수염이라 진단했다. 내 몸에 있는 염증이 척수에 달라붙어 신경을 갉아먹었다고 한다. 갉아먹힌 신경들은 평생, 죽을 때까지 돌아오지 않는다. 척수라는 관 안에 죽은 신경을 묻어둔 채 살아야 한다. 어리석기도 해라, 하필 먹어도 그걸 먹냐.

 지은이 있는 병원은 동향이라 아침에 햇살이 깊이 들었다. 여러 가지 치료와 재활 운동으로 피곤해도 늘 잠이 일찍 깼다. 밤새 이 염증은 신경 또 어디를 갉아먹었을까. 무엇이 이런 지독한 염증을 만들어냈을까. 지은은 올라가지 않는 오른팔을 억지로 들어 스트레칭을 했다. 담당교수는 지은이 걸어 다니는 것을 신기해했다. 보통의 사람은 척수염이 걸리면 걷질 못 한다고 하는데 하늘이 도운 것이라 했다. 역시나 지은은 스스로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갑작스러운 수업 취소와 선생님의 변경으로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장애인이 되어서 학생들 앞에 설 수가 없어요.”라는 말을 도저히 할 수가 없어 휴대전화의 전원을 꺼버렸다.

 밤 9시만 되면 모든 병실의 불이 꺼진다. 신경과의 특성상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많아 밤이 일찍 오는 편이었다. 모든 불이 꺼지면 지은이 쓰고 있는 1인 병실 앞에서 1시간에 한 번씩 작은 불빛이 반짝인다. 주치의와 당직 의사가 돌아가며 지은을 감시했다. 혀를 깨물고 죽진 않을까, 링거 선으로 목을 메달아 죽진 않을까. 그들의 기대처럼 정말 죽어볼까 생각이 들다가도 자신의 손발을 닦아주는 엄마를 보면서 그 생각을 접어두곤 했다. 자신 때문에 아픈 거라며,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하고 싶은 거 다 해줄걸 그랬다며, 잠들지 않은 지은의 손을 잡고 매일 후회를 내뱉는 엄마였다. 5주 후에 지은은 재활병원으로 옮겼다. 지은은 6인실을 이용했는데 대체로 나이대가 젊어서 다른 병동보다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도 들리고 화기애애한 편이었다. 11층 높이의 아파트에서 떨어져 운이 좋게 살아낸 고등학생과 같은 병실을 썼는데, 지은은 고등학생인 선정을 예뻐했다. 자살시도를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구김이 없고 해사한 아이였다. 짝사랑하는 작업치료사 선생님 이야기를 하면서 얼굴을 붉히는 저 사랑스러운 아이를 도대체 왜 따돌렸는지 지은으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죽지 못해 사는 건 아니었다. 물론 죽음을 고민했던 적은 있었지만 의사에 대한 반항심 때문이었지, 정말 죽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생각보다 삶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

 지금의 남편인 윤기를 만난 것도 완전히 운이었다. 남편은 물리치료사였다.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책을 읽는 것뿐이었는데 아프기 전 틈틈이 읽으려고 집에 사다 놓은 책들도 금방 읽어버렸고, 심지어 병원 안에 있는 의학잡지들마저도 모조리 다 읽어버렸다. 매번 책을 가지고 전기 신경치료를 받으러 가던 지은이 빈 손으로 가자 그때 당시 물리치료사였던 남편이 물었다.

 “오늘은 책 안 가지고 오셨네요?”

 “아, 네. 이제 더 이상 읽을 책이 없네요.”

 “어제는 의학잡지 보시더니.”

 “그거도 다 읽어버렸어요.”

 “그럼, 제가 책 좀 빌려드릴까요?”

 “좋아요.”

 남편은 겁이 없는 사람이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을 많이 봐서인지 지은에 대한 거부감도 없었고 오히려 호감을 병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눈치챌 정도로 솔직하게 표현해 왔다.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은은 여전히 작은 병실 안에 갇힌 채 지냈을 것이다. 척수염에 걸린 이후로 사회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지은이었는데 남편이 먼저 외출증을 끊어와 대중교통을 함께 타 주면서 바깥으로 끌고 나갔다. 남편은 ‘뭐 어때.’라는 말을 자주 했었는데 그게 그렇게 용기를 주는 말이 되곤 했다. 이를테면 함께 커피숍을 가면 음료를 혼자 들고 없어서 진동벨이 울려 음료가 준비되기 전까지 남편이 자리를 못 비우게끔 했는데 그럴 때마다 진동벨이 좀 길게 울리면 뭐 어때, 늦게 가지러 간다고 아무도 뭐라 안 해, 라는 말로 지은을 진정시켰다. 남편의 말이 맞았다. 지은이 걱정하는 모든 것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지은은 6개월의 재활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장애인 등록증을 발급받는 것이었다.

 “발급받아서 이용해먹자, 뭐 어때. 어차피 아무도 신경 안 써.”

 태연한 그의 말이 지은은 퍽 웃겼지만 이번에도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지은은 운 좋게 다시 또 사회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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