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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 Aug 15. 2022

#3 조하영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


 유난히 잘 우는 아이였다. 친구에게 장난감을 빼앗겼을 때에도, 길을 가다 넘어졌을 때에도, 시험 성적이 떨어졌을 때에도, 심지어 아침 통학 버스를 놓쳤을 때에도 늘 큰 눈망울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하영의 아빠는 하영이 초등학교를 들어갈 무렵에 설암으로 죽었다. 아빠가 아프기 시작한 무렵부터 하영은 눈물이 많아졌다. 1년이라는 투병생활 동안 하영은 울고 울고 계속 울었다. 보통의 다른 집과는 달리 전업주부였던 아빠였기에 하영에겐 아빠가 엄마와도 같았다. 할머니들과 이모들을 붙잡고 울었다. 누군가 하영을 안고 토닥거려주면 그것이 신호탄이 되어 또 울었다. 그렇게 울다가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나서 또 울었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으면서 계속해서 울었다.

 “그렇게 울다가 몸에 구멍이라도 나겠어.”

 할머니의 말처럼 하영의 몸 어딘가가 아닌 마음 어딘가에 큰 구멍 하나가 나고 말았다. 아빠가 죽고 나서 생긴 작은 구멍이 누군가의 토닥임으로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면서 커졌고 혀를 차며 불쌍해서 어떡하지라는 말 한마디로 메꿀 수 없을 만큼의 싱크홀처럼 커다란 구멍이 만들어졌다. 구멍 안으로 하영의 체내 수분이 모두 빨려 들어가는 것마냥 구멍이 조금씩 벌어질수록 하영의 울음 또한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어른들은 하영이 괜찮아지고 있다고, 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다.

 하영의 마음속 구멍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것을 연애로 채우고자 했다. 연애를 시작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무렵부터 하영의 곁에는 늘 남자친구라는 존재가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형편없었고, 특히나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는 더더욱 형편없었기 때문에 그 연애가 하영의 구멍을 채워주기는커녕 또 다른 구멍들을 만들어내는 지경이었다. 2살, 5살, 7살, 11살. 하영은 연애를 통해 아빠의 빈자리를 채우고 싶어하는 무의식의 욕구가 있었다. 고르는 족족 원래의 나이보다 많아 보이는 얼굴을 가졌거나, 아주 꽉 막힌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이거나, 아니면 아예 물리적으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거나.

 “남자들이 있는 모임에 꼭 가야 해?”

 “너 어릴 때 아빠가 암으로 죽었다며? 그거 유전 아니야?”

 “너 때문에 내가 나이 들어 보이잖아.”

 하영이 만나는 남자들 혹은 하영에게 먼저 접근해 오는 족족 다 별로였을까. 짧든 길든 한 차례의 연애가 끝이 나면 메말랐던 울음이 아빠를 잃었을 때처럼 폭포수처럼 터져 나왔다. 꼭 울기 위해 연애를 시작한 사람처럼.

 이번엔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의 짐을 덜어주고자 용돈은 직접 벌어 쓰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디자인 문구, 리빙, 음반, 인테리어 소품을 주로 판매하는 대형 쇼핑몰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옆 코너에서 일하는 4살 많은 사람이었다. 근무시간이 겹쳐 다같이 밥을 어울려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끝나고 맥주 한 잔 같이 하고 싶다는 연락으로 가까워졌다. 언제나 늘 그랬듯 아침에 일어나면 안부 문자를 주고받고, 끼니 거르지 말고 잘 챙겨 먹으라는 이야기를 하며 잠들기 직전까지 전화통화를 하며 자연스럽게 그 남자와의 연애가 시작되었다.

 그와 사귄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차로 데리러 갈까?”

 “오빠, 차 있어요?”

 “좀 오래된 차. 내 차는 아니고, 아빠 차인데 안 타신다고 하셔서 가끔 내가 타.”

 “편하게 갈 수 있는 건데 그게 중요한가요.”

 차를 타고 편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에 하영은 마냥 신이 났다. 차로 데리러 온다는 그의 말이 하영에겐 배려처럼 느껴졌다. 차로 데리러 갈게가 아닌 의사를 묻는 듯한 질문을 해줘서. 역시 이 남자는 달라, 배려심이 넘쳐, 하영은 그렇게 생각하며 들뜬 마음으로 그와의 데이트를 준비했다.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하영은 쏜살같이 내려가 차에 얼른 올라탔다.

 “차가 오래됐지? 나도 차던 타를 받아서.”

 “아, 차 제대로 안 보고 그냥 탔어요. 상관없어요.”

 “하영이는 소박하구나.”

 남자친구의 그 말에 하영은 이상하게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도 모르는 그의 시험에 통과한 것만 같았다.

 “넌 다리에 비해 허리가 긴 것 같아.”

 어느 날 그가 하영에게 말했다. 그날 하영은 티셔츠에 와이드 슬랙스를 입고 있었다. 그의 말에 서운함보다 수치심이 먼저 들었다. 얼굴이 너무 뜨거워진 나머지 그의 말에 아무 말도 못 하고 듣고만 있었다.

 “조언해 주는 거야. 너의 단점을 커버해서 입으면 더 예쁘니까.”

 하영은 단 한 번도 자신의 다리가 짧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사실 자신의 체형이 어떤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겨를조차 없었다. 화를 낼 타이밍을 놓쳐버린 바람에 그날 일은 그냥 묻어두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하영은 새 옷을 살 때마다 그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친구들이나 엄마에게 물었다. 내 다리가 짧은 편이야? 허리가 비정상적으로 길어? 엄마는 누가 그런 소릴 하냐며 화를 냈고 친구들은 웃으면서 그렇다 한들 다리를 늘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신경 쓰지 말라며 이야기했다. 하영은 그를 너무 좋아했다. 언제나 그의 질문 한 마디, 말 한마디에 시험대에 오르는 기분을 느끼면서도 그가 너무 좋아 그가 원하는 대답, 그가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고 싶었다. 하영은 그날 이후 그를 만날 때면 원피스를 주로 입었다.

 “오늘 입은 옷은 예쁘네. 지난주에 입은 건 별로였는데 말이야.”

 “못 보던 신발이네. 신발 예쁜 거 많은데 또 산거야?”

 “그저께 한 머리가 훨씬 나았어. 넌 이마가 넓은 편이라 앞머리를 그렇게 옆으로 넘기면 안 된대도.”

 그는 늘 교묘하게 평가했다. 언제나 칭찬을 먼저 하고 뒤늦게 하영을 까내리는 말들을 하며 칭찬을 하고 있는 모양새인 그에게 화를 내지 못하게 했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의 취향에 맞게 옷을 입고 헤어스타일을 바꾸었다.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이 영 어색했다. 그래도 그에게 따져 물을 수는 없었다. 결국 하영이 너무 좋아 선택한 변화였기 때문이다.

 드라이브를 하면서 틀어놓은 라디오에서는 하영이 학창 시절 주로 듣던 아이돌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나 고등학교 때 이 노래 많이 듣고 다녔어요. 친구들이 다들 이 가수 좋아해서 누구 마누라 이렇게 부르면서도 놀았는데.”

 “정말? 얘네들을? 나는 아이돌 쫓아다니는 애들 이해를 못 하겠어. 자기들이랑 사귀어줄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밤낮으로 쫓아다니는지.”

 그렇게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에 하찮아하는 듯한 태도가 담겨 있어 이번에는 하영도 참지 않고 말했다.

 “사귀어달라는 게 아니고 무대에서 열심히 하는 그 사람들이 좋은 거잖아요.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을 가진 사람 앞에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건 예의에 어긋난 거 같아요.”

 "미안해. 미안해. 삐졌어? 화 풀어, 내가 잘못했어.”

 그로부터 사과를 받았지만 이미 상해버린 마음은 잘 나아지지 않았다. 그 노래를 좋아했던 추억들이 모조리 묵살당한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영은 그를 너무 좋아했다. 사실 그는 무심한 쪽보다는 다정한 쪽이었다. 하영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피드백했다. 물론 그의 취향에 딱 들어맞아야 좋은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지만 말이다. 그의 다정한 손길과 따뜻한 눈빛은 하영에게서 아빠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아빠가 있었다면 날 이렇게 쓰다듬어 줬겠지, 늘 예쁘다 말해줬겠지. 남자친구가 어떠한 조건도 없이 예쁘다고 해 줄 때는 주로 스킨십을 할 때였다. 무리한 스킨십을 요구할 때도 있었지만 응했을 때에는 남자친구는 한없이 다정해졌다. 하영의 생리 기간이었을 때 언제나 그랬듯 남자친구는 과한 스킨십을 요구했었고 하영은 거절했다. 그러자 마트에서 장난감을 사달라고 드러누운 7살짜리 아이처럼 떼쓰며 발악했다가 그것 또한 먹히지 않자 길가에 하영을 버려둔 채 헤어졌다. 내가 먼저 연락할 때까지 넌 연락하지 마. 길가에 하영을 버려둔 지 3일 만에 온 연락이었다.

 신호탄이었다. 머리에서 탕하고 총성이 울렸다. 언제까지나 그가 내는 시험에서 평가를 받을 수만은 없었다. 사랑의 완성이 스킨십인 것처럼 구는 그를 겸허히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우리 헤어져요, 문자 한 통을 남기고 하영은 휴대폰 전원을 껐다. 오늘만큼은 시원하게 울고 싶었는데, 이상하리만큼 눈물이 나지 않았다. 하영은 울려고 하는 노력을 포기하고 지갑을 들고 카스테라로 향했다. 드디어 시험이 끝났으니 딸기 케이크에 축하 샴페인을 터뜨려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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