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쿵하고 울리는 순간이 있다. 심장박동 소리가 빨라지고 볼이 뜨거워진다. 눈빛이 흔들리고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주변의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공기마저 희미해진 것 같다. 그저 눈이 마주쳤을 뿐인데 잠시 나를 쳐다봤을 뿐인데 그 짧은 틈에 세상은 변했고 사소한 움직임 하나하나까지 의미를 띄기 시작한다. 그다지 아름다운 날이 아니었다. 하늘은 잿빛이었고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습한 기운에 끈적한 땀이 흐르고 어느 한구석도 말끔하지 않았다. 나는 지루했고 지겨웠고 그래서 울적했다. 아무것도 변할 것 같지 않고 모든 것이 지금 이대로 영원할 것 같아서 그냥 죽고만 싶었다. 그때 네가 내 앞에 나타났다. 보폭이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다가와 나를 보고 웃었다. 어떤 의미도 없었을 그 행동 때문에 내 삶에 의미가 생겼다. 단지 앞에 서 있을 뿐인데 단 한번 웃었을 뿐인데, 마치 조금 전까지 죽어 있다가 갑자기 되살아나기라도 한 것처럼 심장이 뛰었다. 정말 찰나였다. 너무 짧아서 존재하지 않은 것과 다름없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이 순간 때문에 나는 조금 전과 다른 내가 되어 새로운 세상에 첫 발을 들인 모험가가 되었다. 내 시선은 당신의 모든 순간을 탐색한다. 당신의 모든 것이 새로워서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지겨웠던 시간이 설렘으로 가득한 축제가 되었다. 네가 나를 봐준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꽃을 피울 수 있다. 그 꽃이 시들기 전에 나에게 이름을 지어준다면 그것이 바로 사랑이겠지. 너의 손을 잡고 걸을 수 있다면 지금 당장 달에 닿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조금 전까지 나는 물기 없는 땅 위에 말라비틀어진 지렁이였는데 이제는 당신과 우주를 꿈꾸는 별이 되었다. 그러니 반짝이는 순간에 나를 봐주었으면, 다시 한번 나를 보고 웃어주었으면 좋겠다. 당신이 흔들고 간 마음이 멈출 줄을 몰라서 당신을 향해 뻗은 손이 가까웠다 멀어지길 반복한다. 그러니 이 밤이 끝나기 전에 내 손을 잡아 비가 내리기 전에 우리 같이 달로 떠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