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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공녀 Oct 18. 2022

시골살이

시골살이도 해본사람이 안다고...

 

시골이라고 해서 소란함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한없이 조용하고 정적인 것 같지만 여기서도 매일 사건은 일어나고 있다. 사건이라고 하면 좀 거창하지만, 그것보다 규모가 좀 작은 어느 소소한 일들, 하지만 누구에게는 크나큰 사건이거나 충격일 수도 있는 일들. 그런 것들은 정말 도시 못지않게 일어나고 있다. 다만 멀리서 봤을 땐 조용하고 알 수 없는 것들이다. 가까이 들여다보거나 알고 봐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가끔 카페에 디자인 작업을 하러 오는 언니가 있다. 여러 가지 디자인을 프리랜서로 일을 하는데 덕분에 나도 컴퓨터그래픽스 운용기능사에 관심을 두게끔 영향을 준 언니였다. 우리는 한가한 시간대에 각자 작업을 하고 있었고 카페 안은 조용했다. 이 시골 카페는 국도를 바로 끼고 있어서 항상 차들이 오가는 모습이 창가로 비추곤 했었다. 그날따라 요란하게 구급차가 지나갔다. 언니의 표정이 굳어졌다. 


구급차는 도시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라 나는 그러려니 했었다. 하지만 언니에게는 다른 의미였다. 시골에서의 구급차는 큰일이 있다는 신호다. 언니가 말하길 누군가 돌아가시거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셨기 때문이라고. 그것을 듣고 내가 얼마나 무신경한지 깨달았다. 때로는 우리가 흘려 넘기는 그것들도 신호가 될 수 있다.


하루는 우연히 TV에서 유퀴즈를 보게 되었다. 그날은 로컬 리포터 특집으로 특히나 내가 관심이 있던 로컬이 주제라서 채널을 옮기지 않고 끝까지 보게 되었다. 싱싱고향별곡의 한기웅 리포터님 편이 가장 인상에 남았는데 그분의 말씀으로 인해 나는 이 시골의 풍경을 다시 보게 된 것 같다. 논에서 피가 자라면 그 집 어르신이 아프시다는 것이라며 안타까워하셨는데 시골에서 자란 나로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피라는 것은 흔히 잡초를 뜻하는 것으로 논에서 벼와 함께 자라기 때문에 아침으로 부지런히 뽑아주어야 한다. 그런데 여태 피가 많은 논을 보며 게으른가 보다 하고 지나갔던 나의 어리석음에 진짜 머리를 한 대 치고 싶었다. 


그 이후로 나는 카페 옆 깨를 심어 놓은 밭에 눈길이 자주 가게 되었다. 잡초가 무성히 자라서 깨가 보이지 않을 정도인데 농기계까지 밭에 버려져 있었다. 이 밭의 어르신은 괜찮을까…. 항상 눈에 보일 때마다 마음이 쓰이곤 한다. 새로운 시선으로 보는 계기가 되었다.


시골의 여유로움만 느끼다가 혹은 긴박함을 느낄 때는 정말 당황스럽다. 이대로 그냥 평온하면 좋을 텐데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법이다. 

어느 날 친구에게 받은 잡채를 저녁으로 너무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급하게 먹었는지 체기가 올라와서 소화제를 사기 위해 편의점으로 향했다.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편의점은 불이 켜놓은 채로 문이 닫혀 있었다. 입구에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4시에 연다고 적혀있었다. 이럴 수가. 현재 시각은 새벽 2시 30분. 나는 명치가 쥐어짜이는 느낌에 서둘러 조금 더 멀리 떨어져 있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곳은 밤 11시만 지나면 무인 편의점이 되는 곳으로 살 수 있는 거라고는 가스 활명수뿐이었다. 네 개를 동시에 사서 두 개를 속에 들이부었지만 편해지지 않았다. 집으로 가던 길을 돌려 20분을 더 가서 읍내에 있는 유일한 응급실을 찾았다. 


주사와 약을 처방받았지만 나는 그날 밤 잠을 자지 못했다. 명치가 조이는 느낌은 여전했고 잠을 자려고 누우면 더욱 불편해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9시에 맞춰 다시 읍내의 내과를 찾았다. 결과는 위경련.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았다. 하루 내내 속을 비우니 겨우 안정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밤새 고생을 했다. 병원은 집에서 너무 멀었고 가까운 편의점마저 문을 닫아버렸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밤은 처음이었다. 시골에서는 꼭 상비약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밤새 아픈 몸으로 운전하느라 병원이 가까운 도시가 몸서리치게 그리운 날이었다. 


도시의 이점을 아무 생각 없이 누리다가 이곳으로 오면서 많은 걸 다시 보고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배달의 민족을 마땅히 부를 수가 없으므로 냉장고를 채우는 건 기본이 되었고, 하룻밤 고생으로 상비약을 갖추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친구들과 기분 좋게 한잔하고 집으로 대리를 불러 간다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도시의 삶과 멀어지게 되고 시골의 삶이 가까워진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평소에 누리던 편리함이 모두 사라지고 한없이 고요함만 내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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