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공녀 Oct 26. 2022

시고르라이프

시골집으로 이사 왔습니다.


도시에서는 바퀴벌레라면 시골에서는 거미가 있다. 끝도 없는 거미줄은 아침에 걷어 놓으면 오후에 다시 완벽하게 만들어져 있다. 쓸데없는 부지런함에 혀를 내두르며 다시 빗자루를 든다. 스파이더맨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아마 시골의 거미줄을 본다면 조금 그 마음이 가실까. 도대체 스파이더맨은 쓰고 난 거미줄은 청소는 할까? 카페 건물 벽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흰 거미줄을 떼다 보면 이런 생각이 문득 들곤 했다.


외관 청소만이 끝이라면 시골살이를 우습게 보는 것이다. 내부 또한 거미들과 싸움이다. 모서리마다 구석구석 쳐져 있는 흰 거미줄을 보며 첨엔 두려움, 두 번째는 징그러움, 세 번째는 익숙함이다. 다시 말하자면 첫 번째는 비명, 두 번째는 빗자루질, 세 번째는 손으로 걷어내는 대담함이 생겨버린다. 그 외에도 지네로 착각한 다리 많은 손님과 집게발 달린 손님이 계셨지만,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후로는 보지 못했다. 


그리고 새로운 집주인에 대한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손님이 있다. 창가로 애옹~ 하며 날 부르는 소리, 밥 달라는 신호다. 집 주변을 산책하는 고양이와 눈이 마주친 이후로 나는 매일 그들의 밥을 챙겨주고 있었다. 그 이후 밥그릇이 비면 어김없이 날 부른다. 애옹~ 아이고, 친구 말대로 조그마한 고양이 밥그릇이 양동이가 되는 순간이다. 너무 적게 두면 금세 밥그릇이 비어 제대로 먹고 다니는지 걱정이 된다. 나는 집사가 체질인가 보다.


항상 1순위로 밥을 먹으러 오는 대장 손님이 :D


밖의 손님들을 챙겨주다 보면 안에서도 야옹~ 소리가 난다. 집사의 하루는 바쁘다. 최근 대구 집에서 아들과 함께 이사한 집주인들이 날 불렀다. 밖의 손님만 챙긴다고 나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면 괜히 자는 아들을 툭툭 건드려 집주인 잘 모시라고 한마디 해주고 출근 준비를 하곤 했다.


집주인 1, 2 

아들이 오면서 나의 이도 오촌의 생활은 막을 내리고 시고르라이프로 변모했다.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은 학교에 대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자퇴를 한 후 검정고시를 치기로 했다. 그로 인해 여러 가지 생활의 변화가 생겼지만,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다른 이야기로 풀어낼 생각이다. 아무튼, 이제 대구에 나갈 일이 거의 없는 완벽한 시골 생활이 시작되었다. 


시골의 밤은 매우 길고 일찍 시작된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밤의 길이가 훨씬 길어진 느낌이 든다. 하늘의 별도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차가운 날씨. 심야 보일러로 항상 따뜻한 방. 카페를 정리하고 몇 초도 안 걸리는 집으로 향하면 반겨주는 손님들. 항상 포근하고 좋은 냄새가 나는 집주인을 끌어안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청소를 하고 저녁을 준비한다. 밥을 먹고 나도 9시가 안 되는 시각이다. 작가인 친구는 이 밤의 길이가 오히려 유익하다고 한다. 누구에게는 지루할 수도 있는 그런 밤이지만 바깥 온도와 안의 온도가 극명할수록 따스함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다가 각자의 취미에 돌입한다. 나의 경우 일기를 쓰거나 글을 쓰는 것이고 딸은 친구들과 통화를, 아들은 그림을 그리거나 게임을 한다. 평화로운 밤이다. 고독한 도시의 밤도 나쁘지 않지만 조금은 지루해도 시골 밤이 더 마음에 든다.


도시의 저녁은 언제 시간이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흘러가기 마련이었다. 취침시간도 새벽 3시를 넘어갈 때가 많아 아침이 괴로웠는데 이제는 12시도 되기 전에 머리가 베개로 떨어진다. 

그중에 제일 상쾌할 때는 아침이다. 남향으로 난 창문들 틈으로 빛이 스며들면 무조건 눈이 뜨게 되었다. 알람도 필요 없어졌다. 좀 더 자고 싶어서 침대에서 꾸물댔던 예전과는 달리 일어나자마자 스트레칭을 하고 이를 닦는다. 바깥에서 손님이 부르면 밥을 들고나가서 그릇에 부어주고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신다. 문을 열자마자 논밭이 보이는 뷰도 너무나 마음에 든다. 가로수에 은행들도 이제 노랗게 물들고 있다. 완연한 가을이다. 계절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도 시골의 장점이 아닐까. 


이사 떡을 돌리고 나니 나도 이제 이곳 주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집은 이제 고령이다. 어디를 나갈 때도 우선으로 고령 집으로 동선을 잡게 되었다. 두 집을 오갈 때는 편하게 가까운 곳으로 이동했지만 이제 그게 불가능해졌다. 불편한 경로와 멀고 먼 시골길을 달리면 아까운 기름값을 도로에 뿌리고 다니는 느낌이 나지만 어쩌랴. 내가 선택한 것을. 

시골의 삶이 시작되었다.

이전 06화 시골살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