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ügge, belgien
브뤼헤, 벨기에 플란데런 지방의 작은 물의 도시.
로젠호덴카이(Rozenhoedkaai) 전망대에 서면,
운하 위로 드리운 고딕 첨탑과
붉은 벽돌 지붕이 물에 반사되어 꿈결처럼 흔들린다.
여행자의 발끝이 이른 아침 젖은 돌길을 조심스레 밟는 순간,
향기는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한다.
첫 향은 물비린내가 아닌, 습기를 머금은 운하의 차가운 숨결.
본리퍼 공원(Minnewaterpark) 쪽에서 불어오는 이른 안개엔
잔디와 이끼의 청량한 풀내음이 섞여 있고,
수백 년 된 나무 다리에서는 은근한 송진 냄새가 올라온다.
아침의 브뤼헤는 어떤 장식도 없는,
맑고 서늘한 향으로 깨어난다.
브루크 광장(Burgplein)으로 향하는 골목은
중세의 숨결이 벽돌과 돌담 사이에 아직도 갇혀 있는 듯하다.
창문에 걸린 제라늄과 금어초 화분이
햇살을 머금고 은근한 꽃내음을 퍼뜨린다.
성혈 예배당(Basiliek van het Heilig Bloed) 안으로 들어서면
낡은 나무 벤치와 촛불에서 피어나는 왁스 향,
석조 기둥의 서늘한 냄새가 겹겹이 쌓여
경건하면서도 차분한 공기를 만든다.
정오가 가까워지면 마르크트 광장(Markt)은
마차와 자전거 바퀴 소리로 북적이지만,
공기 속엔 오래 숙성된 트라피스트 치즈의 깊은 향과
플람스 스튜에서 풍기는 묵직한 육향이 어우러진다.
카카오의 달콤함 대신,
여기서는 홉과 보리의 쌉싸름한 냄새가 미묘하게 퍼진다.
작은 주석공방과 레이스 상점에서는
섬세한 실과 금속에서 나는 미세한 금속성 향이 바람에 섞여든다.
늦은 오후, 데 할베 만(De Halve Maan) 양조장 인근 거리를 지나면
갓 볶은 몰트의 구수함과 캐러멜라이즈드 홉 향이 부드럽게 퍼지고,
인근의 운하에서는 습한 물내음이 여전히 차가운 결을 남긴다.
그루닝 미술관(Groeningemuseum) 앞 벤치에 앉아 있으면
낡은 회화와 오래된 린넨 천에서 풍기는
가볍고 마른 먼지 냄새가 햇살 속에 가라앉는다.
해질 무렵, 베긴회(Prinselijk Begijnhof) 정원의 담장 너머로
오렌지빛 햇살이 스며들며
라일락과 백장미가 섞인 은은한 플로럴 노트가 퍼진다.
작은 선술집 벽난로에서 나오는 장작불 향과
앰버 같은 따스한 공기가 어깨를 덮고,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와 함께
브뤼헤의 저녁은 물결처럼 부드럽게 내려앉는다.
브뤼헤의 향기는 요란하지 않다.
화려한 장식보다 오래된 시간의 온기로 기억된다.
젊은 날의 낭만이 고요한 물소리 위로 내려앉고,
마을의 향기는 그 순간마저 유연하게 흐르게 만든다.
돌아서는 길,
로젠호덴카이의 수면 위로 반짝이는 불빛이 속삭인다.
“모든 동화는 끝나지만, 이 향기는 끝나지 않을 거야.”
그래서 브뤼헤는 풍경보다 향기로,
순간보다 여운으로,
기억 속에 잔잔히 남는다.
장소정보(구글맵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