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2_베네치아

Venezia, Italy

by 푼크트

베네치아, 물 위에 뜬 도시.


리알토 다리(Ponte di Rialto)를 건너며 돌바닥을 내딛는 순간,
수로에서 불어온 차가운 물내음과 오래된 목재의 지난 시간들이 코끝을 스친다.
첫 향은 새벽 수로의 무거운 차가움.


바다에서 밀려든 소금기 어린 공기와,
배를 묶어둔 밧줄과 젖은 노에서 풍기는 나무 향이

오랜 소설 속 상상의 신비로운 유럽을 눈앞에 펼쳐낸다.

산 폴로 시장(Mercato di San Polo) 골목에서는
장인들의 손끝에서 갓 다듬어진 허브와 향신료가 공기 속에 흩어진다.

건조된 사프란, 아니스, 후추의 알싸한 향,
갓 잘린 레몬 껍질과 말린 무화과의 달콤함이 한데 섞여
시장 전체가 향으로 노래하는 듯하다.
그 사이사이, 생선 가판대에서 번지는 비릿한 바다 내음은
베네치아가 여전히 물과 함께 살아가는 도시임을 일깨워준다.


대운하(Grand Canal)를 따라 흐르는 향은 무겁지만 부드럽다.
짙은 물 내음 위로 살짝 떠도는 베르가못 대신 비터 오렌지와 만다린의 상큼함이
한 줄기 바람처럼 신선히 스며들고,
운하 옆 작은 오스테리아에서는 조개껍질을 불에 그을린 향과
파슬리를 다진 소스의 초록빛 냄새가 번져온다.


산 마르코 광장(Piazza San Marco)에 들어서면
향은 또 다른 결을 띤다.
비둘기들이 날아오르며 흩뿌리는 연무 속엔
묵직한 돌바닥의 습기가 스며 있고,
대성당의 황금 모자이크 아래에선
향로에서 은근히 피어나는 수지와 백단의 신성한 향이
광장의 에스프레소향과 차분히 조향되어
화려함보다는 몰락의 경건함으로 기억된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
리바 델리 스키아보니(Riva degli Schiavoni) 산책로에 서면
바닷바람이 머리칼 사이로 흐르며 다른 향을 불러온다.
옛날 향신료 창고에서 흘러나온 듯한 오리엔탈 시나몬, 카다몸, 정향의 잔향이
곱게 녹슨 철제 문 사이에서 피어오르고,
바람에 실려온 소금 냄새와 뒤섞인다.

작은 향수 가게 쇼윈도 안에서는
아이리스와 스웨이드, 앰버가 마치 스쳐지나는 여인네 같으며
도시의 저녁을 은은하게 물들인다.


밤이 깊어지면, 곤돌라가 유유히 흐르는 물결 위에
향은 더 이상 향수의 층위가 아니라 삶의 냄새로 속살을 들어낸다.
조정사의 나무 노에서 나는 미묘한 송진과 땀내가 비릿하게 뒤섞임,
어둠 속에서 켜진 등불 주위로 몰려드는 벌레를 쫓기 위해 피워놓은
은근한 허브 연기와 교차한다.

그 속에 베네치아의 밤은 차분히 가라앉고,
여행자의 마음에도 고요한 평온이 스며든다.

저녁의 베네치아의 향기는 시끌벅적한 소리보다 어두운 고요함에 가깝다.
어느 날 상상했던 화려한 축제의 이미지는
물결 속에 은근히 녹아들어 자취를 감추고,
남는 것은 골목마다 스며든 지난 그들의 일상 향기뿐이다.


돌아서는 순간, 물결은 조용히 속삭인다.
“너는 떠나도 이 곳의 시간은 향기로 여행자의 기억 속에 오래 머무를 것이다.”
그래서 베네치아는 풍경이 아니라 지난 시간 속으로,
향기가 아니라 역사 속으로,
언제까지나 마음속 깊은 곳에 남는다.


장소정보(구글맵 링크)

https://maps.app.goo.gl/rcsLnxHSAAgor9ET8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