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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_팍클롱 탈랏

Pak Khlong Talat, Bangkok, Thailand

by 푼크트

팍클롱 탈랏, 방콕의 꽃과 생명이 뒤섞인 시장


여행자가 아직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새벽녘,
짜오프라야 강(Chao Phraya River)에서 불어오는 습한 바람을 맞으며
젖은 골목 위로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시장은 이미 향기로 폭발하듯 깨어난다.


첫 향은 물을 머금은 꽃잎에서 번져 나오는 신선함이다.
막 꺾은 재스민 송이에서 퍼지는 은근한 숨결,
금빛으로 묶인 금잔화(마리골드) 다발에서 피어나는 흙내음.
그 옆에서는 진홍빛 난초가 짙은 열대의 향을 풀어내고,
한쪽 수레에는 갓 잘린 연꽃들이 차갑게 빛을 머금은 채 놓여 있다.
그라스의 정제된 향과는 전혀 다른,
날것 그대로의 향기와 열정이 방콕의 새벽을 지배한다.


야와랏 로드(Yaowarat Road) 쪽에서 실려오는 바람은
갓 깎은 망고와 파파야의 단내를 싣고,
시장 안쪽에서는 쌓여 있는 바나나 잎과 파인애플 껍질에서
풋풋하고 시원한 열대의 향이 번진다.
코끝에 머무는 건 단순한 꽃내음이 아니다.
그것은 삶과 노동, 태국인들의 활기찬 숨결이 뒤섞여 만든
강렬한 향의 심포니이다.


뜨거운 공기 속에서 시장은 쉼 없이 발향한다.
레몬그라스와 갈랑가 뿌리가 놓인 채소 좌판에서는
허브 특유의 청량함이 퍼지고,
옆 가판대에선 막 간 카피르 라임 잎이
살짝 쌉싸름하면서도 상쾌한 노트를 더한다.
한쪽 구석에서는 코코넛 밀크를 짜내는 냄새와
잘 익은 람부탄과 망고스틴의 달콤한 향이
마치 향수의 미들 노트처럼 시장 한복판을 부드럽게 감싼다.


해가 중천에 오르면,
시장 중심의 파 탓 시장(Phahurat Market) 골목에는
태국 전통 음식이 만들어지는 냄새가 번진다.
바나나 잎에 싸서 찐 칸톰의 달큰함,
건새우와 허브 페이스트를 빻는 소리와 함께
짭짤하고 매운 향이 허공을 가른다.
그 옆에서는 장인들이 꽃다발을 정성스레 엮으며,
손끝에서 은은히 풍겨 나오는 꽃수레 냄새가
묘하게 차분한 머스크처럼 마음을 가라앉힌다.


저녁 무렵, 시장은 한층 더 색다른 공기로 변한다.
왓 포(Wat Pho) 사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엔
향로에서 피어나는 백단나무와 사원 향초의 내음이 섞이고,
멀리서 울리는 종소리가
향기의 리듬처럼 시장을 부드럽게 감싼다.

해가 저물고 등불이 켜진 골목에선
시장 상인들이 파는 매운 카레 페이스트와
칠리, 고수 뿌리의 알싸한 향이 남아
낮 동안의 달콤한 꽃내음과 대비되는 뜨거운 울림을 남긴다.


팍클롱 탈랏은 혼잡하고 소란스럽다.
그러나 그 속에서 여행자는 오히려 숨을 고른다.
피곤한 몸마저 깨우는 활기,
꽃잎과 향신료, 과일과 향로가 뒤섞여 만든
거칠지만 정직한 향의 바다.


돌아서는 길, 시장은 나에게 말하는듯 하다.
“이 뜨거운 향기, 오래도록 푸근함에 남을 거야.”
그래서 팍클롱 탈랏은 방콕의 분주함 속에서도
향기로 숨 쉬는 여행자의 엄마 품 같다.

장소정보(구글맵 링크)

https://maps.app.goo.gl/h95CYE63SvNo4qtr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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