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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초마녀 Oct 27. 2024

용산사 옆 스타벅스와 용산사


스타벅스는 꼭 가이드북에 소개된 곳, 유서 깊은 건물에 터를 둔 곳으로 가야 할까. 들어서면 비슷한 분위기, 똑같은 테이블인 것을. 알면서도 오직 스타벅스를 위한 여정에 나섰고, 근처에 있는 용산사는 덤이었다. 한국에서는 늘 텀블러를 들고 다니며 6잔 마시면 1잔 무료 혜택에 집착하는 인간인지라 샷 추가, 별 적립 없이 현금 박치기하는 게 영 손해 보는 기분이었지만, 어쩌랴, 여기는 타이베이인걸. 그런데 이상한 점은 벤티 사이즈를 주문해도 한국에서의 그란데 사이즈에 못 미치는 양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다낭에서 체험했던, 시원하게 쪽 빨고 나면 사라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기적이 다시 시작되는 건가? 그때 다낭에서는 한 서양인이 컵 사이즈가 다른데 양은 같다며 격렬히 항의했었는데 나는 어쩌나. 나에게는 미심쩍은 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중국어가 남아있지 않으니….





어쨌든 새로운 스타벅스 한번 누려보겠다고 온 건데, 아뿔싸, 시간 잡아먹을 고질병이 또 발동하고 말았다. 10분을 머물더라도 내가 눈독 들인 자리에 앉겠다는 집착이 내 오랜 고질병이었는데, 떠날 때도 되었건만 각자 폰만 보고 있는 중년 부부를 예의주시하다가 잠깐 자리를 뜰 때는 아이들을 투입하기도 했다. "윤! 저쪽에 자리 나면 바로 가서 맡아!" 버스 타고 공간 이동까지는 허락해도 자리 옮기기를 싫어하는 친구가 봤으면 분명 질려 했을 모습인데, 기어코 원하는 자리를 '겟'하는 나도 참 나답다 싶었다. 하지만 평화를 파괴하는 빌런들은 어디서나 나타나는 법.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K 스낵의 꿀 조합으로 영혼 좀 복귀시키려던 찰나, 눈과 손을 태블릿 PC, 그리고 핸드폰에 고정한 채 다가오는 좀비들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꼭, 내 앞에 와서 게임해야 해?"





어휴… 니들 앞에서 독서는 무슨 독서냐. 결국, 아들의 핸드폰 장기 사용을 눈 뜨고 오래 못 보는 나는 탈 스타벅스를 선언했고, 대만, 하면 떠오르는 명소 중 하나인 용산사로 향했다. 방송에 하도 많이 나와서 두 눈으로 사실 확인이 필요한 곳. 명절이라 그런지 약 30여 명의 사람들만 추가 진입이 가능할 정도로 사원 내부가 빽빽했는데, 그 와중에도 여기저기 과일과 과자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게 이색적이었다. '과일 고픈데 하나 집어먹고 싶다' 같은 생각이 드는 한국인은 전체 관광객의 몇 퍼센트나 될까? '난다오, 워 이거런? (설마, 나 혼자?)' 당연한 듯 아닌 듯 누구 하나 손 대지 않는다는 점, 앞에서 누가 알짱거리든지 말든지 마음 모아 기도하는 대만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 이것이 대만이구나'하는 힌트를 얻었다.





신에게 기도하는 모두의 마음을 뒤로하고, 나와 아이들은 여행객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하기로 했다. 대만 신이 한국인의 소망까지 어루만지기엔 대만 신에게도 극 성수기니까. 그 자리에서 급조할 절실한 마음도 없고. 한 바퀴 둘러보기나 하자는 마음으로 인파를 헤집고 다니다가 모처럼 아들이 리드하는 대로 따랐다. "엄마! 나가자!" 나중에 버스 투어할 때 용산사는 그곳에 모신 신들에 대해 이해하고 가야 재밌다는 설명을 들었지만 미련은 없었다. 나 자신도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헤매는데, 두루뭉술하게 기도해 봤자 '너는 여행 다니며 한량으로 살거라'하고 명확한 지시사항이 떨어질 리 없으니 말이다.



다음 목적지를 정하기 전, 잠시 용산사 앞에 있는 시장에 들러 과일을 보충했다. 용과 하나, 석가 하나. 용과는 베트남 여행 시 호텔 조식에 등장하는 상시 품목이었다만 석가는 처음이었다. 대만 여행 후기를 보다 보면 석과를 향한 애절한 사랑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었는데, 사과 덕후인 내 입맛 기준으로는 '너무 달달해서 부담스러운 너'라고 해야 할까? 나중에서야 남들은 그렇게 맛있다는데, 석과 먹으러 재방문하고 싶다는데 부러 더 먹고 올 걸 그랬나, 하는 여운이 남긴 했다만, 그래, 절대적인 건 없다. 안 끌리면 그만인 것을 우리는 왜 그리도 남의 경험과 소감에 영향을 받는지…. 대신, 아침마다 사과 하나는 꼭 챙겨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꼬박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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