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꼭 먹어'파에게 시련이 닥친 하루.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밥상부터 차리는 나에게 식사 장소와 메뉴를 고민하는 건 여행의 일부분이 아니라 생존 그 자체였다. 게다가 대만의 명절은 여행객의 식탐 따위는 배려하지 않고 죄다 휴업, 영업 종료의 얼굴을 하고 있었기에 먹는 일에 관한 고민을 멈출 수 없었다. 본래 이연복 셰프가 추천한 새우만두 집을 찾아가던 길. 버스편을 묻고자 들른 편의점에서 직원, 식사하던 손님들까지 핸드폰을 한데 모아 이동경로를 탐구했을 때, 어떻게 갈 것이냐를 따질 게 아니라 '오늘은 휴무'라는 얘기를 듣고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 어쩌지?
한자리에 머물며 오래 고민해 봤자 신선한 아이디어가 툭툭 떨어지는 게 아니기에 일단 나섰고 일단 걸었다. 그러다가 좌측 50미터 전방에 누가 봐도 관광 명소임을 알리는 문과 마주쳤는데, 우선 저기나 가볼까 하며 들어선 곳은 관광객들로 술렁거리기 전, 평온 그 자체의 중정기념당이었다. 장제스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곳. 그렇게 나무와 벤치가 조화롭게 조성된 공원에 감탄하던 마음도 잠시. '장제스가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는 그냥 건물이고 그냥 광장이겠군' 같은 생각이 파고들자 여행객으로서의 정체성은 재빨리 달아나고, '의미'와 '배움' '성장' 따위에 환장하는 엄마로서의 직분이 되살아났다.
"이거(여행 책자에 소개된 내용)라도 읽어봐! 질문할 거야!"
읽어보라고 지시하긴 했지만, 그건 장제스란 인물을 설명하려면 국공 내전, 마오쩌둥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기에 나부터 포기한 행위였다. 지식은 얕고 설명하기엔 귀찮았으며, 무엇보다 속이 허했기에. 그래봤자 단기 기억 장치에 머물다 갈 운명이겠지만, 장제스에 관한 최소한의 지식 한 줄 욱여넣고 건물로 이동했을 때, 역시는 역시나였다. 세상에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명언만큼 정확한 말이 있을까? 아는 게 적으니 자세히 보려는 관심과 열정도 떨어져서, 건물 내외부는 휘이 둘러보기만 하고 나무 아래에서 걷고, 앉고, 잉어 밥 주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이제는 나와 아이들의 위장에 식량을 보충해야 할 시간. 대충 골라잡아서 지도 보며 걷다가 아이들 눈치를 살피고는 택시로 이동했건만… 꽝! 한발 앞서서 허탈함, 씁쓸함, 헛고생을 맛본 대만인들이 휴무임을 알리며 "네가 계속 기다려볼래?" 같은 농담을 던졌지만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내 택시비! 내 시간! 하는 수없이 발길을 돌려 헤매다 보니 타이베이의 명동이라 불리는 시먼딩에 도착했고, 길에서 수집한, 문 열린 곳이 많을 것이란 정보는 반가움보다는 되려 선택의 피로로 다가왔다. '많고 많은 식당들 중에 어디로 가나?'하는 번뇌가 새끼들에게 먹이를 공급해야 한다는 어미 새의 본능마저 잊게 만든 것이다.
근처 상점 직원에게 자문 받은 곳은 '아종면선'이라는 국숫집. 첫 끼니는 밥이어야 했던 나에게 '면' '국수' 같은 키워드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으나 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식당 앞에 당도하고 나서야 그곳이 책자에서 본 유명 맛집이란 걸 알았는데, 다들 서서 먹는다더니 정말 한 손에 국수를 들고 있는 자들이 진을 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늘진 곳, 앉을 수 있는 곳은 어디든.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아들 한 명을 골라 줄 서기에 동참시키고는 앉을 수 있는 곳을 재빨리 물색했다. 그렇게 근처 호두과자 가게 테이블에서 버젓이 곱창 국수를 먹던 자의 자리를 이어받아 점원과 구매 약정을 맺고는 '대' 사이즈 두 그릇을 올려놓았다.
아… 그런데 이것은 누구를 위한 맛? 대만 맛 기행의 대표주자 중 하나인 곱창 국수가 내게는 굳이 이 음식으로 배를 채워야 하는가,에 관한 심층 토론이 필요한 맛이었다. 푹 익어버린 얇은 면발의 식감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있을' 터. 아침부터 먹은 게 없고 음식을 가득 남긴 채로 버리기가 아까워 위에 양해를 구하긴 했다만, 한 번에 먹는 양이 많지 않아 즐거운 한입이 소중한 나로서는 아쉬운 선택이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건 예상치 못한 다크호스 등장! 가지, 오이 빼고 가리는 것 없는 큰애마저 소극적 숟가락질을 하고 있을 때, 제 입에는 잘 맞는다며 둘째가 나서주니 입맛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때 한 남자가 다가와 유난히 반가운 척을 했다. 처음엔 그저 여행으로 신난 대만인이 다른 여행객에게 보내는 우호적인 제스처인 줄 알았는데, 대만 사람들은 참 친절하고 적극적이기도 하지,라고 생각할 즈음에서야 그의 정체를 알아냈다. 허탕 동지! 그래, 택시 타고 이동했던 식당에서 만난, 그때 그 대만인이었던 것이다. 엄지손가락으로 등 뒤를 가리키며 자기도 방금 곱창 국수를 먹었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이 한층 더 끈적끈적 해지면서 손가락 하트를 날리는데, 특유의 넉살에 나도 따라 웃고 말았다. 이런 게 여행의 묘미라며 엄치 척 하는 나에게 "우리 엄마 또 의미 부여한다"라고 태클을 건 녀석이 있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