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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초마녀 Oct 27. 2024

타이베이의 옛 골목, 디화지에 속으로



어제 하루 자연에서 충전했으니 이번엔 도시다! 여행 책자를 넘기며 '타이베이에서 가볼 만한 곳 TOP 5'에 선정해 두었던 디화지에로 향했다. 이곳에서 눈독 들인 장소 역시 고풍스러운 건물에 입점한 스타벅스(도대체 스타벅스가 뭐라고), 무려 100년 전 건물을 그대로 살린 서점(번체자를 알아보기는 하니?), 그리고 아몬드 빙수 가게였다. 일반적인 관광 모드라면 도착 즉시 주요 이동 경로부터 살피겠지만, 낮부터 내리쬐는 강렬한 햇살에 나와 아이들의 마음은 곧장 스타벅스로 모아졌다.



"그냥 스타벅스나 갈까?"


"(급 반색하며) 응. 너무 더워."






구글맵에 스타벅스 위치를 부탁하고 횡단보도 건너기를 몇 번. 신작 영화의 예고편을 살피듯 디화지에 모습을 한눈에 담으면서 나의 사랑 나의 안식처에 도착했다. 디화지에에 있는 스타벅스가 다른 지점과 다른 게 있다면, 주문하는 곳에서 2층으로 올라가려면 밖으로 나가서 원형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는 것. 아이들은 어느새 게임하기 좋은 공간에 자리 잡았고, 나는 번뇌로운 장면을 차단할 수 있는 자리에 둥지를 텄다. 하지만 대만에서의 아침 독서가 그 어느 여행지에서 보다 실패했던 것이, 내가 읽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들의 반짝거리는 전두엽, 측두엽, 후두엽이 게임과 유튜브에 의해 생기를 잃을까 염려되기 때문이렸다.





1시간 반 즈음 지났을 무렵, '이제 그만' '꺼' '안 꺼?'를 한 바퀴 돌고 자리를 정리했다. 딱히 한 것도 없는데 오후 1시 반. 다른 여행객과 비교할 일이 아닌데도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의 비효율성을 떠올리며 내가 너무 사치스러운 거 아닌가, 하는 자책감에 빠져들었다. 돈보다 더 귀한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 사치 말이다. 게다가 한 일이 아무리 없어도 때 되면 배고파하는 아들이 둘이나 있으니, 먹고 나면 반나절이 통째로 사라질 위기에 있었다. 그래서 지나왔던 거리를 역주행하면서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선 식당에 합류할까 했지만, 무언가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는 데 의식이 묶인 나는 다시금 발걸음을 원점으로 되돌렸다.





이미 한번 재생된, 조금은 흥미가 사라진 길이지만, 대략적인 로드뷰를 살펴본 만큼 여유롭게 즐기기로 했다. '대만에서 줄 서 있는 걸 발견하면 뭐다? 맛집이다!'라고 배운 만큼 딸기 모찌 한 팩을 사고, 거리에 가득한 소품샵을 휘뚜루마뚜루 들렀다가 내 물욕 없음만 확인하고 나왔다.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요, 집에 안 쓰는 물건 쌓아놓는 걸 일생의 번뇌로 여기는 인간이라 대만 소상공인의 소득 창출에 기여하는 바가 없으니, '아! 그래서 럭키드로우에 떨어졌구나?'하는 생각이 든 것도 무리는 아닐 테다. 대신 우리는 요식업에 돈을 몰아주기로 했다. 이것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지만.





모름지기 간식은 식후에 먹는 게 제맛이라 배 채우기 위한, 사실은 팥빙수를 맛있게 먹기 위한 전략으로 '도소월'로 향했다. 점심시간에 비해 줄은 비교적 줄어들어 있었지만 20분 대기가 기본이었고, 앞쪽의 대만인들이 체크해 놓은 주문표를 커닝하며 최고의 한 끼를 위한 연구를 거듭했다. 면은 하나씩 시키고, 내가 먹고 싶은 두부 튀김? 아니면, 아이들이 원하는 새우튀김? 문밖에 붙은 '인기 요리 베스트 10'을 보고 살짝 흥분했던 것과는 달리 나는 결국 아무 추가 요리도 시키지 못했는데, 한국과 큰 차이 없는 가격인데도 왜 그리 요리 하나하나가 비싸게 보이던지…. 아이들은 단무지 없는 단짜이면을 두 그릇씩 잘도 먹었다만, 나는 김치 생각이 간절한 덮밥을 억지 미소를 띠고 음미했다. '괜찮아. 빙수가 메인이야…'



궁금했던 빙수 맛집_샤수티엔핀_을 찾아가다 보니 알았다. 아, 디화지에가 꽤 길구나. 패키지여행으로 올 경우, 길어야 1시간의 여유로는 닿기 어려운 위치에서 반가운 간판을 만났는데, 아쉽게도 외부와 연결된 홀에는 자리가 없어서 방금 착석한 사람들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 사이에 1인 1빙수를 즐기고 있는 가족에게 무단 침입해 '당신들이 먹고 있는 빙수가 (사진에 있는) 이 빙수가 맞습니까?'하고 사전 조사를 벌이기도 했는데, 친절한 여성분은 직접 카운터로 이동해서 일대일 토핑 과외를 해주시기도 했다. 그렇게 선택한 건 역시나 팥! 그럼, 아몬드 빙수 맛은? 캬, 깔끔하다 깔끔해. 자극적인 단맛이 없는 담백한 빙수는 여기저기 추천 욕구를 불러일으켰는데, 아이들도 숟가락질을 멈추지 않더니만 높이 솟아올랐던 빙수 하나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어서 두 번째 주문! 참고로 이건 둘째의 아이디였는데, 한 번에 두 개 시키면 금방 녹아내려서 맛이 없으니, 하나 다 먹고 그때 주문하자는 제안이었다.



캬, 역시 먹을 줄 아는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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