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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파리에 가고 싶다는 불치병에 걸렸었다.

by 불친절한 은자씨

내가 하는 수많은 쓸데없는 일 중에 하나가 비행기표와 숙소비 검색해 보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다가도 뜬금없이 가장 싼 시기가 언제인가 찾아보곤 한다.


제일 많이 검색한 도시는 바로 파리.


나에게 유럽은 곧 프랑스 파리가 연상될 만큼 파리는 항상 동경의 도시였다. 그렇다. 밀라노에서 살게 되었을 때 이곳에서 살게 되서 기쁜 마음도 있었지만 프랑스 파리를 갈 수 있겠다 싶은 기대감이 더 컸다. 좀 과장하자면 파리는 그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 가고 싶은 도시가 아닐까 싶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파리의 맛있는 빵이며 멋진 미술관과 박물관 그리고 세련미 넘치는 파리지앵들까지. 파리의 모든 것이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 파리를 언제면 갈 수 있을까 계속 호시탐탐 그 때를 물색했다.


첫 파리 여행은 12월 크리스마스 연휴였다. 그 당시 우리 부부는 풍족하지 않았다. 소위 말하는 가난한 유학생부부까지는 아니었지만 남편은 과장 1년차였고 외벌이였으니 여유로운 주재생활은 아니었다. 호텔에서 묵고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다닐만큼의 여유는 없었다. 12월의 유럽은 여행 비수기이다. 해도 짧고 연말은 보통 가족과 보내기 때문에 관광지 숙소의 가격이 저렴해진다. 이 때에도 무심코 숙소 검색을 해보다가 숙소가격이 다른 때보다 훨씬 쌌기 때문에 두 번 생각안하고 예약을 했다. 큰 애가 돌이 막 지났을 때라 비행기를 타는 대신 자동차로 갔다. 온갖 장난감에 이유식과 기저귀, 유모차까지 짐이 한 가득이었기 때문이다.

지도를 찍어보면 나오지만 밀라노에서 파리까지는 무려 900km 에 육박한다. 논스톱으로 달려도 10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뭣도 모르고 젊었으니 저렇게 자동차여행을 했구나 싶다.


12월의 파리는 정말 추웠다. 밀라노보다 고작 900km 북쪽에 위치해 있어 밀라노정도의 추위겠거니 했는데 웬걸 서울의 추위에 버금갈 만큼 쨍하고 얼얼한 추위였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거리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보통 파리하면 떠올랐던 햇살 가득한 공원이나 멋쟁이가 카페를 마시는 노천카페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파리에 가고싶어 병에 걸린 나는 그저 파리에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깜깜한 밤에 불이 들어와 별처럼 빛나던 에펠탑을 보며 파리는 역시 파리야 라고 감탄했다. 아무리 추워도 에펠탑을 보고 있으면 추위가 아무렇지 않았다. 그리고 제일 가고 싶었던 곳. 바로 오르세 미술관.

미술교과서에서만 보았던 작품들을 직접 관람하는 것으로 파리여행은 잊을 수 없었다. 나의 첫 파리여행은 오르세 미술관을 방문한 것으로 충분했다. 유럽 여행을 오는 이유는 아마 대부분 역사적인 박물관과 미술관이 아닐까? 나는 유럽에서 살게 되었을 떄 가장 기대했던 바가 바로 이것이었다. 밀라노 시골살이에 그림 보는 낙이라도 있어 유럽살이가 덜 외로웠더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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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의 밤과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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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 미술관의 작품들


그 때 작은 캐논 카메라로 그림들을 엄청 찍어댔는데 오랜만에 그 사진을 꺼내보며 추억에 잠겨본다. 그렇게 하나하나 찍어두고 정작 지금까지 몇번이나 찾아봤나 싶다. 벌써 15년 전 여행이다. 그 때와 달리 이제는 900km를 자동차로 가지 않고 easyjet 비행기 타고 갈 정도의 여유는 생겼으니 그런대로 잘 살아온 거라고 할 수 있을까. 그 때의 파리병은 몇 년 후 두 아이를 데리고 여름에 한 번 더 파리를 가고 나서야 완치가 되었다. 따듯한 햇살아래 공원에서 여유를 보내고, 노천 카페에서 파리지앵처럼 시간을 보내고 나니 그 불치병이 사라졌다. 별 것 아닌 것도 직접 해 보고 나서야 그 미련이 없어지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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