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미래가 기대되는 나라
도시여행은 산이나 바다에서 보내는 여행과 달리 도시에서 살고 있는 사람구경을 제대로 할 수 있다. 특히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마주치고 관찰하는 사람은 훨씬 많아진다. 언젠가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한국인은 모두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스타일이라고 말했던 게 기억난다. 어느정도 수긍이 간다. 아이들은 그 사이에서 유행하는 똑같은 운동화, 똑같은 책가방, 똑같은 아우터를 입는다. 동네에서 마주치는 어르신들이나 중년 남성들은 골프복 아니면 등산복이다. 그렇다면 어른 여성은 어떠한가? 같은 가방에 같은 헤어스타일, 같은 화장을 하고 있다.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보면 어쩜 다들 똑같은 남색, 회색, 검은색 옷들만 입은 사람들이 꽉 차 있는지 한국 사람은 거의 대부분 비슷하게 입는다.
그런데 베를린에 있는 사람들은 각양각색, 알록달록이다. 물론 이민자도 많고 유색인종도 많으니 외관부터 다르게 생긴 사람이 많기도 하다. 그렇지만 옷차림새나 외양만 보고서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추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다르다. 광장에 모여있는 십대 아이들은 물론, 동네의 노인들, 버스 속 어느 누구도 어떤 집단으로 엮을만한 유사성이 전혀 없다. 처음에는 유명 명소를 돌아보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날이 지날수록 이 속에서 살고있는 사람들 구경이 점점 재밌어졌다.
나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걸 뉴스에서 본 세대이다. TV에서 그 뉴스를 봤을 때, 아..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통일이 될 수 있겠구나. 그럼 유라시아 대륙 횡단해서 유럽을 가는 것도 가능하겠네. 이런 지금은 말같지도 않은..그런 상상도 했었다. 그랬기 때문에 이곳 베를린 여행을 결정했을 때 어쩌면 몇 십년전이지만 냉전시대나 분단시대의 무드가 남아있지 않을까?하는 그런 호기심도 있었다. 체크포인트 찰리나, 이스트 갤러리 또는 분단시대의 장벽의 흔적을 보면 유럽에서 가장 힙하고 핫하다는 이 도시가 이런 과거를 가지고 있었구나 싶다. 그렇지만 이런 곳이 아니라면 베를린이 분단된 도시였다는 것은 체감이 되지 않는다.
어디에선가 읽었는데 독일은 본인의 성별을 본인이 선택한다는 것이 생각났다. 여행을 다니면서 그 말을 체감했는데 다양하게 본인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내가 살고 있는 밀라노만 하더라도 사람의 부류를 옷차림으로 나누고 어떤 사람인지 판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베를린은 그런 편견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도시여행은 그 나라의 현재 모습을 통해 미래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30여년이라는 시간 안에 이정도의 사회통합을 하고 수도로서의 역량을 갖추어가고 있는 베를린이라는 도시의 저력이 새삼 대단하다고 느꼈다. 결국 도시든 마을이든 지역이든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곳의 정체성을 결정짓는게 아닐까 싶었다. 아마 베를린이 유럽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몇 년 후에는 더 활기차고 역동적인,유럽을 대표하는 도시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