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2일차 계획은 아침 일찍 오스투니 올리브 농장투어였다. 여러모로 지금 아니면 이 지역을 다시 오기는 힘들 것 같아 결정한 여행지였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이 바로 올리브 농장 방문이었다. 커다란 올리브 나무가 끝도없이 펼쳐진 곳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여행에서 미리 예약한 것이 딱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올리브 농장 투어였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뭐든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하게 일정에 차질이 생겨버렸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려고 지하로 내려왔는데 garage 도어 열쇠를 차 속에다 두고 전날 남편이 그냥 올라왔던 것이다. 당연히 garage를 열 수 없으니 차도 꺼낼 수 없고 스페어 키도 없어서 결국 호스트에게 연락을 취해야만 했다. 설상가상 호스트는 이 동네에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바리에서 살고 있단다. 오전에 예약해둔 올리브 농장 투어는 당연히 취소해야만 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에 어이도 없고 계획이 틀어져버려 기분이 확 상했다. 호스트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만 마냥 흘러가는 시간이 아깝기만 했다. 이래저래 속상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 떄문에 아이들까지 기분이 망가지면 안되기 때문에 얼른 추스르고 어제 밤에 봤던 광장 쪽으로 다시 나가본다. 어제는 미쳐 가 보지 못한 해안가 절벽쪽으르 내려가 보니 세상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가 나타나다니! 항상 구글 지도에 의존해서 길을 가던터라 이곳에 이렇게 멋진 장관이 눈 앞에 보이니 속상했던 감정이 한 순간에 사라져버렸다.
여행은 변수라고 했지만 막상 계획에 틀어진 일이 발생하면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이런 장관을 목도하니 우아 소리를 남발하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댈 수밖에 없었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아이들과 정신없이 사진을 찍다보니 허기가 진다. 배고프다는 아이들과 이 지역의 명물 포카챠를 먹어보러 전 날 미리 봐둔 가게를 찾았다. focaccia 는 피자와 비슷한 짭쪼름한 맛이지만 도우위에 여러 토핑을 올리기도 하고 도우 사이에 넣어서 먹기도 하는데 피자보다는 사이즈가 좀 작다. 이탈리아 전역에 다 팔고 있지만 이 곳 풀리아 지녁이 유독 이 포카챠가 유명하므로 궁금한 마음에 꼭 사 먹고 싶었다. 가게가 11시 오픈이라 들어서 보니 이제 막 여러 포카챠들이 구워져 나오고 있었다. 냄새에서 토마토와 소금의 맛이 느껴졌다. 식어도 맛있기 때문에 넉넉하게 여러 맛을 주문한다. 따로 앉아서 먹을 공간이 없어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하던 찰나, 때마침 호스트에게서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부랴부랴 숙소로 돌아가 호스트에게 스페어 키를 받고 차를 garage에서 빼 두었다. 숙소에서 포카챠와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기로 하고 우선 숙소로 다시 들어왔다. 화창한 날씨 덕에 아이들도 각자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대느라 다들 배고픈 상태였다. 부리나케 라면물을 올리고 햇반까지 데워서 먹으니 이게 꿀맛이구나 싶었다.
원래대래라면 내일 알베로벨로를 들리고 마테라로 넘어가는 계획이었지만 오늘의 변수로 오후에 알베로 벨로를 가기로 하고 내일 올리브농장을 가는 것으로 일정을 바꿨다. 다행히 한여름 성수기가 아니라서 올리브 농장에서도 예약이 비어있어 일정을 바꿔 주었다. 어느정도 배도 찼고 이제 자동차도 꺼냈으니 다히 여행을 시작해보자.
알베로 벨로-albero bello-는 이 지역 특유의 집 모양때문에 스머프 마을이라고도 불리운다. 폴리냐뇨 아 마레 지역에서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는데 약간 내륙 쪽으로 들어가 있다. 약 30km 떨어져 있어 도착하는데 채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귀엽고 아기자기한 마을이라 예쁜 사진을 찍겠다 싶은 기대감에 잔뜩 부풀었는데 기대감이 너무 컸던건지 아니면 오전에 봤던 해안가 절벽의 장관이 너무 압도적이었던 걸까. 알베로 벨로는 크게 매력적이지 않았다. 전통가옥인 trulli 외에는 딱히 볼거리가 없었고 가는 곳마다 도로 공사를 하고 있어 골목을 빙빙 돌아 다녀야 해서 둘러보는게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는 없어서 trullo sorvano라는 역사 문화박물관을 찾아 들어갔다. 이런 곳을 입장료를 내야 한다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작은 집이었는데 여기서 어떻게 사람들이 살았는지 궁금한 마음에 들어가 보았다.
이렇게 작은 집에 어떻게 살았을까 싶은데 과도한 세금 징수를 피하기 위해 쉽게 돌로 쌓고 허물 수 있도록 이런 형태의 집을 지었다고 한다. 후다닥 집을 허물기 위해서는 큰 집이 불필요했으리라. 똑같이 생긴 trulli를 보는 것은 금방 지겨웠는데 막상 그들의 생활상을 들여다보는 것은 더 흥미로웠다. 그 옛날 사람들의 생활 소품을 보니 어렸을 적 외할머니 집에서 보더 소쿠리며 빨래판이며 비슷한 물품이 있었다. 사람사는 것은 어디든 비슷하구나 싶었다.
여하튼 아침에 한바탕 소동을 치루고 움직인 탓인지 별로 크지 않은 동네 정도였는데도 금방 피로가 몰려왔다. 알베로벨로도 그렇고 다음 날 방문했던 오스투니도 마을 전체가 흰색 돌로 만들어져 있어 뭔가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 지역이 어마어마한 박물관이나 유명한 것이 없어도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되는 건가 보다. 어디든 카메라를 들이대면 훨씬 더 아기자기하고 귀엽게 보여 요즘처럼 사진으로 남기는 여행이 유행인 시기에는 이런 지역이 인기일 수밖에 없겠다싶다.
사실 유럽은 아시아나 아메리카와 달리 그다지 도시 규모가 크지 않다. 일부 현대 건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건물들도 별로 크지 않다. 그래서 소도시 여행은 반나절이면 한 마을을 충분히 구경할 수 있다. 그리고 유럽은 이런 그시가를 따로 관리를 하며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유지하고 있어 당연히 관광 자원으로 계속 이어지게 하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trulli말고는 딱히 볼게 없는 이 작은 마을까지 전세계 사람들이 몰려들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