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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휴 Dec 25. 2023

일상에서 만나는 소설적 상황

서유미 소설집 『이 밤은 괜찮아, 내일은 모르겠지만』 (민음사, 2021

서유미 작가는 197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7년 『판타스틱 개미지옥』으로 문학수첩작가상을, 『쿨하게 한걸음』으로 창비장편소설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당신의 몬스터』, 『끝의 시작』, 『홀딩, 턴』, 중편소설 『틈』, 『우리가 잃어버린 것』, 소설집 『당분간 인간』,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가 있다. - 작가소개에서     



『이 밤은 괜찮아, 내일은 모르겠지만』은 단편 12개로 구성된 소설집이다. 책의 주인공들은 큰 사건을 겪거나 극한으로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지만, 소설 속 이야기들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야기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따뜻함이 녹아드는 감동을 준다.      




거리

부부생활을 전쟁에 비유해 이야기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주인공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 카페에 간다. 아이가 수족구병으로 아프다가 나아진 상황이었다. 결혼생활의 투닥거림과 육아의 어려움이 그려져 있다. 편치 않은 마음으로 카페에서 친구와 차를 마시는 동안 바깥에서는 물총축제가 한창이다.

“눈을 뜨기 어려운 폭염 속에서 그들은 신나게 젖기 위해 이곳에 왔고 물총을 겨누는 건 공격이 아니라 축제를 즐기는 방법이었다.”(p23)


(자신은 결혼이라는 문안에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젊은이들의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며 자신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제목의 거리는 길거리 또는 그들과 나의 거리를 표현한 이중적 상징을 갖는다.)    



 

그 새벽을 지나는 일에 대해

생일이 같은 친구들이 나온다. 서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1년에 한 번 만나는 민과 나. 16년 동안 만나 온 40대 친구다. 재, 국, 민, 영 네 사람은 대학 시절에 한 레스토랑에서 8개월 동안 함께 아르바이트했다. 친구들과 회식 후 새벽 귀갓길에 소매치기를 만난다. 사귀던 친구가 준 편지와 친구들의 선물이 든 가방을 빼앗겨 뒤쫓아 가다 돌아선다.

“그 새벽의 소매치기가 앗아 간 것 가방과 선물만이 아니라 더 많은 자유와 고민의 가능성들, 그리고 진실이었다.”(p65)


(새벽에 놀란 주인공은 생활에서 그 새벽을 놓을 수 없다. 오해를 불러올까 봐 친한 친구들한테도 말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담고 사는 살얼음판이 녹아가는 결말이라 다행이었다.)     




그곳으로 가고 있어

주인공은 치킨 매장 담당 매니저다. 애인과 결혼을 앞둔 안. 애인에게서 알 수 없는 불쾌한 냄새가 난다. 안에게서는 닭 튀긴 기름 냄새가 난다. 현실은 냉정하다. 매장 하나 오픈하면 생활이 좀 풀릴 것 같은데 열쇠를 쥐고 있는 우는 비현실적인 사람이다. 어르고 달래도 본인의 의지로는 매장을 이끌어 갈 능력이 없다.


(삶의 현장에서 분투하는 샐러리맨의 고뇌가 느껴져서 무언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약속을 어기고 이랬다 저랬다 하는 고객에게라도 조심스럽게 대해야 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현장에서 뛰어야 하는 중간계층의 고충이 보였다.)




너는 거기 서 있고

신문사 기자인 주인공의 허리 수술로 병원에 입원한 부인을 간호 중이다. 1987년 중학생인 주인공은 국어 시간에 작문을 발표하는 친구에게 반한다. 근처 대학 데모로 단축수업이 실시된 그날. 우연히 중고 책방에서 그 친구를 만난다. 한 대학생의 죽음으로 데모는 더 확산된다. 친구는 데모에 찬성하는 발언을 쏟아 내지만, 주인공은 생각이 정립되지 않았다. 데모가 심해 사람들이 몰려 뛰는 사이 친구와 주인공도 산비탈까지 가게 된다.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p128)

현재로 돌아와 병원 근처의 유명 반도체 회사 앞에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는 사람이 옛 친구라는 것을 알아본다. 30년 만에 만나게 된다. 친구의 희망인 기자는 주인공이 된다.


(과거와 현실이 오가며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런 시절을 겪어 온 우리라서 공감이 더 갔다. 그 시절들이 그림처럼 묘사가 잘 되어서 서사를 따라 과거에 다녀온 느낌이 들었다. 매캐한 최루탄 냄새까지 생생해지는 소설이었다.)    



 

노래하는 사람

은주는 “언제부터 투잡 했는지 떠올리는 것보다 투잡을 안 하던 때를 떠올리는 게 더 빨랐다.”(p142)라고 표현할 만큼 바쁘게 살았다. 10년도 넘게… 방 두 개짜리 월세에서 관절염으로 집에서 생활하는 엄마를 돌보는 처지다. 어느 날 택배 일을 하는 동생이 아이인 윤을 데리고 집에 온다. 부인과 헤어졌고, 어린이집이 끝나면 윤을 데리고 택배차에 태워 늦게까지 일을 다녔는데 윤이 아직 소변을 가리지 못했고, 동생은 다리를 다쳐 절뚝이는 상황이다.

곤궁한 살림이지만, 동생의 형편을 외면하지 못한다. 윤을 보살피는 일도 주인공이 맡게 된다. 윤을 데리고 키즈 카페도 가고, 과천에 있는 미술관의 ‘노래하는 사람’ 조각도 보여준다. 윤이 방광이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인 증상이라는 설명을 듣지만, 고액의 치료비가 부담되어 등록하지 못한다.


(가족이기 때문에, 좁은 공간을 비집고 들어 온 타인을 밀어낼 수 없는 지난함이 느껴졌다. 주인공의 처지가 안쓰럽다. 주인공이 조카를 보는 시선이 안타까운 처지의 자기를 보듬듯 따뜻하게 느껴진다. 조카는 치료실에 가지 않아도 금방 나을 것 같은 희망이 보였다.)     




모르는 순간

주인공은 이직한 지 1년이 넘었는데도 회사의 사람들과 가까워지지 못하고 혼자 점심을 먹는다. 어쩌면, 유일한 휴식 시간이다. 전에 다니던 회사 동료인 송이 주인공의 부인 임이 사고를 쳤다고 연락해 온다. 송은 임이 동료와 다투는 장면이 찍힌 동영상을 보낸다.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는 주인공은 부인한테 전화하지만, 연결되지 않는다. 부인과는 직장에서 만나 결혼했고, 회사 방침상 한 사람은 이직해야 했다.

송은 임이 동료인 권과 다투었고, 계단에서 밀쳐 다치게 한 영상을 다시 보낸다. 영상에서 오가는 대화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사고의 순간을 궁금하게 한다. 자신과 임이 늘 만나던 4층 비상계단이다. 주인공은 조심스레 그곳까지 찾아가 부인을 만난다.

“그는 잠깐 멈추어 밖을 내다보는 게, 고개를 돌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는 게 꽤 근사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p193)


(시간이, 계절이 지나는지도 모르게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이 감정을 얼마나 메마르게 하는지 안다. 한 박자의 쉼이 몸과 마음에 평안하게 해 준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감정은 쌓여서 예상치 못한 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설정이 개연성을 갖는 지점이다.)




끝끝내 알 수 없는 것

주인공은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알지와 연인이었다. 주인공은 그녀를 통해 전 회사의 소식과 동료들의 소식을 듣는다. 그녀의 청첩장을 받고 만날까 봐 걱정한다. 그녀는 알지가 한 달 전에 죽었다고 알려 준다. 스스로… 그 소식을 듣고 점심을 먹은 것이 얹혔다. 헤어진 뒤로 연락하지 않고 지냈다. 자신이 애인의 죽음에 영향을 미쳤을까 봐 더 두려운 심정이 된다.


(건너 건너 듣는 소식들은 불명확할 수밖에 없다. 헤어지는 상황에서 속속들이 마음을 나누지 못했기 때문에 상상하고 마음 아팠을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 말처럼 모든 일이 명확하게 전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말하지 않은 것

인영은 새언니가 상의할 게 있다고 회사 근처로 온다고 해서 긴장한다. 문제가 있는 오빠와 결혼한 새언니는 오빠에 대해 알게 된다. 인영은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성장했다. 오빠인 송영로는 아버지의 주요 타깃이었고, 엄마와 인영도 편할 수 없었다. 송영로는 군제대 후 180〬  바뀐다. 아버지의 잔소리가 시작되자 아버지를 폭행한다. 아버지를 이혼시키고 매달 생활비까지 받아낸다. 그러면서 오빠는 아빠보다 더 지독해졌다. 불평하는 동생도 때린다. 그런 오빠의 결혼을 말려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엄마와 인영은 해방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아버지도 오빠도 될 수 없는 부정적 관계임을 알게 된다. 인영은 애인의 이별 통보를 받으며 자기에게도 있는 폭력성을 발견한다. 새언니한테도 이제 그만하고 떠나라고 조언한다.


(이 소설집 중에서 가장 마음 아팠고, 주인공에게 공감이 갔다. 이런 모진 경우라면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되었다. 주인공의 상처를 어떻게 달래줘야 할지 마음이 쓰였다. 폭력이 폭력으로 응징되고, 군림이 되풀이되는 상황이 정말 소설 같았다.)    



 

이 밤은 괜찮아, 내일은 모르겠지만

주인공은 도시에 있는 회사를 그만두고 섬으로 왔다. 입사를 준비하며 압박감에 시달리다 몸의 이상 신호를 느낀다. 불안감, 불규칙한 심장 박동 등은 자연스럽게 휴식처 같은 섬을 찾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섬에 있는 호텔에서 아르바이트한다.

함께 일하며 가까워진 친구 지호는 성실하고 따뜻하게 주인공을 잘 챙겨준다.

“지호가 어디에 있는지 신경 쓰였고 눈이 마주치면 마음에 이모티콘이 떠올랐다. 오후에는 같이 산책을 하고 밤이 되면 호텔의 뜰에 나가 별을 보았다.”(p273)


(세상에서 밀려 난 주인공이 따뜻한 친구를 만나서 안심이 되었다. 미래가 불투명한 젊은이들이 서로 의지하며 내일은 모르겠지만, 함께 있는 이 밤은 괜찮다고, 하늘의 별을 보며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응원하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빌라에 사는 부부는 유치원 아이의 초등입학을 계기로 이사를 논의한다. 자기들의 경제적 상황에는 벅차지만, 교육환경에 적합한 아파트가 있다. 그곳 어린이 놀이터에서 아이가 놀기를 좋아한다. 놀이터에서 두 여자가 다가와 앞으로 놀러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들이 말투는 부드러웠고 얼굴에는 미소가 덧칠되어 있었다.’라고 쓰여 있다.

(그런 인간들이 살고 있는 집이 과연 평화롭고 따뜻한 공간이냐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무리를 해서라도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은 부모 심정이 이해된다.)

“부모 세대들이 그렇게 집과 땅을 사들였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입 안에 맴도는 말들을 천천히 씹어 삼켰다.”(p285)


(젊은 세대들이 내 집을 갖기 어려워진 사회구조를 비판하는 아픈 문장이다. 작가가 현실을 반영한 근거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창 너머의 사람들

주인공은 새로 이사 한 원룸의 창으로 보이는 건너편 창문 너머의 사람을 보게 된다. 자신이 아는 것 같은 직장 상사 같다는 생각을 한다. 직장이야기, 가정이야기가 평범한 듯 펼쳐진다. 주인공은 남편과의 불화로 집을 나왔다. 남편은 부인 몰래 동업을, 부인은 남편 몰래 다른 사람을 만나다 서로 알게 되고, 예전으로 돌아가기 어려워진다.

“여기의 나는 보는 눈으로만 존재하고 다른 건 다 지워졌다. 멀리서 보면 인생은 고요하고 단순하고 사는 것 역시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의 인생이나 거기서 거기라는 감각이 필요해서 창 너머를 보는 것 같았다.”(p303)


(평범한 일상이 펼쳐지는 듯했는데 마지막에 창 너머의 여자가 남자를 살해하는 장면까지 끌어가서 긴박한 순간에 소설이 끝났다.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독자의 상상을…)    



 

토요일 오후 5시의 행진곡

주인공은 결혼식을 앞둔 신부다. 결혼식 당일의 풍경이 세밀하게 묘사된다. 신부 화장, 미용실 모습 등. 연애 2년 차에 사귀는 사이라 새해 인사 갔다가 양가 어른들이 결혼하라고 해서 갑자기 결혼하게 되었다. 웨딩 카페에 가입해 모든 것을 도움받는 풍경이 낯설기도 했다. 정말 특별한 사건 없이 결혼을 준비하고 결혼식을 시작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가 더 궁금해지는 것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설정한 장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의 결혼생활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사건들을 만나고 해결해 나가며 사랑을 지켜나갈까? 역시, 독자의 몫으로 남겨 두는 열린 결말이다.)    

 



세종사이버대학교에서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인 서유미 작가는 학생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교수이다. 살아있는 말맛과 명쾌한 소설 이야기, 유쾌한 성품으로 웃음을 자아내며 사람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는 매력 만점인 재주꾼이다. 소설을 읽을 때, 인물의 관계성과 상황이 바뀌면서 변하게 되는 인물의 심리와 행동의 변화,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등 분석하며 읽고, 좋은 작품의 쓰기 방식을 배워서 소설 쓰기에도 참고하라고 설명해 주시던 기억이 난다. 추천해 주시는 작품들까지 모두 최고였다.   

   



이 소설집도 그런 그의 성품처럼 마음을 울리는 명문장들이 많다. 책을 읽어 보면, 서사가 매끄러워 막힘없이 읽힌다. 인물의 심리묘사를 잘하는 특장점을 가진 작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별한 사건이 아닌, 누구나 겪을 법한 일상에서 소설적 묘사와 인물의 관계성을 보여줌으로써 소설의 기능을 갖춘 수작들이었다. 우리들 일상에서 만나는 소설적 사건은 어떤 것들이 있을지, 소설적 인물은 어떤 사람들이 있을지를 생각하게 해 주는 소설이었다.   

   



이 책의 제목인 『이 밤은 괜찮아, 내일은 모르겠지만』은 그 자체만으로도 위로받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서유미 작가의 넉넉하고 따뜻한 성품이 느껴진다. 서유미 작가의 책이라면 무조건 안심하고 읽을 수 있겠다. 서유미 작가가 추천하는 책이라면 역시, 믿고 읽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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