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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휴 Dec 11. 2023

희망과 위로를 품다

강태식 소설집 [영원히 빌리의 것] 중 '영원히 빌리의 것'을 읽고

강태식 작가님 소설 「영원히 빌리의 것」이 말하는 ‘희망과 위로’에 대하여


          

한 사람은 각자가 하나의 집이라는 말을 믿는다. 어떤 집은 문을 열어주지 않기도 하고, 어떤 집은 문만 열고 이야기하다 돌아오기도 한다. 나도 문을 열어주지 않을 수도 있고, 거실까지 들여 한담을 나눌 수도 있다. 가슴에 품은 별 이야기면 더할 나위 없겠다.   


   

삭막한 사막이라는 공간과 먼 미래라는 설정이 낯설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대놓고 말하기보다는 독자의 몫으로 떠넘긴 작가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넓고 깊은 사유를 유도하는 작가의 필력이 놀라웠다. 이 소설은 공간이 미국이고, 주인공들도 외국 이름이다. 서사가 우주까지 펼쳐 나가며, 시간이 현재보다 훨씬 미래다. 상상 이상의 서사가 펼쳐진다.  



    

28세기, LA외곽 사막에 사무실을 차린 사람은 매일 몰려 들어오는 모래를 쓸어내는 것이 일이다. 그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마치면 이어서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그가 끊임없이 쓸어내야 하는 것은 모래가 아니라, 내 안으로, 나만의 집으로 들어오는 사람들과 이어지는 생각들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어쩔 수 없이 처리해야 하는 일이거나, 사건들은 아니었을까?   


   

우리의 삶에도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 말고, 어쩔 수 없이 처리해야만 하는 일들이 껄끄러운 모래처럼 밀려든다고 생각했다. 나는, 사건이 생길 때마다 ‘날아드는 탁구공’을 쳐 넘기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모래라고 생각한 작가가 있었다. 그 모래를 쓸어 내느라 빗자루도 닳고, 무릎도 닳은 것처럼 우리의 삶도 알게 모르게 쌓여오는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며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작가는 그 외로운 사람에게 25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별을 선물하기도 한다. 세상 무덤덤하고 심심해서 혼자 생각에 빠진 사내는 눈으로 분간하기도 어려운 점 같은 별을 가슴에 품었다. 그 별을 희망이자 빛으로 삼아 그나마 사막에서 버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주인공의 가장 가까운 곳에 흔하게 널려 있는 모래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별. 극과 극을 소재로 중간에 주인공을 놓고 시공간을 오가는 소재의 글쓰기 방식이 여러 가지로 대치되며 해석된다. 28세기에도 모래를 쓸 때 여전히 빗자루를 사용할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주인공은 “시시하고 하찮고 별 볼 일 없는 일에 매달려 시간을 보내다가 끝장나는 것”(p13)으로 인생을 규정한다. 인생을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이고, 감정의 폭이 크지 않아 반응도 밋밋하다. 서사가 큰 사건에서도 담담하게 펼쳐지는 문체가 왠지 뒷부분에 큰 사건이 터질 것 같아 마음 졸이며 읽게 되었다.



     

농담처럼 예고 없이 찾아왔던 별은 어느 날 또, 예고 없이 폭파한다. 인생은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을 짚어 준다. 마치, 1등을 예감했던 복권 종이가 바람에 날아가 버린다면 그런 심정일까? 환전해서 돈으로 쓰거나, 직접 찾아가 볼 수도 없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먼지 같은 별을 가슴에 품었다. 그 희망은 확실한 서류까지 보증해 줬다.     

 


그것을 받았을 때는 무덤덤하게 별 감흥이 없었던 주인공이 그 별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 왜 눈물이 터져 나왔을까? 상실과 쓸쓸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그 부분이 먹먹해서 울어버렸다. 그렇지만, 사라졌다는 그 별이 내 가슴에 박히는 것 같았다. 이 소설이 상실을 이야기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 이면에 희망과 위로를 말하고 있는 지점이다.

     


내 생활 속에 무의미하게 펼쳐진 일상과 손에 잡히지 않는 희망 같은 것, 누구에게 말하지는 않지만 가슴에 품고 있는 반짝임 같은 것. 그 희망만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영원히 나만의 것이 아닐까? 그런 희망을 품게 해 준 소설이다.

      



주인공은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서 대화의 끝에도 뒷이야기를 생각한다. 누군가와 대화하지 않은 시간에도 우리의 생각들은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다. 저 먼 우주에 서류까지 완벽한 나의 별이 있다는 상상이 좋았다. 각자의 집에 갇혀 사는 사람들, 마음을 나눌 가까운 사람이 없는 주인공처럼 내 마음을 속속들이 말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가슴에 별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다.  


    

아무리 힘든 삶을 살아도 가슴에 별 하나는 품고 살면 좋겠다는 작가의 소설이 선물 같았다. 그 작은 반짝임이 내 삶을 버텨줄 것 같다.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독자에게 희망이 되고, 위로가 되는 글, 내 글을 읽고 누군가는 가슴에 별 하나 품을 수 있는 글. 이건 영원히 네 것이야! 이렇게 선언해 주는 든든함이 삶을 지탱할 희망과 위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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