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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휴 Feb 12. 2024

어머니의 꿈을 이루기 위해

― 로맹 가리 장편소설 『새벽의 약속』(문학과 지성사, 2022)을 읽고

로맹가리는 1914년 러시아에서 태어나 1980년 파리에서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프랑스 소설가다. 파리 법학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장교양성과정을 마친 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프랑스 공군에 입대하여 복무, 종전 후에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1935년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며, 1945년 발표한 『유럽식 교육』으로 비평가상을 수상했다. 이후 프랑스 외교관으로 불가리아, 페루, 미국 등지에 체류하였다. 1956년 『하늘의 뿌리』로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콩쿠르 상을 수상했으며, 1975년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자기 앞의 생』으로 같은 상을 수상했다. - 작가 소개에서   



“끝났다, 빅서 해안은 텅 비어 있고”로 시작되는 첫 문장이 서늘했다. 어머니의 지대한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자신의 생이 많이 무거웠을 것이다. 어쩌면 어머니의 놀라운 집념과 굴레에 의한 그 이름보다 자신만의 힘으로, 자신만의 이름으로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서 다른 이름으로 다시 큰 상에 도전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콩쿠르 상을 두 번 받은 유일한 작가다. 두툼한 책이었지만 어머니의 기도를 따라 작가가 어디까지 성장해 나가는지 숨죽이며 읽었다.  




유대인으로 폴란드의 빈민가에 살 때, 마을 사람들의 배척을 받는 아들을 층계참에 세워두고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은 어머니는 소리친다.



"감히 너희들이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 줄이나 아는 게야? 내 아들은 프랑스 대사가 될 사람이야.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을 것이고 위대한 극작가가 될 거란 말이야. 입센, 가브리엘레 단눈치오가 될 거라구! 내 아들은......"



이런 외침은 아들과 어머니가 온 마을 사람들 앞에서 한 맹세며 약속이 되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머니는 아들을 엄격하고 철저하게 교육시킨다. 아들은 어머니의 희망인 자신을 혹독하게 담금질한다. 때론, 어머니의 유별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방황도 하지만, 큰 약속을 어길 수는 없는 그였다.



자전적인 이 소설 『새벽의 약속』은 러시아의 배우였던 어머니의 실감 나는 말과 행동들이 재미있었다. 은유적 표현들이 뛰어난 소설책이라 420p의 다소 두꺼운 책이었지만 잘 읽혔다.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세트를 읽을 때처럼 유쾌한 은유가 곳곳에 숨어 있어 읽는 묘미가 있다. 



홀로 아들을 키우는 어머니는 아들이 무엇을 하건 최고가 될 거라고 전적으로 믿고 지지해 준다. 그것도 세계 최고가 될 것이라고 여기저기 떠들기까지 한다. 여자 혼자 아들을 키워내야만 하는 그녀는 온갖 일을 맡아서 생계를 책임지면서도 아들의 장래를 위한 교육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빈민가에 살면서도 “너는 최고가 될 거야!”라고 말했다. 근근이 살아가는 상황에서 경제가 조금만 나아 저도 성공한 상류층 사람들의 행동 양식을 몸소 배울 수 있도록 춤, 노래, 예절, 언어 등 최고의 교육을 시킨다.      

아들의 성공적인 삶을 종교처럼 믿었으며, 홀로 자식을 키워내기 위해 거짓말도 하고 사업을 키워 생계를 이어 나갔지만 자신은 굶을지언정 아들의 허술한 식사는 용납하지 않았다.    



세계 3대 문학상 ‘공쿠르상’ 2회 수상, 프랑스를 대표하는 천재 작가의 숨겨진 이야기!     

가난과 모멸 속에서도 아들의 성공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 ‘니나 카체프’

그녀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치열하게 글을 쓰기 시작한 ‘로맹 가리’



폭격이 쏟아지는 2차 세계대전 속 단 하나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역사상 최고의 소설을 써 내려가는데…     

천재가 되고자 한 아들, 천재를 키워낸 여인. 두 사람이 써내려 가는 위대한 역사가 시작된다!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어머니와의 애틋한 추억이 가득한 성장기부터, 작가로 성공하기까지의 가리와 어머니의 관계가 대하드라마처럼 펼쳐진다. 세계적인 스타, 샤를로트 갱스부르와 떠오르는 별, 피에르 너네의 호흡이 볼 만하다. (2017년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 영화 홍보 화면에서 캡처




작가는 어머니의 삶의 목적인 성공을 보여주기 위해 하루 열한 시간까지 글을 썼다고 한다. 어머니의 염원 같은 주문처럼 성공하기 위해 온몸으로 노력하며 살아내야 했다. 어찌 보면 허언 같았던 어머니의 꿈들을 끝내는 모두 이루는 기적을 실행한다. 



어머니가 자신의 죽음을 아들에게 알리지 않고, 죽은 후에도 250여 통의 편지를 받았다고 하는 부분에서 작가의 어머니의 열정에 탄복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아들이었고, 연인이었으며, 종교처럼 사랑했고 믿고 의지했던 아들을 두고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던 어머니의 삶이 눈물겹다.



"나는 최선을 다하여, 즉 불후의 걸작을 써내려 노력함으로써 어머니를 도왔다. 가끔 특히 자랑스러운 몇 구절을 어머니에게 읽어주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한 번도 빠짐없이 내가 기다리던 감탄을 표해주었다. " (166p) 



담담하게 이런 구절을 읽으면서 나는 누군가를 이토록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끝까지 믿고 지지해 준 적이 있었던가? 또는 반대로 누군가가 나를 한없이 믿어주고 용기를 주었던 사람이 있었나 생각해 보았다. 큰 감명을 주고 인기를 누렸다는 영화 [새벽의 약속]도 꼭 찾아서 보고 싶다. 눈물을 흘리지 않고 볼 자신은 없어서 손수건을 미리 준비해야겠다.



* 2023년 7월 26일  "YES24 주간 우수리뷰"에  선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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