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한 편 (17).
매일 시 한 편씩 올리다 보면, 금방 한 권의 책을 읽게 되겠지요?
첫 번째 책은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창비-2024)입니다.
화음을 어떻게든
박라연
어머니! 겨울이 코앞이네요
저는 세상이 모르는 흙, 추운 색을 품어 기르죠
길러낸 두근거림을 따서 바칠게요
개나리 다음엔 수선화 그다음엔 꽃잔디로 붉게
채워질 때쯤 눈치챌까요?
꽉 찬 이 두근거림을
여울진 꽃잔디에 목이 더 길어진 수선화는
군락으로 번지며 나비처럼 날아요 시름을
찾아내 바뀌치기하죠
허기의 틈새에서 팬지가 올라오면 튤립은 붉은
아침을 함께할 수 있을까요 어머니
고요를 열고 일터의 얼룩과 서로의 석양을
어루만져요
붓꽃의 기품이 당신 키를 찾아내면
양귀비 떼가 소나기처럼 몰려올까요? 꽃들이
속속 열리고 일렬종대와 일렬횡대로 색색으로 깔깔대며 밥상을
차려요 어머니! 섞이며 이동하는 저 동작들의
눈부심을 마셔요 누구나
화엄은 너무 멀겠죠? 화음이라도
어떻게든 보여주려고 사람 몸에 꽃을 보내신 것
나팔꽃 채송화 분꽃으로 와서 가늘고 낮은
야근하는 손을 잡는 것
그 마음 그대로 가을에게 넘겨줄래요
눈시울 붉어진 백일홍을 보면서 느껴요 가을의
꽃은 가장 먼 곳부터 두근거리는 가을 햇살인 것
근심을 씨앗으로 바꾸는
저 해바라기 그늘 아래서는 세상을 더는
욕하지 않을래요
어머니
* 마음을 붙잡은 한 문장
화엄은 너무 멀겠죠? 화음이라도 어떻게든 보여주려고 사람 몸에 꽃을 보내신 것
(화엄경, 세상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어서 그냥 일어나는 일은 없다는 연기설을 바탕으로 한 불교 경전이다. 꽃들이 이어달리기를 하듯 계절을 주고 받으며 다투어 핀다. 낮은 것을 향해 손 내미는 마음, 고단한 이를 걱정하는 마음 그 마음이 꽃마음일까? 화엄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나라,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 화음이라도 만들어 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