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찬
오늘의 시 한 편 (33).
매일 시 한 편씩 올리다 보면, 금방 한 권의 책을 읽게 되겠지요?
첫 번째 책은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창비-2024)입니다.
“내가 사랑한다고 말하면
다들 미안하다고 하더라”
황인찬
공원에 떨어져 있던 사랑의 시체를
나뭇가지로 밀었는데 너무 가벼웠다
어쩌자고 사랑은 여기서 죽나
땅에 묻을 수는 없다 개나 고양이가 파헤쳐버릴 테니까
그냥 날아가면 좋을 텐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날 꿈에는
내가 두고 온 죽은 사랑이
우리 집 앞에 찾아왔다
죽은 사랑은
집 앞을 서성이다 떠나갔다
사랑해, 그런 말을 들으면 책임을 내게 미루는 것 같고
사랑하라, 그런 말은 그저 무책임한데
이런 시에선 시체가
간데온데없이 사라져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다음 날 공원에 다시 가보면
사랑의 시체가 두 눈을 뜨고 움직이고 있다
* 마음을 붙잡은 한 문장
그냥 날아가면 좋을 텐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마주하기 싫은 일이나 사람, 말들은 많은 피로감을 준다. 심지어 그로 인해 심리적 아픔을 겪는 사람들도 알고 있다. 그런 일들이, 그런 사람이, 그런 말들이 ‘그냥 날아가면 좋을 텐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롯이 감당해 내야만 하루가 가고, 삶이 살아지는 사람들도 안다. 세상에 모든 나쁜 것들은 그냥 어디론가 날아가버렸으면 좋겠다.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