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재
오늘의 시 한 편 (34).
매일 시 한 편씩 올리다 보면, 금방 한 권의 책을 읽게 되겠지요?
첫 번째 책은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창비-2024)입니다.
낭만의 우아하고
폭력적인 습성에 관하여
이영재
봄입니다 봄을 비약한
봄입니다 끝자락에서 시작되는 이 지나친 화려, 식상한 파
라솔 앞에도 슈퍼 앞에도 바나나우유 앞에도 우아하고 불안
한 인류가 봄에 등을 기댄 채 낄낄댑니다 베껴진 쓸쓸을 흥
분하다가도 아름다운 시대였지, 아름답다고 평가할 시대였
어 역시
봅입니다 봄 주변으로 여리고 부드러운 들개 한마리가 와
앉습니다 검고 환한, 새끼예요 너는 야생에서 왔니 친구들
은 서로의 머리를 위태로 쓰다듬고, 온순입니다 들개를 순
화하는 들개, 야생이 궁금해 야금야금 들개를 먹은 인류의
몸은 펄펄 끓습니다 막대 하드로 속을 식혀도, 주체를 주체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서요
봅입니다 들개들이 옵니다 울음으로 환함으로 황량으로 무
리를 지어 멀리를 통해 들개는 어두운 납득입니다 여태의
봅입니다 인류가 함께 파라솔을 접고 사다리를 밟아 슈퍼지
붕에 오르면
봄입니다 노을이 있었네, 그러게, 그러니까, 그러네
봄입니다 흐트러진 각자의 낭만을 노을로 비약하지 않기로
합니다 한 무리의 들개들이 지붕을 둘러싸고 노을을 둘러
싸고 펄펄 끓는 비약은 어떤 정서라고 하지 않습니다 짖습
니다 짖어요 들개 무리는 꼬리를 흔들고 인류 무리는 손부
채질을 해보지만, 사람의 두려움은 사람의 두려움과 총량이
같습니다 그 어떤 이상도 존재하지 않는
봄입니다 비타민을 삼켜봅니다
봄입니다 비타민을 삼켜요 서서히 녹는 비타민은 노을보다
연약합니다 노을은 과도해지고 사랑해지고, 식상한 파라솔
은 여전히 지붕 아래입니다 작아 보여요 작은 들개도 들개
주변의 들개도, 어마어마하게 왜소한 들개들입니다 들개들
이 쓰는 일본어를 들었는데 아름답습니다 아름답다라는 중
국어를 엿들었는데 아름다워지고 맙니다 인류는 관계로 낄
낄대고요 온전한 낭만에 갇힌
봄입니다 한마리의 들개는 소실점이 아닙니다 두마리의 들
개도
봄입니다 속은 뜨겁고 비타민은 녹고, 빛을 삼키고 왕왕 번
지는 어둠마저
봄입니다 팔을 꿰고 앉은 인류는 낭만을 비약합니다 도망치
지 않았다고 파라솔은 위를 가리킵니다 송곳니에 찢어지는
파라솔의 식상도 좋고 사라진 들개를 추억으로 해대는 것도
좋아, 비약된 사랑도 이뤄질 것만 같은
봄입니다 훈련된 키스를 절반으로 나누고 앞발을 순서대
로 저곳으로 이곳으로, 이곳의 들개들은 휘파람입니다 남
해의 습하고 더운 바람으로 기쁨이 식어도 기쁨이 식지
않는
봄입니다 노을이 없고 밤이 없고 바닥이 없어 어둠에 둥둥
뜬 지붕이 홀로 봄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외로움은 없길 바
라요 봄은 둘 이상의 중독이었다가 둘 이상의 습성을 조련
했다가도 봄은 봄이라도 되는 것처럼
봄입니다 색상 밖의 비타민을 삼키면
봄입니다 갔나, 갔을까, 어둠의 소실점은 번복으로 사라집
니다 속은 뜨겁고 들개들이 있던 봄은 왕왕, 완연입니다 사
다리를 밟아 지붕을 내려가면, 중력은 그대로고요 찢긴 파
라솔 틈으로 속상한 아침노을마저 비약해봅니다 널브러진
쓰레기는 우리를, 사랑을 낄낄댑니다 왠지 슬프다
봄입니다 나도 왠지
봄입니다 왠지 시작되는 사랑, 그 어떤 사랑보다 편협할, 우
리가 시작하는 힘으로 가할 폭력적인 사랑의
** 마음을 붙잡은 한 문장
없음
(이 긴 시에 한 마디라도 말을 덧붙이는 것이 폭력이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