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민
오늘의 시 한 편 (43).
매일 시 한 편씩 올리다 보면, 금방 한 권의 책을 읽게 되겠지요?
첫 번째 책은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창비-2024)입니다.
무현금(無絃琴)
박승민
그러고도 한참을 더 숨을 고른 뒤에야 바람의 환부(患部)
를 조심스레 눌러봅니다.
닿는다는 건 자주 바뀌는 당신 마음의 일생을 따라 걷는
일인데, 알 수 있을 것 같았던 그 마음까지도 모르겠네, 이젠
도통 모르겠네, 투덕거리며 자꾸 당신 쪽으로 귀를 조금 더
기대어놓는 일인데, 이쪽으로 되넘어오는 찌그러진 마음의
대야를 펴서 다시 전해보는 일인데……
이번에는 어떤 화성학도 흉내 내지 않았습니다. 수백번을
꼬아서 만든 명주실의 소리들도 끊어버렸습니다.
마지막까지 참아내던 들숨의 현(絃)이 자신도 어찌하지
못하고 허공을 끊고 터져나갈 때, 그 순간의 단심(丹心)만을
생각하며 다시 어두워지는 구름의 공명통 속으로 올려 보냅
니다.
한생이란 답장이 오기엔 너무 짧은 거리, 어느 늙수그레
한 어둠이 붉은 나뭇잎 사이로 빠져나갈 때, 더 어두워져버
린 낡은 귀를 이번에는 아닐 거야, 아닐 거야 하면서 잠시 열
어두기는 하겠습니다.
* 마음을 붙잡은 한 문장
(무현금(無絃琴)을 탄다는 말이 있다. 무현금은 줄이 없는 거문고를 말한다. 도연명은 무현금을 가지고 있었는데 술자리가 끝나고 그윽하게 취하면 그 거문고를 탄다고 했다. 어떤 기록에는 손으로 어루만져 뜻만 부쳤다고도 하고, 이백은 ‘오묘한 소리가 절로 곡조를 이뤘는데, 단지 줄이 없는 거문고를 탔었네.’라고 노래했다. 꼭 소리가 나서 노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귀로 듣는 소리보다 마음으로 듣는 소리가 더 진실일 수 있다. - 영주시민신문 ‘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에서 발췌
한 생을 넘어 다음 생에까지 마음에 둔 당신을 기다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미 정해진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인지, 마음에 맞는 사람을 기다린다는 것인지. 마음의 요동을 누르고 있는 간절한 그리움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