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연
오늘의 시 한 편 (41).
매일 시 한 편씩 올리다 보면, 금방 한 권의 책을 읽게 되겠지요?
첫 번째 책은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창비-2024)입니다.
슈톨렌
안희연
“건강을 조심하라기에 몸에 좋다는 건 다 찾아 먹였는데
밖에 나가서 그렇게 죽어 올 줄 어떻게 알았겠니”
너는 빵″을 먹으며 죽음을 이야기한다
입가에 잔뜩 설탕을 묻히고
맛있다는 말을 후렴구처럼 반복하며
사실은 압정 같은 기억, 찔리면 찔끔 피가 나는
그러나 아픈 기억이라고 해서 아프게만 말할 필요는 없다
퍼즐 한조각만큼의 무게로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 퍼즐 조각을 수천수만개 가졌더라도
얼마든지 겨울을 사랑할 수 있다
너는 장갑도 없이 뛰쳐나가 신이 나서 눈사람을 만든다
손이 벌겋게 얼고 사람의 형상이 완성된 뒤에야 깨닫는다
네 그리움이 무엇을 말들었는지
보고 싶었다고 말하려다가
있는 힘껏 돌을 던지고 돌아오는 마음이 있다
아니야 나는 기다림을 사랑해
이름 모를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는 마당을 사랑해
밥 달라고 찾아와 서성이는 하얀 고양이들을
혼자이기엔 너무 큰 집에서
병든 개와 함께 살아가는 삶을
펑펑 울고 난 뒤엔 빵을 잘라 먹으면 되는 것
슬픔의 양에 비하면 빵은 아직 충분하다는 것
너의 입가엔 언제나 설탕이 묻어 있다
아닌 척 시치미를 떼도 내게는 눈물 자국이 보인다
물크러진 시간은 잼으로 만들면 된다
약한 불에서 오래오래 기억을 졸이면 얼마든 달콤해질 수
있다
″슈톨렌.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매주 한조각씩 잘라 먹는 기다림의 빵.
* 마음을 붙잡은 한 문장
사실은 압정 같은 기억, 찔리면 찔끔 피가 나는
그러나 아픈 기억이라고 해서 아프게만 말할 필요는 없다
(만성 신경성 편두통으로 시달린 지가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둘째가 아프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두통도 시작되었던 것도 같고... 보름에 한 번쯤 지끈거리기 시작하면, 타이레놀을 두 알씩 네 끼 정도는 먹어야 나아질 만큼, 내 고질병은 커졌다. 설날, 오후부터 아프기 시작한 두통이 하루를 넘겨도 가라앉지 않아서 응급실을 찾았다. 뇌 CT도 찍어야 하고, 진통제와 수액을 맞아야 해서 혈관에 큰 바늘을 꽂아야 했다. 압정 같은 고통의 시간을 거쳐 응급실을 나왔다. 내일 신경과를 예약해 놓았다. 살면서 이런 아픔쯤은 아무것도 아니게, 압정보다 더 아픈 일들이 많았지. ‘그러나 아픈 기억이라고 해서 아프게만 말할 필요는 없다’라고 시인은 말했다. 지나간 것들은 아름다운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