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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원의 봄날

by 민휴

[25.3.30]


프럼코트 꽃이 피었다. 남편이 가지치기를 너무 야무지게 해 버려서 결과지 없이 본가지에 다닥다닥 꽃이 핀 것은 아닐지 합리적인 의심을 해 보지만, 확신이 있는 것인지,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인지, 남편은 동의하지 않는 눈치다. 그저, 꽃이 너무 예뻐서 사진 찍기 바빴다. 조금 멀리서 보거나, 조금 거짓말을 보태면, 가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꽃이 꽉 차게 피었다.



복숭아나무는 금방 꽃이 피려고 꽃봉오리를 오므리고 있다. 이번 꽃샘추위가 지나면, 다음 주에는 복숭아꽃이 활짝 필 것 같다. 올해는 나무들이 작년보다 더 자라서 꽃들이 더 많이 필 거라 기대하고 있다.




[25.3.28.]




텃밭에서 야채들을 수확했다. 겨울에 죽은 줄 알았던 상추들이 손가락만큼 에서 손바닥만큼씩 커지고 있다. 봄은 그런 것이다. 죽었던 것들도 살려 내는 것. 아니, 흙이 품고 있던 것들을 깨어나게 하는 것. 농부가 되기 전에는 매번 친정엄마가 채소들을 길러서 주셨다. 내가 농부가 되고부터 내가 기른 채소들을 가끔 엄마께 가져다 드린다. 오늘은 상추, 배추, 쑥갓, 아욱이다.



"엄마! 텃밭에서 장 봐 왔어요~~"



화들짝 놀라며 반색하신다. 미리 전화를 드리고 갔어도 한 바구니 가득한 채소가 반가우신 모양이다. 싱싱한 야채들보다 우리 엄마 미소가 더 환하고 싱그럽게 느껴진다. 채소들을 안겨 드리고, 뜨끈한 백설기를 한 덩이 얻어 왔다. 점심에 드시려고 밥솥에 넣어 두었던 백설기다. 엄마 드시라고 사양했건만, 떡보인 식구들의 훌륭한 간식이 될 거라 기어코 들려주신다. 또 있다고, 많이 먹었다고 하시는 그 말씀을 믿기로 한다. 엄마가 주신 사랑으로 힘이 나는 봄날이다~♡





[25.3.29.]




블루베리 나무들에 이파리가 모두 나오고, 열매가 달리기 시작하면, 화분이 꽉 차고 통로까지 펼쳐지게 된다. 열매의 무게 때문에 나무들이 아래로 쳐지면서 통로가 사람이 다니기 불편해진다. 열매를 건드려서 떨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블루베리를 딸 때도 화분의 풀을 매 줄 때도 통로가 복잡하면 곤란하다. 열매들이 떨어지기도 하고, 나무가 꺾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우스 파이프를 화분의 측면에 고정하고 와이어로 나무들이 화분 바깥으로 나오지 않도록 해 줘야 한다.



작년부터 설치하라는 전문가의 조언을 들었지만, 너무 바빠서 미뤘던 작업이었다. 올해는 나무들이 더 성장했기 때문에 더 이상 미루기 어렵게 되었다. 멀리 사시는 지인이 하우스를 철거한 파이프가 있다고 가져가라고 했다. 직접 그라인더로 절단해서 트럭에 실어왔다. 둘째까지 동원되어 네 시간 넘게 작업했다. 블루베리 하우스에서 또 다른 대공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낮에 멀리서 작업을 하느라 오후 6시 38분에 농원에 도착했다. 하우스 속에 온도가 2.2도까지 하강했다. 최하 영상 5도로 관리하라는 전문가의 특명이 있었는데 비상이다. 난방기를 온도를 10도로 맞추고 가동했다. 온도를 10으로 올린 후, 난방기 온도를 5도로 설정해 놓고 퇴근할 계획이다. 난방기가 설정해 놓은 온도에서 스스로 멈추는지 확인하려고 10도까지 올라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30분 정도 가동하니, 온도가 10도 가까이로 상승 중이다. 10도 부근에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총 한 시간이 넘게 계속 돌고 있다. 바깥기온이 더 빨리 내려가고 있어서 난방기가 그 온도를 따라잡기가 어려운 것 같다. 자연의 온도를 붙잡아 두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오후 4시~5시에는 하우스 창을 모두 닫아야 할 것 같다. 난방비를 절약하기 위한 최적화된 방법을 우리 농장에 맞게 찾아야 한다. 난방기가 11도에서 멈췄다. 이제 안심하고 퇴근한다. 오늘 밤, 꽃샘추위를 잘 견뎌주길 기도하며~~




[25.3.30.]




농원을 지켜 줄 3개월 된 진돗개가 왔다. 남편 친구인 수의사께 부탁했더니, 데려왔다. 이름은 "지니"라고 지었다. 요술램프를 문지르면, 소원을 들어주러 나오는 신비한 "지니". 진돗개니까, "진이"를 발음하기 편하게 "지니"라고 지었다. 지니는 수캉아지다.



농원의 보온 비닐 위를 걸어 다닌다. 집안에서 자라던 반려견이라서 발바닥을 디딜 때, 바닥보다 비닐 쪽이 더 부드러운 모양이다. 우리들도 딛지 않은 길을 지니는 당당하게 걷는다. 지니 카펫이라고 이름 붙였다. 둘째가 무서워하기도 하고, 집안에서 길러 본 적이 없어서 농원에 두려고 했는데, 지니가 내 곁을 빙빙 돌며 나를 따라다닌다. 이 예쁜 지니를 어떻게 농원에 혼자 두고 올 수 있을까.



너무 어려서, 너무 예뻐서 집으로 데려가고 있다. 둘째와 어떻게 친해지게 만들지 큰 고민이다. 당분간은 우리가 농장을 오갈 때마다 데리고 다녀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지니는 우리 집에서 두밤을 잤다. 조금 자고 일어나 시끄럽게 한다. 심심하다고, 안아달라고 한다. 처음 왔을 때는 혀로 핥던 지니가 이가 나려 그러는지 입을 벌리고 물려고 한다.


둘째는 무섭다고 근처에도 못 오고 아예, 식탁이나 조리대에 올라가서 내려오지를 못한다. 한밤중에 소리 지르고 뛰는 지니를 층간소음이 걱정돼서 그냥 농장에서 키우기로 했다. 둘째는 너무 무서워하고, 나는 아래층이 걱정되어 지니를 달래느라 잠을 잘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25.4.1.]




감자를 심어 놓고, 싹이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비닐로 감자를 심은 두둑을 덮어 놓았기에 싹이 올라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웠다. 지난주부터 두둑의 비닐 멀칭이 살짝 들려지는 게 보였다. 꽃샘추위가 지나가면, 비닐을 뚫어주려고 기온이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부터 날씨가 풀려서 비닐을 뚫어 주었다. 그런데... 첫 줄에는 싹이 잘 나왔는데, 다른 줄들에는 없다. 땅속에서 싹이 늦게 나온다면 기다리면 되는 일인데, 감자가 있어야 할 자리마다 움푹 패어있고, 씨감자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4kg 두 상자를 심어서 족히 20여 평은 될 감자밭이다. 감자를 심은 다음에 바람이 심해서 비닐이 들려져 나풀거릴 때가 있었다. 그쪽으로 들어가서 감자를 파 먹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범인이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다.



씨감자를 수소문해서 다시 심기로 했다. 지금처럼 날씨가 풀리면 비닐 멀칭을 하지 않고 싶어도 된다고 한다. 최 회장님은 이 시기를 놓치면 정말 감자를 심을 시기가 지나 버린다고 재촉하신다. 4월 3일이 화순장이라고, 평소에 거래하시는 상회까지 전화를 걸어서 재고를 확인하고 주문까지 해 주셨다. 화순장으로 달렸다.



감자싹이 노랗고 예쁘다. 오늘, 대한민국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날이다. 상식과 원칙과 정의가 살아있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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