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생에 가장 절박했던 10분

말벌 주의보

by 민휴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것도 절박했던 순간이. 뒤돌아 보면, 출산은 그리 힘들지 않았던 것 같다. 10달 전부터 출산의 고통을 차츰차츰 짐작해 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하늘이 노래야 아기가 나온다는 말처럼 정말 숨이 멎는 것 같은 고통의 순간이 있었다. 나는 최근에 겪은 또 다른 절박한 순간을 말하려 한다.



25.8.17.

새벽부터 복숭아를 따서 선별작업을 마치고 택배까지 다녀 간 시간이 오후 4시경이었다. 남편은 무거운 복숭아 상자를 나르느라 힘들었는지 조용히 쉼터로 들어갔다. 우리가 병관리를 잘 못해서 상처가 있는 복숭아가 많아 주문받은 물량을 맞추지 못해 속이 상한 터였다.



남겨진 복숭아들이 너무 아까웠다. 씻어서 상처 부분을 도려내고 냉동실에 두었다가 주스라도 갈아먹으면 좋겠다 싶어서 선별작업을 했던 은행나무 아래 평상에서 수도시설이 있는 하우스로 모두 옮겼다. 박스와 포장 장비들, 복숭아를 싼 종이 등을 창고로 모두 옮기고 청소를 마치고 지쳐 있을 때, 남편이 밖으로 나왔다.



"나를 부르지 왜 혼자 했어?"

"부르기는 뭘 불러요. 빨리 끝내야지."

지칠 대로 치친 나는 뭐라 더 말하기도 귀찮았다. '내가 보이지 않으면, 혼자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짐작했을 텐데 잠이 들었나 보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빨리 복숭아를 정리하고 쉬고 싶었다. 복숭아 알레르기 때문에 온몸이 가려웠다.



커다란 통에 복숭아를 넣어 씻고 있을 때, 남편이 수도꼭지를 틀고, 내가 씻어 놓은 복숭아를 한 번 더 헹구려고 물을 뿌렸다.

"아야! 뭐가 무네."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할 일을 계속했다. 크고 통통한 벌이 날아가는 것이 보인다.

"병원에 갑시다."

나는 당장에 병원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몇 년 전, 시부모님 산소 벌초를 하다가 말벌에 쏘인 기억이 있었다. 남편은 두 군데였고, 나는 남편을 쏘는 말벌을 쫓으려고 달려들었다가 한 군데를 쏘였다. 잠깐 사이에 머리가 핑 도는 것이 느껴졌다. 급하게 차를 운전해서 병원에 도착해 주사를 맞고 진정했었다.



"뱃살에 비계가 많으니까, 거기를 쏘였으니까 괜찮을 거야."

남편은 웃으면서 농담을 했다.

"아니라고, 당장에 병원에 가야 한다고!"

다급하게 목소리를 높이는 내 말에도 별 반응이 없던 남편이 금세 어지럽다며 의자에 앉는다. 빨리 병원에 가자고 남편 앞에 섰다.

"그럴까?"

화순에 나가서 주사나 맞고 오자는 생각이었다. 남편은 먼저 차에 갔고, 난 윗옷 하나만 재빨리 갈아입었다. 선별장에 있는 둘째를 혼자 두고 가야 하나 싶어서 아주 잠깐 망설였는데, 남편이 "빨리 와!"라고 재촉한다.

"금방 올 거니까 둘째는 두고 가세!"

나는 운전석에 앉았다. 1분쯤 운전해 갔는데, 남편이 "어지럽다, 눈앞이 잘 안 보인다"라고 말하며 고개를 스르르 의자에 묻는다.



남편이 이상하다. 운전하면서 당장 전화기를 찾아 119를 눌렀다. 남편은 고개를 옆으로 내려 뜨리고 침을 흘리며 발작을 했다. 쇼크 증상이다.

"남편이 말벌에 쏘였는데, 이상해요. 의식을 잃어가요."

우여곡절 끝에 119를 화순에서 만났다.

"어레스트예요."

맥을 짚던 대원이 말한다. 다른 분이 다시 맥을 짚더니 "아직 잡혀요"라고 말한다.

눈앞에서 남편이 죽었다가 살아난 것이다. 세 명의 구급대원들이 축 늘어진 남편을 119 구급차로 옮겼다.

구급차를 바짝 뒤따르고 있는데, 길가에 차가 멈췄다.



"그렇게 바짝 따라오시면, 2차 사고 위험이 있으니, 천천히 오세요. 아직 병원이 특정되지 않아서 광주 쪽으로 가고 있어요."

신신당부를 한다. 남편은 차 안에서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따라오지 말라니. 울면서 빨리 병원을 가자고 보챘다.

"남편 분, 의식 돌아와서 말도 하고 있으니까 안심하셔도 돼요."

구급차가 병원을 정하지 못해 길가에 정차해 있을 때, 남편의 얼굴을 봐야겠다고 말했다. 내가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남편이 알아야 안심할 것 같았다. 남편은 눈은 뜨고 있었으나, 몸에는 힘이 없어 보였고, 산소호흡기와 링거를 꽂고 있었다. 남편에게 내 얼굴을 보여주고, 손을 잡고, 이마를 짚어주고, 내가 따라가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알렸다. 둘째는 동생이 데리러 갔다는 말도.



큰 병원에서는 작은 병원에서 조치를 하고 오라고 하고, 작은 병원에서는 능력이 안된다고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한다. 구급차가 어디 병원으로 가야 할지를 몰라 헤매고 있다. 동생이 있는 병원이 종합병원이라고 알려 줬는데도 거기서도 안 받는다고 했단다.



우여곡절 끝에 남편은 응급실에서 2 시간 넘게 안정을 취하고, 준중환자실에서 이틀 정도 경과를 보고 일반병동으로 옮긴다고 한다. 오늘은 응급실에서 병동으로 올라온 첫날이라 보호자가 곁에 있어야 한단다. 농장에 혼자 두고 온 둘째는 여동생 부부가 병원까지 데려다주고 밥도 사 먹이고 했었다. 병원에서 자려고 했는데, 둘째가 집에서 자고 싶다고 심하게 보채서 집에 데려다주고 왔다.



오늘 떨었던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진정이 안된다. 당연히... 경과가 좋아서 완쾌하기를 바란다.


농장이고, 집이고, 병원이고 내가 다 완벽하게 지킬 테니, 남편은 건강하게 일어나기만 하면 될 것 같다.




다음날, 남편이 팔을 움직인다.

"여보! 무슨 일이야? 어디 불편해요?"



남편이 등을 돌린다.

"여보! 허리 아파요? 아니면, 어깨 아파요?"



남편이 밥을 먹다 숟가락을 놓는다.

"여보! 밥맛이 없어요? 다른 거 뭐 사다 줄까요?"



동생은 언니가 형부를 살렸으니, 형부가 언니한테 엄청 잘해 줘야 한다며 웃는다.

농원으로, 병원으로, 집으로 일인 삼역을 해내며 사방으로 쫓아다니는 나를 보며 "그러다 언니가 쓰러진다"라며 걱정이 태산이다.



남편은 벌에 쏘인 후, 내가 운전하는 차의 보조석에 타서 의식을 잃은 후,

구급차로 옮겨서 의식을 되찾을 때까지 10분 가까운 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절박했던 10분은 오롯이 나 혼자서 감당해야 했었다. 이대로 남편이 저 세상으로 갈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 어떻게 든, 쓰러져가는 남편을 다시 일으켜야 된다는 생각에 왼손으로는 운전하고, 오른손으로는 심장을 두드리고, 손을 주무르고, 소리쳐 부르며 차를 달렸다. 어떻게 해서든 구급차를 만나야 된다는 생각이었다. 평생 동안 내가 배운 응급상식을 총동원했던 시간이었다.



무어라 말로 표현하기도 어려운 그 순간을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진 듯 박혀 있을 것만 같은 그 기억 때문에 나는 지금, 남편을 애기 다루 듯 대하고 있다. 그 순간이 전혀 기억에 없는 남편은 나의 반응에도 그냥 무심하다. 퇴원하려고 했더니, 벌에 쏘인 자리에 농이 차고 주변이 단단하게 부어서 냉찜질과 항생주사를 맞고 하루 더 입원하고 있다.



내일은 퇴원이다. 조금 더 지켜보련다. 계속 왕 노릇을 하려고 하면, 조용히 말해 줘야지.

"내가 당신을 두 번이나 살렸다고!"



[남편은 오일 만에 무사히 퇴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25화햇살채움농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