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8.31. 여름을 보내며]
복숭아나무 묘목에 개복숭아 나무가 두 그루 섞여 들어왔다. 똑같은 품종으로 바꿔서 심어야 하나 생각도 했지만, 개복숭아 나무가 수분수 역할을 한다고 해서 그냥 두었다. 매실만한 열매가 여태 달려 있었다.
개복숭아 효소는 기관지 건강 개선, 면역력 향상, 피로 해소, 변비 개선, 혈액순환 촉진, 피부 미용, 노화 방지, 노폐물 배출, 혈압 관리 등에 도움을 준다고 해서 효소를 담그려고 모두 따냈다. 매실 진액을 담는 방법대로 씻어서 물기를 빼고 설탕을 부어 두었다.
팔월의 마지막 날이다. 유난히도 다사다난했던 뜨거운 여름이었다. 올해 여름은 나에게 초반부터 난이도를 올려가며 어려운 미션을 해결해야 하는 시험장 같았다. 5월 말부터 시작한 블루베리 수확을 시작으로 복숭아 작업과 수확이 이어졌다. 어디에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거짓말처럼 8월 31일인 오늘, 복숭아 만생종까지 최종 수확을 했다.
복숭아 열매의 봉지를 싸 줄 무렵부터 물 주기를 했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6월에는 비도 거의 내리지 않았고, 당시에는 복숭아밭에 관수관비 시설도 되어있지 않은 터라서 물을 줘야 한다는 것을 알았어도 별 뾰족한 수도 없었다. 그런 이유로 복숭아가 크게 자라지 못했다. 수확을 앞둔 시기인 7월 초에야 관수관비 시설을 마쳤기 때문에, 내년에는 이런저런 실수들을 없애고, 복숭아를 아주 잘 키울 계획이다. (ㅎㅎㅎ)
마지막 작업하는 날, 오후에 비가 내렸는데도, 내 얼굴에는 땀이 비처럼 흘러내렸다. 새벽부터 수확, 선별하고 택배 회사의 상차 작업 최종 마감시간에 겨우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하루가 너무 힘들어서 쓰러질 것 같았다. 허청허청 내가 땅에서 살짝 떠 있는 것처럼 발이 땅을 밟는 느낌이 없었다. 온몸이 무거워서 쳐지면서도 이런 느낌은 처음이다. 지나간 3개월을 진액을 빼며 살았던 것 같다. 우리 농사 중 가장 바쁜 계절이 여름이라는 것은 농부 5년 차에인 올해서야 처음 알았다. 본격적인 수확의 첫 해라서...
거실 한쪽에 진액을 담고 있는 개복숭아가 몸을 홀쭉 줄여가며 향과 함께 진액을 뿜어 내고 있다. 설탕이 녹으면서 삼투압현상으로 개복숭아의 몸피가 쪼글쪼글 해지고 있다. 매실 진액을 담글 때도 그랬다. 설탕이 다 녹을 때까지 저어 주다가 나중에 큰 병에 담아야 해서 설탕을 젓다 보면 매실 열매가 쪼그라들며, 온 살을 덜어내고 앙상한 뼈 같은 씨만 남는다. 내 휘적이는 듯한 몸에서도 달콤한 진액이 빠져나왔으려나... 맥락 없는 생각을 해보는 그런, 여름의 마지막 날이다.
난 가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내일부터 행복하려고 한다. 둘째가 아침에 했던 말이 떠 오른다.
"엄마! 9월부터 가을이지요?"
맞아! 9월부터 진짜 가을이면 좋겠다.
[25.9.2. 풀 뽑기 좋은 날]
비 온 다음날은 풀 뽑기 좋은 날이다. 구월의 첫날이라 그런지 날씨도 선선하고 바람도 많이 불었다. 은행나무 아래 평상에서 남편은 유튜브에 빠져 있다. 하염없이 풀을 뽑고 있는 내게 그만하라는 말만 수차례... 뽑아도 뽑아도 보이는 풀이다. 큰 풀을 뽑으면 어김없이 자잘한 풀들이 이때다 싶게 쑥쑥 자라난다.
그래서 풀은 못 이긴다는 말이 나온 모양이다. 손도 무릎도 허리도 너무 아파서 백기를 들고 풀 뽑기를 그만두었다. 두 군데는 좀 깨끗해졌는데, 한 군데가 또 남았다. 어디 한 군데뿐이랴~~ 이 몸을 홍길동처럼 나눠서 풀을 뽑으라고 파견 보내고 싶은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님을~~
풀들아! 그러나 가을이 오고 있단다~ 조금만 더 네 세상을 즐기렴. 구월의 첫날이라 내 마음에도 여유라는 공간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