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나무들처럼

by 민휴


[지성감천(至誠感天) : 지극한 정성은 하늘을 감동시킨다는 뜻으로, 무슨 일에든 정성을 다하면 아주 어려운 일도 순조롭게 풀리어 좋은 결과를 맺을 수 있다는 말.]



블루베리 하우스 안에서 나무 이파리를 따는 작업 중이다. 블루베리 이파리를 따내는 일은 블루베리 나무를 이발시키는 것도 같고, 청소하는 것 같기도 하다. 더 자세히는 목욕을 시키는 것 같다. 먼지를 털듯 나무를 흔들면 낙엽과 먼지들이 실제로 떨어지니까. 벌레집도 떼어주고, 전정가위로 마른 가지를 잘라주고, 엉킨 가지를 바르게 해 준다. 나무 이파리를 모두 따낸 나무들은 방금 목욕을 마친 것처럼 말쑥해진다. 한 줄씩 도열한 벌거숭이 나무들은 아름답게 보인다.



구순을 넘기신 시어머니는 하반신 마비셨다. 목욕을 시켜드리려면 등뒤에서 깍지를 끼어 끄는 방식으로 목욕탕까지 이동했다. 물을 적당한 온도로 맞춰 적시고, 온몸을 구석구석 닦아 드리면, 여느 때처럼 입가에 미소를 물고 내게 몸을 맡기고 계셨다. 목욕을 마치고, 물기를 닦아 드라이어로 머리까지 말리고, 온몸에 로션을 발라 드리면


"우리 언니지라우?"라고 물었다. 치매기로 며느리를 기억 못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블루베리 나무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내게 무슨 말을 할까? 스스로 떨치지 못하는 이파리를 따 줘서 고맙다고 할까? 벌레 때문에 가렵고 답답했는데, 치워 줘서 고맙다고 말할까? 말라 들어온 나뭇가지 때문에 신경 쓰였는데 제거해 줘서 좋다고 할까? 간지러웠다고 조심해 달라고 할까? 아니, 시어머니처럼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엉뚱한 말을 할지도 모른다.



아무런 말소리가 들리지는 않지만, 이파리가 없어진 가지마다 꽃눈이 선명하게 드러나서 대답처럼 반갑다. 80 도로에서 60에 달리는 차를 따라가다가 옆차선이 뚫려서 추월했을 때처럼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린다. 고수리 작가의 에세이집 [선명한 사랑]이 떠오르는 지점이다. 내 손으로 정성껏 매만진 것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선명한 사랑인 것이다. 내 마음의 티끌까지도 싹싹 쓸어 낸 것처럼 다시, 살아갈 힘이 솟는다. 아름다운 나무들처럼 깨끗하고 맑은 사랑이 가득 차오른다.






[엄동설한(嚴冬雪寒) : 눈이 내리고 몹시 추운 겨울, 또는 그 추위.]


어제에 이어 오늘도 눈이 내렸고~~ 몹시 추운 날씨다. 추위는 온 세상을 정지시켜 시간을 붙잡아 놓은 듯 보인다. 겨울 강에는 얼음이 가득 찼고, 늘 보이던 왜가리도 보이지 않는다. 사방이 꽁꽁 얼었지만, 블루베리 하우스 속은 바깥 온도보다 10도 가까이 높다. 피안의 세계처럼 이곳에서는 성장이 멈추지 않고, 나무도 나도 조용히 일하고 있다.



이파리 따주기 작업 9일째다. 아직까지는 "하루 한 줄" 목표를 잘 해내고 있다. 아직, 절반도 완성하지 못했지만, 내일 또 한 줄을 해결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있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가볍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 것 같다. 며칠까지나 버틸 수 있는지 가늠해 가며 팔과 고개, 허리를 움직여 준비운동을 마치고, 블루베리 나무 앞에 선다.



하우스 위에 얹힌 차가운 눈가루에도 하우스 속의 천장에는 물방울이 맺혔다. '또도독 또도독' 물방울 연주곡이 한참 진행되었다. 바깥 풍경은 지석강을 배경으로 차가운 아름다움이 있어서 잠깐, 사진을 찍으며 놀았다.







[일취월장 (日就月將) : 날로 달로 자라거나 발전함.]



직접 만든 문짝을 부착했다. 연결 부품이 해외에서 오는 거라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빨리 완성하고 싶어서 여러 업체를 검색했지만, 국내에 재고가 없어서 해외에서 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문짝의 길이에 맞춰 위쪽을 만들었다. 문짝을 붙이고, 아래쪽에 가드를 설치했다. 손잡이까지 부착해서 마무리했다. 세로로 붙였더니, 베니아 합판의 얇은 쪽에 나사를 넣게 돼서 각목이 들어간 부분인 가로로 손잡이를 붙이게 되었다.



완성된 문짝을 자꾸만 이리저리 밀쳐 본다. 손자국과 못자국, 약간 비틀어진 기울임이 어설픈 실력을 말해 주지만, 뿌듯한 미소가 번진다. 우리의 얼굴에.





쉼터 만들기는 문짝을 달아 붙이는 작업으로 잠시 쉬고 있다. 나는 블루베리 나무 이파리 제거 작업에 매달리고 있고, 옆지기는 기존에 있던 쉼터를 비우는 중이다. 블루베리 하우스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 일도 시급하기는 마찬가지다. 3월에 심을 계획인데 계획대로 될지 걱정이다. 우리가 철인도 아니고, 겨우내 쉴 틈 없이 일하고 있어서 몸이 부서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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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