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에 대하여

봄비를 반기며

by 민휴

알프스 왕자를 심었다. 그는 2m의 훤칠한 키에 상처나 흠집 없이 매끈한 몸매로 건강해 보였다. 어쩌다 왕자, 그것도 머나먼 알프스까지 소환되어 이름이 알프스 왕자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처음 알게 된 왕자는 4대 독자인 오빠였다. 내 기억에는 없지만, 그는 할머니와 큰할머니가 전담 돌보미로 바닥에 내려놓지 않고 키우셨다고 들었다. 오빠는 아버지와 겸상이 가능한 존재였고, 밥과 반찬이 우리들과 달랐다. 정초에 생일인 나는 생일떡을 먹어보지 못했지만, 오빠의 생일날은 내 생일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팥시루떡이 올려진 생일상 앞에서 할머니는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조아리셨다. 지극히 당연하게도 오빠에게 함부로 하는 것은 완전 금지였다. 종갓집 종손인 오빠는 집안의 기대에 부응하 듯 품 넓은 어른이 되었다.

독 사과를 먹고 잠든 백설 공주를 깨워 행복하게 살았다는 왕자가 있었고, 금과 보석으로 치장한 동상인 행복한 왕자는 아낌없이 자신의 것을 내주며 가난한 이웃을 돕는 모습에 감동했다. 모든 것을 주면서도 행복할 수 있는지 그런 생각을 했었더랬다.

70년간 이어져 온 세계적인 고전 속의 어린 왕자는 별들을 여행하며 삶의 지혜와 소통, 사랑 등을 통해 관계 맺기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왕자였다. 그림으로 보이는 망토조차 신비한 존재였다.

16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 『왕자와 거지』는 서로 닮은 왕자와 거지 이야기다. 옷을 바꿔 입은 왕자와 거지가 운명이 뒤바뀌어 상대방의 삶을 살며 우여곡절 끝에 다시 자기의 삶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다. 백성들의 어려운 삶과 귀족들을 풍자해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백마 탄 왕자라고 생각되어 생의 도반이 된 왕자도 있다. 이 부분은 각설하고...

봄비가 내렸다. 복숭아밭도, 블루베리 하우스도 제쳐 두고 그동안 미뤄 두었던 메리골드의 씨앗을 사방 30cm 간격으로 심었다. 세상의 모든 꽃은 차로 만들어 마실 수 있다며 꽃차를 연구하고 판매하는 꽃차 전문가인 지인의 농장에서 얻어 온 것이다. 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심는데 어렵지 않았다. 은행나무 아래라 부엽토가 쌓여 보슬보슬한 흙 속에서 발아가 잘될 것 같다. 노랑과 주황이 섞여 핀 메리골드 꽃밭을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내친김에 농장의 빈터에 유실수도 심기로 했다. 군에서 운영하는 산림조합의 나무가 건강하고 저렴하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산림조합 나무 시장을 찾아갔다. 비 오는 봄날이 더 바쁜 발걸음이 되고 보니, 나도 진짜 농부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실감 났다.

봄비는 나무 심기에 좋다는 것을 나만 빼고 모두 아는지 나무 시장은 사람들로 붐볐다. 부슬거리는 빗줄기도 단비라 여기니 싫지 않았다. 나무들은 흙 속에 뿌리가 박힌 채 단장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간택되어 제자리를 찾아갈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농장이 변해갈 모습을 상상하면서 필요한 유실수들을 구입했다. 자두와 살구를 접목해 탄생했다는 생소한 이름의 플럼코트를 두 그루 골랐다. 살구나무 가까이 심으면 서로 수분수 역할을 해서 열매가 잘 열린다고 한다. 살구나무, 왕 대추나무, 매실나무 등 꽃도 열매도 좋아하는 나무들을 선택했다.

복숭아나무를 대량으로 구입할 때, 새로 나온 자두라고 다섯 그루를 수분수와 함께 보내주셨다. 그 자두나무의 이름이 알프스 왕자다. 우리 농장에서 3년 정도 가식해 두었던 것을 봄비를 반기며 제자리를 잡아 정식을 해주었다.

알프스 왕자는 일본에서 개발한 대과 종 신품종으로 보라색 열매가 열린다. 크기도 크고, 당도도 좋다고 한다. 그래서 자두계의 왕자라는 별명이 생긴 듯하다. 검색하여 사진으로 본 보랏빛은 내가 알던 밝은 빛의 투명한 빨강이나 노란빛이 아니라서 색다른 느낌이었다. 여러 가지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그 왕자가 잘 자라도록 정성을 쏟아야 하겠지만, 내가 베어서 먹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 사진은 검색한 이미지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