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나뭇가지에 잎눈 촉이 돋고, 꽃눈이 올라오더니 매화도 산수유도 늦을세라 꽃을 피웠다. 꽃보다 먼저, 풀들이 올라오고 있다는 것을 이미 눈치로 알고 있었다. 풀은 꽃이 피고 있다며 감상할 여유마저 빼앗고 제 몫이 아닌 밭으로 점령해 들어왔다.
벌써, 지인들이 단체카톡방에 꽃 사진과 꽃구경 갔던 여행기를 올리고 있다. 선뜻, 좋아요, 멋져요. 답글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 내게 봄은 꽃피는 아름다운 계절이 아니라 뽑아내야 할 풀들이 깨어나는 시기이며, 풀과의 전쟁도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우리 밭과 붙어 있는 밭에는 팔순이 넘으신 할머니가 매일 호미를 들고 이제 막 올라오는 어린 풀들을 긁고 다닌다. 내가 보기에 풀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지금 매지 않으면, 나중에는 못 이겨요.”
자그마한 풀들까지 손댈 여력이 없는 우리 밭은 이미 풀들이 초록색 카펫을 깔아 놓은 상태다.
철없는 농부인 나는 풀 맬 생각은 하지 않고, 냉이를 캐고 다닌다. 어차피 해결할 수 없는 풀을 손대느니 조금 있으면 커서 못 먹게 될 냉이가 더 아까워 서둘러 냉이를 캐고 있다.
냉이는 된장국과 나물로 봄철에 훌륭한 식재료가 된다. 데쳐서 고추장과 매실액을 넣어 초무침을 해도 맛있고, 된장에 무쳐도 맛있다. 무얼 만들어 줘도 모든 반찬을 섞어서 비벼 먹는 것을 좋아하는 식구들을 위해 비빔국수를 만들었다. 비빔국수 위에 고명으로 올려진 냉이가 꽃처럼 피었다.
며칠 전, 비가 내렸다. 냉이가 더 자랐을 거라 생각되어 친구와 함께 냉이를 캐러 갔다. 우리 밭에 낯선 남자가 커다란 바구니 가득 냉이를 캐서 담고 있었다. 아예, 깔고 앉을 방석까지 준비한 그 남자는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도 별다른 기색이 없다. 내가 민망해 먼저 인사했다.
“냉이를 뭐 하시게 그렇게 많이 캐세요?”
“데친 다음 말려서 물 끓여 먹어요.”
“그렇게 먹으면 어디에 좋아요?”
“피로 해소, 간 건강, 고혈압 예방, 항암작용... 몸에 최고지요.”
건강 상식을 두루 들었다. 우선, 나물과 된장국을 끓여 먹어야겠다고 말했더니
“여기 냉이 천지여요. 많이 캐 가세요.”라고 흔쾌히 허락해 줬다. 함께 갔던 친구가 “도대체 누가 주인인지 모르겠네!”라며 웃는다. 행여 그 사람이 들을까 조마조마했다. 애초에, 땅의 주인이 있다는 것 자체가 모순인지도 모른다. 그다지도 몸에 좋다는 냉이, 부지런한 사람이 캐가서 효험이 있으면 다행이다.
텃밭의 야채들은 튼실하게 뿌리내리기를 잘하며 온갖 먹거리로 풍성하게 식탁을 꾸며준다. 솔직한 마음은 블루베리와 복숭아 농장은 너무 벅차고 소소하게 텃밭에서 야채나 길러 먹으면 힘이 덜 들 것 같다.
상추, 배추, 쑥갓, 가지, 호박, 풋고추, 깻잎, 양배추, 비트, 쪽파, 대파 등 여러 가지 채소를 직접 길러 먹는 맛은 사서 먹는 맛과는 사뭇 다르다. 땅은 내 손길을 따라 부지런한 손놀림만큼 채소들을 키워준다. 냉이나 쑥들은 내가 아무런 정성을 기울이지 않아도 스스로 피어나고 자란다. 부지런한 냉이는 이미 꽃을 피워 자손을 퍼트릴 준비도 마쳤다.
쑥과 냉이의 강한 생명력은 추운 겨울을 이겨낸 힘에 있다. 봄꽃이나 봄풀들은 그래서 더 훌륭하다. 우리가 흙속에 뿌리를 내리고자 행하는 초보 농군의 행보가 어렵게 돋아난 풀들의 입장에서는 원망스러울 것이다. 진입로의 아카시아도 커다란 가시가 통행에 방해가 돼서 자르려고 벼르고 있었다. 꽃차를 연구하는 언니에게 아카시아도 꽃차가 된다는 말을 듣고 뜨끔했다. 풀도 나무도 살아남기 위해 애쓰고 있다. 꽃은 소용되는 곳이 있으며, 몸에 좋은 나물이라고 우리의 편의를 위해 뽑아내고 잘라내는 행위가 자연에 반하는 행위는 아닌지 생각해 본다.
하찮게 여겨지는 풀들도 꽃을 피워내는 봄이다. 채소도 초록색 꽃이라고 생각하면 예쁘다. 우리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라면 더 예쁘다. 꽃이 피었다고 알려 오는 지인들의 봄소식에도 ‘좋아요’, ‘멋져요’ 답신을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