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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Mar 02. 2024

4. 보라색 꽃의 도시 샌프란시스코(2)

뱃줄 달고 미국 여행

 

둘째 날에도 아침 일찍 딸과 사위가 우리를 모시러 왔다. 밸리 주변의 기온이 비정상적으로 높다고 예보되었다면서 딸도 사위도 완전 한여름 옷차림이었다. 우리도 옷을 가볍게 입고 딸 부부를 따라나섰다. 지구 온난화의 바람은 캘리포니아처럼 온화한 날씨를 자랑하는 곳에도 예외 없이 영향을 미치는 가 보았다.

     

오늘의 주요 여행지는 소살리토라고 하였다. 소살리토는 샌프란시스코 도심에서 바다 건너 보이는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페리 빌딩에서 배를 타고 건너가기도 하고 자동차로 금문교를 건너갈 수도 있다. 소살리토가 칸느처럼 아름다운 곳으로 소개되어 있기에 나도 잔뜩 기대가 되었다.    

  

소살리토로 가는 길에 롬바드 스트리트와 러시안 힐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롬바드 스트리트는 ‘세계에서 가장 꼬불꼬불한 길(The Crookedest street in the world)’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을 정도로 Z자 모양으로 여러 차례 꺾어지는 길이다. 러시안 힐에서 시작되는 이 길은 약 30도나 되는 경사실을 그야말로 꼬불꼬불 내려가게 설계되어 있다.

이 길이 유명해진 이유는 히치콕 감독이 이곳에서 <현기증>이라는 영화를 찍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쳐다만 보아도 현기증이 나는 이 길에서 <현기증>이라는 영화를 찍을 생각을 했다니 영화감독들은 장소에 대한 특별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도 자동차들이 줄을 있어 조심조심 Z자 모양의 길을 그야말로 기듯이 내려가고 있었다.  


롬바드 스트리트를 차들이 조심조심 내려가고 있다.


우리는 한 번은 걸어서 러시안 힐까지 이 길을 올라갔다가 또 한 번은 차를 타고 아랫길까지 내려갔다. 사위가 운전하느라고 진땀깨나 흘렸을 것 같았다.

우리가 방문한 때는 10월 초여서 수국이 지고 장미도 한창때를 지나고 있어 꽃밭이 아름답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 대신 어떤 집 앞을 보라색 꽃이 멋지게 휘감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마치 보라색 나팔꽃처럼 보였지만 티보치나 꽃이었다. 티보치나는 이곳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꽃인 듯, 여러 곳에서 만나게 되었다.

  

롬바드 가로 옆의 보라색 꽃 티보치나

   

러시안 힐은 롬바드길 꼭대기에 있는 언덕이다. 샌프란시스코에는 언덕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그중의 하나가 러시안 힐이다. 샌프란의 명물 케이블카가 이곳을 가로지른다.

러시안 힐에서 바라보면 길 양 옆으로 오래된 가로수들이 저 아래까지 이어져 있다. 나무들이야말로 도심을 아름답게 가꾸는데 일등공신이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케이블카 길을 따라 뻗어있는 가로수 길


나는 러시안 힐이 러시아인들의 거주지인 줄 알았다. 왜냐하면 샌프란시스코에는 어제 본 차이나타운 같은 세계 최대의 중국인 거주지가 있는가 하면 피셔맨즈 와프(Fisherman’s Wharf)가 있는 북쪽으로는 이탈리아인들이 모여 사는 노스 비치(North Beach)가 있으며, 일본인들의 마을인 재팬 타운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러시안 힐은 러시아인들의 거주지가 아니고 예전에 러시아 선원들의 묘지가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였다.      


러시안 힐에서 눈 아래 펼쳐지는 샌프란의 전경을 바라보다가 소살리토로 건너가기 위하여 페리 빌딩으로 갔다. 페리 빌딩에는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최초의 블루바틀 가게도 이곳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엉뚱한 생각이지만 블루바틀이 샌프란에서 탄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디자인에서 말이다. 이곳의 하늘은 거의 언제나 투명한 푸른색이다. 블루바틀의 병처럼.


블루바틀의 푸른색은 샌프란시스코의 하늘을 닮았다.


거기서 우리 내외와 딸은 페리를 탔고 사위는 차로 소살리토로 오기로 하였다. 소살리토에서 나오는 페리 시간이 우리 일정과 맞지 않았기 때문에 귀가 길에 차를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오늘 우리는 빨리 움직여야 했다.      


페리에 오르자 배가 샌프란 만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뒤로 페리 빌딩과 샌프란의 빌딩들이 서서히 멀어져 갔다. 멀리서 바라보니 샌프란시스코는 작은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걸어서 구경을 할 수 있는 도시 사이즈라는 말이 수긍이 되었다.

     

페리에서 바라본 샌프란시스코 도심 광경


페리가 알카트라즈 섬을 비슷이 껴안듯이 하고 지나갔다.. 저 섬에는 미국에서 악명 높은 범죄자들이 수용되어있었다고 한다.  


알 카트라즈 섬


페리가 30분 정도 달리자 흰 요트가 즐비한 해안과 언덕 위의 아름다운 집들이 나타났다. 오른쪽에 보이는 요트가 즐비한 해안 쪽이 티뷰론이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의 모 회장이 이곳을 방문했다가 이곳의 풍경에 반하여 신차 이름을 ‘티뷰론’으로 정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풍경이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페리가 소살리토에 가까이 가자 경사진 언덕 위에 아름다운 집들이 푸른 수목 가운데 빼곡히 들어서 있는 모습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과연  명성 그대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우리보다 먼저 온 사위가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소살리토항: 저 건너 티뷰론이 보인다. 


다운타운의 거리에는 다양한 숍들이 예쁘게 치장하고 여행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번잡하지 않고 격조가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날씨가 더워 거리를 걸으며 구경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차로 언덕 위의 골목들을 구경하고 다녔다. 집집마다 정원을 아름다운 꽃나무로 장식하고 있는 모습이 나의 흠모를 자아내었다. 역시 보라색 꽃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딸이 선상 레스토랑을 예약해 두어 유명한 스코마스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당 벽에 거창한 샹들리에가 걸려있어 거기에 S자 고리를 걸고 남편이 뱃줄 식사도 할 수 있었다. 음식은 맛있었고 서빙도 훌륭하였다.


소살리토의 선상 레스토랑 스코마스


식사 후 차로 금문교를 건너 알라모로 갔다. 금문교를 걸어서 건너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 역시 샌프란 관광의 최고 아이콘이 금문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금문교를 걸어서 지나는 사람들


알라모의 잔디밭에 앉으면 눈앞에 식스 시스터즈(Six Sisters)로 알려진 똑같이 생긴  여섯 채의 목조 집이 나란히 서있는 것이 보인다. 이 집들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독특한 분위기로 인하여 수많은 영화와 TV쇼에 출연하였다고 한다.

식스 시스터즈의 뒤편으로는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알라모 파크에는 많은 사람들이 잔디밭에 앉아 여섯 자매 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도 이 공원에 앉아 샌프란시스코의 뷰를 바라보다 식스 시스터즈의 집을 바라보았다.

  

식스 시스터즈로 알려져 있는 나란히 선 집들


그러나 마냥 여유를 누릴 수는 없었다. 그날은 며느리의 생일이었고 그래서 가족 기념 식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아들은 우리가 또 어제처럼 놀다 처의 생일 기념 식사에 늦게 나타날까 봐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눈치를 보니 아들은 누나에게 몇 번이나 약속시간에 늦지 않게 와 달라고 부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들의 모습에서 긴장을 느꼈다. 그 긴장이 우리 모두에게 전해졌다. 우리는 서둘러 예약된 식당으로 갔다. 그래서 두 번째 날의 샌프란 일정은 알라모 파크에서 끝이 났다.

  

약속 장소는 쿠퍼티노 가까운 곳에 있는 작은 일식당이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아들과 며느리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그래서 며느리 생일을 축하하는 식사자리가 시작되었다. 일본 초밥을 주문했는데 초밥 수준이 나쁘지 않았다. 서빙하는 사람이 30대의 한국 교포 남자였다. 그 사람의 한국말이 썩 유창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국말로 농담도 하고 음식에 관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 좋았다.

그런데 축하 와인을 주문했을 때 이상한 것을 느꼈다. 아들이 와인을 마시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와인을 좋아하는 아들이 왜 술을 마시지 않을까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집에 돌아와서 다시 축하 파티를 벌일 때 그 비밀이 밝혀졌다. 며느리가 임신하여 술을 마시지 못하게 되자 아들도 출산 때까지 술을 마시지 않기로 했다는 사연이었다. 나는 잠시 묘한 기분이 되었다. 아들은 엄처시하에서 꼼짝 못 하며 사는 것인가?  아니면 아내를 위해 고통을 함께 나누는 사랑꾼으로 변한 것일까?


그래서 아들 내외를 제외한 우리끼리 와인을 마셨다. 그때 다시 샌프란의 보라색이 화제에 올랐다. 화제에 올랐다기보다는 내가 다시 거론하였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이겠다. 나는 쳇 GPT에게 샌프란시스코에는 왜 보라색 꽃이 많은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쳇 GPT가 예상외의 대답을 하였다. 캘리포니아에 중국인들이 많아서 그들이 보라색을 귀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답이었다. 정확하게 기억되지는 않지만 이와 유사한 답이었다.

나는 무릎을 쳤다.


아! 바로 '자미원(紫微垣)'이로구나.


중국은 3대 별자리를 삼원이라고 하는데 그중 두 번째에 해당하는 별자리가 자미원이다. 중국인들은 하늘나라 임금이 거처하는 곳을 북극의 중심에 있는 자미궁이라고 여겼고 그 궁궐의 담을 '자미원(紫微垣)'이라 불렀다. 자미궁은 바로 임금과 그 가족이 사는 최고 지존의 곳이다. 이 자(紫)가 보라색 자이다.


중국인들이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하면서 최고 지존의 색인 보라색 꽃을 많이 심었는가? 그래서 캘리포니아 전역으로 그 유행이 퍼져나갔는가? 아니면 이곳에 본래 보라색 꽃들이 많았는데 중국인들이 선별적으로 가꾼 것인지?  기후상 그냥 보라색 꽃이 잘 자랐던 것인가? 보라색 꽃을 좋아하는 두엉벌이 이곳에 유난히 많아서 인가? 그도 저도 아니면 내가 지금 엉뚱한 관점에 매여있는 것인가?

나의 의문은 자꾸만 깊어져 갔다.

이 쓸모없는 연구심 때문에 나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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