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줄 달고 미국 여행
뱃줄 식사를 하는 환자 가족이 여행에 나설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남편은 아들에게로 가고 싶어 하는 아내를 위하여 용기를 내었고 덕분에 우리는 한 달간 미국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아내를 위해, 가족을 위해 큰 용기를 내준 남편에게 이 글을 빌어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할 때까지 두 번의 뱃줄 식사를 했다. 한 번은 인천공항의 라운지에서였고, 한 번은 기내에서였다.
남편이 처방받은 경관식은 독일에서 만든 제품이었다. 이것을 하루 세끼 섭취하게 되면 1500킬로칼로리의 열량과 필요한 영양성분을 고루 얻을 수 있다. 그러니 이 제품은 우리에게 구세주와 같았다.
문제는 이 경관식을 뱃줄에 연결하려고 하면 약간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우선 비닐봉지에 든 경관식에 피딩 줄을 연결하고 봉지에 압력을 가해 봉인된 곳을 뚫어야 한다. 이때 힘의 크기가 중요한데, 너무 약하게 누르면 경관식의 흐름이 빈약하게 되고, 또 너무 세게 누르면 봉지가 터져 액체가 사방으로 튀어 나가게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별 탈 없던 이 제품이 우리가 미국에 갈 즈음에 어찌 된 일인지 불량품이 많이 생겼다. 어떤 제품은 여행가방 안에서 옆구리가 터져 짐을 못쓰게 만드는가 하면 또 어떤 제품은 봉인이 너무 강하게 되어 아무리 눌러도 봉인선이 열리지 않았다. 억지로 누르면 봉지가 터지면서 액체가 사방으로 분출되게 되는데, 실제 그랜드 서클 투어를 마치고 간 한국식당에서 경관식 봉지가 터져 대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성격 급한 남편이 경관식 봉지를 세게 눌러 봉지를 터뜨려 버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므로 경관식의 연결은 주로 내가 맡았다. 나는 4년여의 경험을 통해 봉지에 가해야 할 힘의 크기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우선 피딩 줄을 경관식에 연결하고 발로 봉지를 살짝 밟으면 ‘툭’하고 봉인이 터지는 느낌이 전해졌다. 그러면 봉지에 든 액체가 피딩 줄을 타고 흘러나오는데, 피딩 줄의 중간 발브를 이용해 흐르는 양을 조절해 주면 그만이었다. 나는 경관식의 봉인선을 터뜨리는 그 시점의 감각을 위해 언제나 발로 봉지를 밟았다. 이번에는 공항 라운지와 비행기 안에서 경관식의 봉인을 풀기 위해 신발을 벗었다.
남편이 기내의 틈새에 S자 고리를 걸고 거기에 경관식을 매달자, 스튜어디스가 놀라 달려왔다. 우리가 사정을 설명하자 담당 스튜어디스가 남편에게 신경을 기울이는 모습이 역력했다.
스튜어디스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기내식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비즈니스석의 식사는 유명호텔 식사처럼 멋진데도 말이다. 예전에 남편과 여행할 때, 남편은 내게 와인을 청하게 하고는 자기가 마시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자기 앞의 와인을 내게로 밀어주게 되었으니 참으로 남편이 안쓰러웠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리니 뉴욕에 사는 딸 내외가 먼저 공항에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얼싸안고 반가운 인사를 나눈 후 사위가 빌려온 렌터카에 올라 아들 집으로 향했다. 아들이 사는 곳은 마운틴 뷰(Mountain View)라는 실리콘 밸리 내에 있는 도시였다.
공항에서 아들 집으로 가는 넓은 고속도로 저 멀리 양옆으로 나란히 산맥이 달리고 있었다. 우리가 달리는 양 산맥 사이의 이 평지가 실리콘 밸리인가 보았다. 벨리라고 하기에는 너무 넓어 평야같았다(좁은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의 시각).
며칠 뒤 나파밸리로 가는 도중 아들에게 저 산맥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더니 아들은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찾아보니 실리콘 밸리를 둘러싸고 있는 두 산맥은 산타크루즈 산맥(Santa Cruz Range)과 디아블로 산맥(Diablo Rangs)이었다. 그러니 지금 공항에서 아들이 살고 있는 마운틴 뷰로 가는 방향으로 왼쪽에 길게 이어져있는 산맥이 디아블로 산맥이고 오른쪽으로 이어지고 있는 산맥이 산타크루즈 산맥인 것 같았다.
산들은 누런 민둥산들이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저런 민둥산에 억새가 잘 자라 지금쯤이면 낭만적인 가을 풍광을 연출할 것인데 여기는 억새는 없는 것 같았다. 딱 봐도 건조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태평양연안의 이곳이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지중해성 기후를 나타낸다고 하였다. 그래서 겨울철에 비가 약간 내리는데, 그러면 저 민둥산들이 단숨에 초록색으로 변신한다고 하였다.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낯선 풍광이 내게는 흥미진진하게 여겨졌다.
나는 데이비드 보더니스(David Bodanis)가 쓴 <일렉트릭 유니버스(Electric Universe)>라는 책을 통해 실리콘 밸리의 역사를 얼마간 알고 있었다(이 책 너무 재미있다). 보더니스에 의하면 1950년대 이곳은 살구나무 과수원과 공장들이 띄엄띄엄 들어서 있는 한적한 곳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곳 팔로 알토에서 벨 연구소에 근무하던 쇼클리(Williams Shockley)라는 과학자가 사업을 시작하면서 실리콘 벨리의 신화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쇼클리는 당시 실리콘의 특성을 이용해 트랜지스터를 만든 자기 휘하의 두 과학자 브래튼(Walter Brattain)과 바단(John Bardeen)의 발명을 약간 개량해 '접합 트랜지스터'를 개발하였고 브래튼과 바단, 쇼클리는 1956년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하였다. 하지만 자기 과장이 심했던 쇼클리는 자신이 미래의 기술을 개발한 유일한 사람인 것처럼 떠들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자 미국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공학자와 물리학자들이 그와 함께 일하려고 이곳으로 몰려왔다. 똑똑한 그들은 곧 쇼클리의 과장을 간파해 내고는 그의 곁을 떠났지만 멀리 가지 않고 실리콘 밸리에 정착하여 자신들의 회사를 차렸다는 것이다(쇼클리는 그들을 8인의 배신자라고 비난하였다). 보더니스에 의하면 그 사람들은 캘리포니아의 태양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실리콘 소재 트랜지스터는 유리소재 진공관보다 부피가 작고 값이 저렴하며 대량생산이 가능한 장점이 있었고 이 실리콘 소재는 무제한으로 존재하였다. 곧 트랜지스터는 반도체 집적회로 IC, 즉 칩의 시대로 발전되어 나갔다. 반도체 산업을 기반으로 컴퓨터 산업이 발전하자 그 위에서 각종 첨단 기술 산업이 성장했다. 그래서 인텔이라는 기업이 탄생하였고 살구나무 과수원에는 ‘실리콘 밸리’라는 새 이름이 붙여졌다.
실리콘 밸리에 숨결을 불어넣은 요인으로 스탠퍼드대학의 우수한 학생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또는 일찍이 이곳에서 싹튼 히피문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에너지로 작용하였다는 분석도 있다.
1970년대 스티브 잡스를 비롯한 젊은 청년들이 컴퓨터 산업에 뛰어들면서 지금 실리콘 밸리에는 Google, 페이스북, 애플 등 그야말로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빅테크 기업들이 자리하고 있다.
아들 내외가 집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며느리의 배가 제법 눈에 띄게 불룩해 보였다. 아들 집 앞에는 10월인데도 불구하고 흰 장미가 예쁘게 피어있었고 펜스 너머로는 키 큰 레드우드 나무가 하늘을 받치고 서 있었다. 그 너머로 펼쳐진 캘리포니아의 하늘이 투명하고 푸르러서 눈이 아릴 지경이었다.
아! 저 심원한 deep blue!
내가 좋아하는 깊은 바다색 블루였다.
아들 집은 작은 목조 주택으로서 입구의 붉은 문이 신혼의 아들내외에게 썩 어울려 보였다. 뒤뜰에는 커다란 호두나무가 한그루 서 있었다. 저 나무에 호두가 열리면 동네 다람쥐들이 와서 잔치를 벌인다고 하였다.
나는 아들집이 단번에 마음에 들었다. 뉴욕의 좁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딸도 부러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오는 길에서 본 마운틴 뷰 도시 자체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아들은 부모님을 모시려고 분에 넘치는 집을 구했노라고 엄살을 떨었지만 좋은 환경에 아들 내외가 살고 있다는 사실에 일단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마운틴 뷰로 오는 고속도로 가를 위시하여 마운틴 뷰 동네의 집 뜰에 보라색 꽃들이 많이 피어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젊은 시절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라는 노래를 즐겨 들었었다.
웬일인지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머리에 보라색 꽃을 꽂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왜 여기에는 보라색 꽃이 많을까?”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왜 보라색 꽃을 사랑하는 걸까?”
그것이 이 동네에 닿고 제일 먼저 생긴 궁금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