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9. 양재천에도 살갈퀴가 있네요.

<양재천 산책>

by 보현


4월부터 시작하여 양재천 여기저기에 살갈퀴가 보라색 꽃을 피운다.

살갈퀴라고 하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살갈퀴는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했을 때부터 인류와 함께한 콩이다. 이 콩이 양재천에도 지천으로 자라고 있으니 참 반갑다.

어느 날 영동 6교 아래의 펜스를 타고 자라고 있는 살갈퀴를 발견하고 나의 가슴은 놀라움으로 높이 띄었다. 내가 양재천에서 살갈퀴를 발견하고 놀라고 반가워한 이유는 이 콩이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쓴 <총균쇠>에도 언급되어 있는 가장 원시 상태의 콩 종류이기 때문이다.

살갈퀴 꽃을 가까이에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잎은 깃꼴겹잎이고 보라색의 꽃은 나비모양으로서 꼭 완두콩처럼 생겼다. 살갈퀴의 꽃은 진짜 나비가 춤이라도 추고 있는 듯 둥실둥실 현란하게 보인다. 꼭 어딘가로 날아갈 것만 같다.


IMG_6852.JPG?type=w3840
image20.png
양재천의 살갈퀴


그러고 보니 이 살갈퀴가 영동 6교 아래의 팬스뿐만 아니라 양재천변의 풀숲에 꽤 많이 숨어있어 4월 말이 되면 여기저기서 보라색 꽃을 피운다. 꽃이 피고서야 식물은 제 정체를 분명히 드러내는 법이다.


IMG_5480.JPG?type=w580 양재천 제방 경사면을 차지하고 있는 살갈퀴


그 후 양재천 이외의 장소에서도 덩굴을 내며 싱싱하게 뻗어나가며 보라색 꽃을 피우는 이 살갈퀴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산하 어디에서든지 볼 수 있는 야생콩이 바로 살갈퀴이다.


IMG_5318.JPG?type=w3840 경남 사천 바닷가에서 찍은 살갈퀴(2023년 4월)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다. 일본 나가사키에 가톨릭 성지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곳 히라도의 들판에서 지천으로 자라고 있는 살갈퀴를 만났다. 일만년 전의 수렵채집인들이 먹거리를 찾아 들판을 관찰하고 다닐 때 튼실하게 꽃을 피우고 여름이면 까만 콩을 맺는 이 작물을 식량자원으로 선택하였다는 사실이 어쩌면 당연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콩이라는 작물은 인간에게 보탬을 주는 덕성스러운 작물임을 인류는 진작부터 알아보았던 셈이다. 이 살갈퀴가 양재천에도 지천으로 자라고 있으니 놀라울 뿐이다.


%EC%82%B4%EA%B0%88%ED%80%B4.JPG?type=w580 일본 나가사키의 하라도에서 만난 살갈퀴(2023년 4월 초)


인류의 역사에서 몇 번의 혁명적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중의 하나가 정착하여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이다. 20만 년 전에 아프리카를 나온 호모사피엔스의 일부는 1만 년 전 서남아시아의 요르단 지역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기 시작하였다. 이때 그들이 재배했던 창시작물에 곡류와 콩류가 있었다. 곡류로서는 외톨밀, 에머밀, 보리가 있었고, 콩류로서는 렌틸콩, 완두콩, 병아리콩, 살갈퀴가 있었다. 그러니까 살갈퀴는 인류가 농경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인류와 함께 해 온 콩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밀의 경우 꾸준히 품질 개량이 이루어져 오늘날은 수확량이 많은 빵밀이 세계적으로 재배되고 있지만 렌틸콩, 완두콩, 병아리콩의 경우에는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인류의 식탁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런데 살갈퀴는 경쟁력을 잃고 더 이상 재배되지 않건만 여전히 야생의 들판에 살아남아 양재천에도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서남아시아뿐만 아니라 농업이 시작된 중국, 중앙아메리카, 아프리카에서도 콩류는 항상 곡류와 함께 재배되었다고 한다. 일테면 중국의 경우 곡물로는 조, 벼와 기장이, 콩류로서는 대두가 재배되었고 중앙아메리카에서는 옥수수와 함께 잠두류, 호박이 재배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곡류에는 단백질이 부족하기 때문에 항상 콩을 함께 재배해 곡류의 단백질 부족을 보충하였다니 인류의 선조들의 지혜가 놀랍다고 하겠다.


양재천에는 살갈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갈퀴나물이라는 야생콩도 많이 자라고 있다. 이 야생콩들은 양재천에만 유독 많이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라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야생콩 종류가 보고되고 있다.

식물의 원산지는 야생종과 재배종, 그 중간종이 가장 많이 존재하는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야생콩과 재배콩의 분포를 볼 때 만주지방과 시베리아 아무르강 유역이 콩의 원산지로 여겨지고 있다. 이 지역이 과거부터 고조선과 고구려의 영토였음을 고려해 보면 우리 한민족이 가장 먼저 콩을 음식으로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고 관련 자료도 입증되고 있다.

특히 만주지방에서 대량으로 생산된 콩이 한반도로 전해질 때 두만강(豆滿江)을 통하였기 때문에 이 강의 이름이 ‘콩으로 가득 찬 강’ 즉 두만강이 되었다는 설이 흥미롭다. 일제강점기부터 감옥에 갇힌 수인들에게 콩밥을 먹였는데 이는 콩이 가장 값싼 재료였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콩값이 비싸져 콩밥을 먹이지 못한다고 한다.


중국과 우리나라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콩 생산국 1,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과 브라질, 아르헨티나가 콩 생산국 세계 1,2,3위를 차지하고 있고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은 대표적인 콩 수입국이 되고 말았다.

미국은 우수한 콩종자를 확보하기 위하여 1901년부터 1976년 사이에 우리나라에서 5,496종의 재래종 콩을 수집해 갔다. 이와 별도로 미국 농무부는 1947년까지 1만 개의 콩에 대한 유전자형을 우리나라에서 수집해 갔다. 미국이 동아시아 3국에서 수집해 간 콩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수집한 콩이 74%에 달할 정도로 많았다. 유별나게 한반도에 야생콩이 많고 생육 지역도 제주지역에서 함경북도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있다는 것은 이 지역이 콩의 자생지였음을 가리킨다.


그런 의미에서 양재천의 천변에까지 진출해 있는 살갈퀴가 귀하게 여겨진다. 살갈퀴는 식물전체를 사료로 사용하거나 꼬투리가 여물기 전에 튀기거나 볶거나 데쳐서 먹을 수도 있다고 한다. 꼬투리 속에 든 열매가 여물면 이것을 밥에 넣어 먹으면 맛이 좋다고도 한다. 그러나 콩에는 독성분이 함유되어 있고, 야생콩에는 더욱 독성분이 강하므로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도 먹어보지 않았다.

keyword
이전 06화8. 새들의 별미, 꽃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