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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Sep 30. 2024

21. 수청목 물푸레나무: 푸른 물이 드는가?

<양재천 산책>


어린 시절 독서삼매경에 빠졌을 때 이야기책에 자주 등장하는 나무에 물푸레나무가 있었다. 물푸레나무라니! 무언 지는 몰라도 이름에서 오는 로맨틱함 때문에 나는 이 나무를 신비롭고 아름다운 나무로 상상하곤 하였다. 

물푸레나무를 신비롭고 아름다운 나무로 상상하게 된 데에는 오래된 신화에 소개되는 세계수(世界樹)로 물푸레나무가 등장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세계수란 하늘을 떠받치는 거대한 나무로써, 하늘과 지상, 그리고 뿌리를 통해 지하를 연결하는 신성한 상상의 나무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화성 전곡리에 있는 물푸레나무도 수령이 약 350여 년에 높이 약 20m나 되는 거대한 나무로 알려져 있다. 나는 전곡리의 물푸레나무를 본 적은 없지만, 이런 거대한 나무를 바라보면 무언가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 법도 하고 신화가 만들어질 것 같은 예감을 갖기도 한다.


책 속에서만 물푸레나무를 만나다 보니 나는 물푸레나무가 전설 속의 나무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나무는 우리나라의 산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매우 흔한 나무였다. 

더구나 양재천변에 이 물푸레나무가 쭉 심어져 있으니 볼 때마다 놀라울 뿐이다. 실제 물푸레나무를 보니 키도 크고 줄기도 굵으며 튼튼하게 가지를 뻗은 모습이 낭만적이라기보다는 꿋꿋하여 현실적으로 보인다. 

 



물푸레나무라는 이름의 유래는 이 나무의 껍질을 우려내면 물이 파란색으로 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자 이름도 수청목(水靑木) 또는 수창목(水蒼木)으로서 ‘물을 푸르게 하는 나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를 우리말로 ‘물푸레나무’로 지었다니 참으로 작명을 잘한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푸른색을 가장 좋아한다. 그래서 물푸레나무에서 우러나오는 푸른색의 물색이 너무 궁금하였다. 나는 물푸레나무의 어린줄기와 잎을 따 물에 담가보는 시도를 몇 번인가 해 보았으나 기대한 푸른색은 나오지 않고 누리끼리한 색이 조금 나왔다. 대실망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일본 TV를 보는데, 벚꽃물 염색하는 장인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 프로그램에서 장인은 벚나무 등걸을 큰 솥에 넣고 끓인 다음 그 물에다 흰 명주 천을 넣으니 천에 벚꽃색 같은 고운 분홍물이 들었다. 그 광경을 보고 참으로 놀라웠던 기억이 새롭다. 벚나무가 분홍의 꽃을 피우려면 나무 자체가 분홍의 색을 자기 몸 안에 가득 가져야 하는구나 하는 깨달음이었다. 그 후 벚나무 줄기를 바라볼 때마다 나무의 어디에 붉은색을 감춰 두었나 싶어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벚나무의 검게 터진 피목 사이로 붉은색이 숨어있는 듯도 보였다. 

    

벚나무에 숨어 있는 분홍의 색소



양재천에  애기똥풀이라는 식물이 봄부터 여름에 걸쳐 계속 노란 꽃을 피운다. 애기똥풀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데에는 이 풀의 줄기를 자르면 애기똥 같은 노란 액체가 솟아오르기 때문이다. 애기똥풀도 노란 꽃을 피우기 위해 노란 색소를 몸 안에서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알았다. 

    

애기똥풀



그러고 보니 매화나무의 경우도 그랬다. 매화에도 청매와 홍매, 백매의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이 나무의 줄기 색만 보아도 어떤 색의 꽃이 필지를 미리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청매의 경우에는 꽃에도 푸른 끼가 돌지만, 나무줄기에도 푸른 끼가 돈다. 홍매의 경우는 연한 핑크 꽃과 핑크 끼가 도는 나무줄기를 가지고 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식물 꽃의 색깔과 식물이 나타내는 색과의 연관성을 깨닫자 식물을 사용한 천연염색에도 관심이 간다. 천연 염색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니 그들도 일단 식물의 뿌리나 줄기, 열매 등을 삶은 후 그 물을 염료로 이용하고 있었다. 식물이 신비한 색을 이미 그 몸 안에 지니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챈 것이다. 


나는 아직 물푸레나무에서 멋진 청색을 얻지 못하였다.  물푸레나무의 줄기를 잘라 물에 담그면 푸른색이 우러나올지도 모른다. 산속의 수도승들은 물푸레나무를 태운 재를 물에 풀어 승복을 염색하면 파르스름한 잿빛이 아름답게 들고 색이 잘 바래지도 않아 최상의 승려복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역시 물푸레나무는 몸속에 아름다운 청색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성인순 그림: 4월의 물푸레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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