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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Sep 30. 2024

20. 야곱을 닮은 버즘나무


    

성경에 야곱이야기가 나온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양과 염소를 치고 있었는데,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그는 외삼촌과 계약을 맺어 몸에 얼룩얼룩한 문양이 있는 양과 염소를 자기 것으로 하고, 얼룩 문양이 없는 새끼 양이나 염소는 외삼촌 몫으로 돌리기로 약속하였다. 꾀가 많은 야곱은 은백양나무와 편도나무와 버즘나무의 가지를 잘라 양들이 교미하는 물가에 두면서 튼튼한 양들과 염소들이 그 가지들 앞에서 짝짓기를 유도하여 얼룩얼룩한 문양이 있는 새끼들이 태어나도록 했다. 그러나 약한 양들과 염소들이 교미할 때는 그 나뭇가지들을 치워 약한 새끼들이 외삼촌의 차지가 되도록 하였다. 외삼촌은 분했지만 약속했기 때문에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 후 야곱은 자기 가족과 재산을 모두 끌고 아버지의 땅인 가나안으로 달아나 그곳에 자리를 잡게 된다. 이 야곱이 이스라엘 12지파의 아버지이다. 


이렇게 야곱 이야기를 인용한 이유는 버즘나무 때문이다. 은백양나무(포플러)와 편도나무(아몬드나무)는 모르겠으나 얼룩얼룩한 문양의 양이나 염소를 얻는데 버즘나무를 이용한 이유는 자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버짐이란 옛날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의 얼굴에 핀 백선을 일컬었는데, 백선에 걸린 피부가 얼룩얼룩한 문양을 얼굴에 만들었다. 그래서 이 나무가 우리나라에 도입될 때 버즘나무란 이름을 얻었던 것 같다.  


버즘나무의 상용명은 플라타너스이다. 플라타너스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넓다'라는 의미의 platys에서 유래하여 '넓은 잎'을 뜻하는 Platanus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플라타너스는 가로수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우선 큰 키에 무성한 큰 잎을 가지고 있어 그늘을 드리우며 도시의 열섬현상을 누그러뜨려 준다. 놀라운 생장 속도를 나타내어 일 년에 1~2미터나 자란다. 도시의 공해에도 단단히 무장되어 공해 물질이 축적된 껍질을 간단히 벗어던져 버린다. 이 나무는 땅을 탓하지 않고 아무 땅에서나 잘 자란다. 심지어 가지치기를 해도 금방 자라나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멋진 수형을 회복한다. 가로수로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플라타너스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가로수 수종이다. 그리스에서는 BC 5세기경부터 플라타너스를 가로수로 심었다고 하고 런던의 가로수 중 90%가, 파리의 가로수 중 50%가 플라타너스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70~80년대에 이 나무를 주요 가로수종으로 선택하여 한때 서울 시내 가로수의 절반 정도가 양버즘나무일 때도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은행나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종을 차지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어디를 가든지 이 양버즘나무 가로수를 만날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버즘나무는 오늘날 우리가 보는 양버즘나무는 아니고 서남아시아에 있었던 정통 버즘나무였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가로수로 식재된 대부분의 버즘나무들은 미국 동부지역에서 유래한 양버즘나무이다. 


양재천에도 멋들어지게 자란 양버즘나무들이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양재천의 양버즘나무들은 이 나무가 얼마나 멋있을 수 있는지를 몸으로 보여준다. 메타세쿼이아, 벚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 등 주변의 나무들을 제치고 키도 가장 우뚝하고 몸체도 가장 굵다. 

5월에 싱싱한 새잎이 무성해졌을 때 이 나무는 압도적으로 아름답다. 차상분지로 멋지게 갈라진 가지에는 군복 문양 같은 얼룩무늬가 생생하게 살아있다. 마치 영화 속의 헐크가 껍질을 벗어던지며 녹색의 몸을 일으키는 것 같은 모양이다. 

양버즘나무는 메타세쿼이아나 은행나무와 같은 키 큰 나무들과 햇볕 경쟁에 나서면서도 이들보다 더 높이 팔을 뻗는다. 늘 가지치기를 당하면서도 금방 새 가지가 뻗어 언제 가지치기를 당했냐는 듯이 무성하게 자란다. 




나는 버즘나무가 야곱의 시기심, 경쟁심, 결코 지지 않으려는 결기를 가지고 있는 나무라고 생각한다. 특히 양버즘나무에는 야곱의 성정이 더욱 강화된 듯, 결코 어떤 나무에도 지지 않는 속성이 배어있다.


성인순 그림: 양버즘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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